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L_DDS_0000000000223680.png

가을의 끝자락에 들어서며 마지막 화려함을 뽐냈던 단풍도 낙엽이 되었다. 쓸쓸함이 감도는 계절, ‘Autumn Leaves’는 이 시기 TV나 거리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대표적인 시즌 송이다. 전 세계 어디에서나 클래식, 재즈, 팝의 장르를 불문하고 수많은 아티스트가 자신의 레퍼토리로 삼았던 스탠더드 명곡이고, 국내에서도 많은 가수가 ‘고엽’이라는 제목으로 부르곤 했다. 최근에는 블루스 기타리스트 에릭 클랩튼이 스무 번째 정규 스튜디오 앨범 <Clapton>(2010)에 삽입하여 유튜브 조회 수 1천만을 넘기면서 불후의 명곡임을 확인하기도 했다.

에릭 클립튼 ‘Autumn Leaves’(2010)

명곡 ‘Autumn Leaves’가 세상에 나온 지는 70년이 넘었다. 프랑스로 이주한 헝가리 작곡가 조셉 코스마(Joseph Kosma)는 롤랑 프티(Roland Petit)의 발레 <만남>을 위한 음악의 일부로 처음 이 곡을 만들었다. 그 후 영화 <밤의 문>에 삽입하고자 영화에 맞춰 곡을 새롭게 바꿨고, 여기에 시인 자크 프레베르(Jacques Prévert)가 가사를 붙였다. 또한 프랑스 배우 이브 몽탕(Yves Montand)이 영화에서 이 곡을 부르면서 샹송으로 인기를 얻게 되었다. 프랑스어 제목은 ‘Les Feuilles mortes(The Dead Leaves)’로, 떨어지는 낙엽을 인간의 죽음에 비유하는 슬픈 멜로디였다.

영화 <밤의 문>에서 이브 몽탕 앞에서 떠돌이가 부르는 ‘Autumn Leaves’

영어로 번역된 이 곡을 처음으로 미국에 전파한 가수는 에디트 피아프(Edith Piaf)였다. 같은 해인 1950년, 유명 작사가 조니 머서(Johnny Mercer)가 출판업자와의 미팅에서 단 10분 만에 ‘Autumn Leaves’라는 제목으로 새로운 영어 가사를 썼다. 즉석에서 이 노래를 들은 출판업자는 눈물을 흘렸다고 전해진다. 현재의 영어 가사는 오리지널 샹송의 번역본이 아니라 조니 머서의 작품이다.

팝 장르의 ‘Mr. Piano’로 불린 로저 윌리엄스

정작 이 곡이 미국에 널리 알려진 것은, 1950년 발표된 팝 피아니스트 로저 윌리엄스(Roger Williams)의 피아노 연주곡이 빌보드 톱에 오르면서다. 높은음에서 낮은음으로 떨어지는 아르페지오로 낙엽이 떨어지는 것을 묘사한 이 곡은, 빌보드 역사상 드물게 보컬곡이 아닌 연주곡으로 톱에 랭크되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경음악 레퍼토리에서 빠지지 않는 명곡으로 남았다.

로저 윌리엄스의 피아노 연주곡 'Autumn Leaves'(1950)

이어서 인기 가수 냇 킹 콜(Nat King Cole)의 보컬 곡이 히트를 쳤고 이 노래를 담은 동명 영화 <Autumn Leaves>(1956)가 제작되었다. 같은 해 재즈 피아니스트 에롤 가너(Erroll Garner)가 발매해 백만 장의 판매고를 올린 명반 <Concert by the Sea>에 삽입되면서 재즈 스탠더드로 확고히 자리를 잡았다.

냇 킹 콜 ‘Autumn Leaves’ 실연 영상

마일스 데이비스는 당시 연인이었던 샹송 가수 줄리엣 그레코(Juliette Greco)를 통해 이 곡을 가장 빨리 접한 재즈 아티스트로 알려진다. 데이비스는 자신의 밴드 멤버였던 테너 색소포니스트 캐논볼 애덜레이의 명반 <Somethin’ Else>(1958)에 참여하며 ‘Autumn Leaves’를 같이 연주하였다. 펭귄 북스의 <Core Collection>으로 선정된 이 명반에서는, 파커 사후 최고의 알토 색소폰 연주자로 등극한 애덜레이의 연주가 빛을 낸다. 이후 수년간 이 곡은 마일스 데이비스의 레퍼토리에서 빠지지 않았다.

마일스 데이비스와 캐논볼 애덜레이의 ‘Autumn Leaves’(1958)

‘Autumn Leaves’의 최고 연주로 알려진 것은, 웨스트 코스트 재즈를 대표하는 쳇 베이커(트럼펫)와 폴 데스몬드(알토 색소폰)이 함께 콤보를 이룬 1974년 녹음이다. 폭행 사건으로 턱뼈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은 베이커가 오랜 공백 끝에 발표한 앨범 <She Is Too Good To Me>에 수록된 이 곡은 유튜브 조회 수 1천만을 넘길 만큼 여전히 사랑받고 있다.

쳇 베이커와 폴 데스몬드의 ‘Autumn Leaves’(1974)

‘Autumn Leaves’는 장르를 넘나드는 크로스오버 곡이기도 하다. 컨트리 가수인 지미 로저스(Jimmie Rogers)는 컨트리 장르로 차트 상위권에 올렸으며, 본드걸로 나왔던 자메이카 가수 그레이스 존스(Grace Jones)는 댄스곡으로 편곡하기도 했다. 영국의 일렉트로닉 팝 듀오 콜드컷(Coldcut)은1993년 이 곡을 일렉트로닉 장르로 편곡하여 영국 싱글 차트에 50위권에 올렸다.

콜드컷의 ‘Autumn Leaves’ 뮤직비디오

가장 최근에는 노벨 문학상을 받은 밥 딜런(Bob Dylan)의 애창곡으로 더욱 유명해졌다. 딜런은 한 인터뷰에서 “이 곡을 부른다면, 사랑과 상실에 대해 뭔가를 알거나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이 노래는 깊이가 있는 곡이다. 어린 학생은 절대로 마음에 와닿게 부를 수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 노래를 그의 근작 앨범 <Shadows in the Night>(2015)에 수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