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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25일 미국 대중음악의 레전드 팻츠 도미노(Fats Domino, 1928~2017)가 고향인 뉴올리언스에서 노환으로 89년의 생을 마감했다. 그는 1950년대 로큰롤이 유행할 무렵 최고 스타로 등장했으며, 그를 앞서 나간 스타는 엘비스 프레슬리가 유일했다. 1955년부터 1960년까지 11곡의 Top 10 히트곡을 냈으며, 생전에 판매한 음반은 1억 장이 넘는다. 뚱뚱한 체형으로 왕성한 식욕을 자랑했던 블루스 피아니스트 팻츠 왈러(“Fats” Waller)를 따라 ‘팻츠’라는 별명을 갖게 된 그는, 1949년 자신을 상징하는 곡 ‘The Fat Man’을 히트시키면서 대중음악계에 등장했다.

1949년 발매한 <The Fat Man>은 백만 장을 판매하여 골드 세일즈를 기록하였다

1950년대 중반 ‘Ain’t That a Shame’(1955)을 톱 10에, ‘Blueberry Hill’(1956)을 톱 2에 올려놓으며 톱스타로 등극했다. ‘Ain’t That a Shame’은 팻 분(Pat Boone)이 부드러운 버전으로 리메이크해 빌보드 톱에 랭크되었으며, 이는 라디오 채널이 흑백으로 분리되어 있던 당시 팻츠 도미노의 전국적인 인기 상승효과를 가져왔다. ‘Blueberry Hill’은 5백만 장 이상이 팔리며 R&B 차트 11주간 1위를 차지하여 그를 미국 원조 R&B 가수 중 하나라고 부르게 되었다.

팻츠 도미노 ‘Ain’t That a Shame’(1955)
팻츠 도미노 ‘Blueberry Hill’(1956)

그는 1970년대 들어서도 계속 음반을 발표하였으나 빌보드 차트에서 이름을 발견하기 힘들어졌고, 영국 공연 중 건강 문제로 한 차례 고생하면서 고향인 뉴올리언스에 칩거하기 시작했다. 워낙 겸손하고 수줍어하는 성격 때문에 힘에 부쳤던 가수 생활을 청산하고 중요한 행사 외에는 집에서 잘 나오지 않았다. 2005년 태풍 카트리나가 뉴올리언스를 강타했을 때도 피신하지 않고 집에 머무르다가 한때 연락이 두절되기도 했다. 이 때문에 팻츠 도미노가 사망했을지도 모른다는 뉴스가 퍼지면서 한동안 미국을 떠들썩하게 했다. 그와 가족들은 해안경비대에 의해 구조되어 임시 피난처에 머물러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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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올리언스 재즈의 중심 프렌치 쿼터에 있는 그의 동상

태풍 카트리나에 의한 재해로 휩쓸려간 그의 재산 목록에는 빌 클린턴 전 대통령에게서 받은 국가 문화훈장(National Medal of Arts)도 있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개별적으로 그를 방문하여 다시 만든 훈장을 수여하며 다시금 전국적인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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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소문을 듣고 팬이 그의 집에 스프레이로 추도문을 적어 놓았다

많은 팬들이나 평론가들은 그의 음악은 ‘로큰롤’이라 평하며 그를 창시자의 한 명으로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올려놓았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음악은 뉴올리언스의 딕시랜드(Dixieland) 스타일이며 고향에서 하던 음악과 다르지 않다고 극구 부인하였다.

그의 사망 소식을 알리는 TV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