사랑의 시작을 상상해보면 어떤 순서를 거칠까. 아마도 ‘우연히 만남-데이트-사귐’이 아닐까. 이와 달리, 서로를 우연히 알게 된 후 ‘동거’부터 관계가 시작되는 드라마와 리얼리티를 모아봤다. 낯선 이와의 ‘동거’는 ‘관계’를 둘러싼 면모를 새롭게 펼쳐낸다.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

逃げるは恥だが役に立つ | 2016 | 연출 카네코 후미노리, 도이 노부히로, 이시이 야스하루 | 출연 호시노 겐, 아라가키 유이

대학교 졸업 후 제대로 된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웠던 ‘미쿠리’(아라가키 유이)는 대학원으로 전공을 바꾸고 졸업했지만 역시나 취업에 어려움을 겪는다. 그러던 중 그는 부모님의 추천으로 가사 대행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면서 ‘히라마사’(호시노 겐)를 만난다. 부모님의 급작스런 이사를 계기로, 자신이 머물 집이 필요했던 미쿠리는 히라마사에게 계약 결혼을 제안하며 ‘이상한’ 동거를 시작한다.

미쿠리와 히라마사의 ‘계약 결혼’은 ‘결혼’이 자연스레 강요하는 관습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둘은 결혼으로 인해 발생하는 일들에 대해 함께 상의하고 계약서를 수정하며 협의해나간다. 밥을 하고 청소를 하는 것이 미쿠리의 주 업무로, 가정은 미쿠리에게 근로 환경이 되어 미쿠리와 히라마사가 가정을 하나의 기업처럼 운영하는 모습이 펼쳐진다. 쉽게 돈으로 환산되지 않지 않는 ‘가사노동’을 ‘가사 대행 아르바이트’라는 직업을 매개로 시작해, 결혼 이후에도 온전한 ‘노동’이자 ‘근로 환경’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것이 흥미롭다.

미쿠리와 히라마사의 계약 결혼으로 시작된 동거는 서로를 피할 수 없는 관계로 발전시키고 내면적으로 성숙한 삶으로 이끈다. 연애에 미숙하고 자존감이 낮은 히라마사가 미쿠리와 함께 생활하며 마음을 열어가는 과정과, 미쿠리가 지난 연애로 생긴 트라우마를 히라마사를 통해 점차 극복해나가는 과정이 교차한다.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 예고편

 

<너는 펫>

きみはペット | 2017 | 감독 구마사카 이즈루, 미노리카와 오사무 | 출연 이리야마 노리코, 시손 쥰

도쿄 대학을 졸업해 하버드까지 졸업한 엘리트 기자 ‘스미레’(이리야마 노리코)가 5년 사귄 남자친구와 차인 것과 다름없이 헤어진다. 설상가상으로 징계차 회사에서 원치 않는 부서로 발령받은 날, 술에 취해 돌아오다 자신의 집 앞 종이 상자 안에 있는 ‘다케시’(시손 쥰)를 발견한다. 어릴 적 온전히 자신의 마음을 열었던 강아지 모모와 닮았다는 착각을 하면서 집 안까지 데려다준 다케시를 붙잡게 되고, 둘의 동거는 시작된다.

<너는 펫>은 사람이 만날 때 서로의 직업, 나이를 비롯한 배경을 알고 관계를 시작하는 것과 달리, ‘펫-주인’이라는 설정 아래 관계가 시작되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반려동물과 우정을 나눌 때, 시작부터 호의를 숨기지 않고 무한한 애정을 베풀고 반응하며 관계를 키워나가는 점에서 유사하다. 어린 시절부터 주위 사람들의 높은 기대를 받으며 자란 스미레는 겉으로는 화려한 스펙을 지녔지만, 어린 시절 키우던 강아지 모모에게 가장 크게 마음을 열었던 것과 상반되게, 사람에게 마음을 여는 데에 어려움을 겪는다. 온전히 자신을 받아주는 ‘펫’으로서의 다케시를 만나며 처음으로 반려동물 모모와 그랬던 것처럼 마음을 편안히 열고 관계를 시작한다. 결국은 다케시가 사람이며, ’펫과 주인’의 형태로는 관계를 지속할 수 없다는 점을 인지하면서 점차 이야기는 다른 양상으로 흘러간다.

<너는 펫> 예고편

 

<테라스 하우스: 도시 남녀>

<테라스 하우스: 도시 남녀>는 일본 도쿄를 배경으로 넓고 화려한 집에서 각자 다른 배경을 지닌 여섯 명의 젊은 남녀가 모여 살게 되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모은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다. 첫 만남부터 각자의 직업과 나이, 연인이 있는지, 이상형은 어떤지 궁금해하며 인사하고 공동생활을 하다가, 연애로 발전하는 과정이 주축을 이룬다. 데이트 이후 서로 사랑에 빠지는 과정도 볼 수 있지만, 오히려 데이트 이후 마음이 커지는 사람과 멀어지는 사람의 엇갈리는 모습까지도 온전히 드러난다.

각자 다른 인생을 살아온 사람들이 공동생활을 이어가며 가치관이 충돌하는 장면도 흥미롭다. 꿈이 우선인 사람과 일상에서의 즐거움이 우선순위인 사람들이 때로는 충돌하기도 하지만 서로의 ‘다름’을 인지하고 받아들이게 된다. 의도치 않은 말로도 오해가 생기고 다툼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에피소드 외에도, 연인이 되고 난 이후 맞는 위기와 극복의 과정도 함께 그려냈다.

<테라스 하우스: 도시남녀> 예고편

 

Writer

좋아하는 것들 언저리에서 담 넘어 구경하는 걸 즐기다가 지금은 음악을 하고 있다. 똑같은 매일을 반복해야만 갈 수 있는, 낯설고 새로운 곳을 향해 나아가보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