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는 영화 제작 11년 만인 1993년 5월, ‘감독판’으로 개봉했다

후속편 <블레이드 러너 2049>(2017)는 전작 <블레이드 러너>(1982)의 배경인 2019년으로부터 30년 후의 이야기를 다루는 속편이다. 많은 사람들이 최고의 SF 걸작으로 칭송하는 원작 영화는 개봉 당시만 해도 극과 극의 평가를 받으며 ‘저주받은 걸작’으로 불리던 영화였다. 개봉 성적은 예상만큼 좋지 않았고,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SF 영화 <더 씽>(The Thing, 1982), <스타 트랙 2>(1982), <E.T.>(1982)와 힘겨운 경쟁을 치뤄야 했다. 평론가들의 평도 극과 극을 오갔다. 특수 효과나 영화 음악은 미래 지향적이라는 후한 평가를 받았지만,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는 “Blade Crawler”, <컬럼비아 레코드>는 “SF 포르노그라피”라며 비아냥거렸다. 하지만 다른 나라에서는 컬트 수준의 광팬을 만들어 내며 최고의 SF 걸작이라는 평가가 나오기 시작했다. 미국에서는 개봉 10주년에 리들리 스콧 감독의 의도대로 편집된 ‘감독판’이 발표되면서 재평가와 함께 폭발적인 반응이 이어졌다.

<블레이드 러너 2049> 예고편

35년 만에 출현한 <블레이드 러너>의 후속편에는 당시 원작에 출연했던 해리슨 포드 만이 다시 등장하고, 주인공 블레이드 러너(도망친 복제인간을 추적하는 전문가)에는 라이언 고슬링이 새롭게 나섰다. 하지만 2017년에 바라본 2049년의 이야기는 아직까지 오리지널의 명성에 미치지 못한 것 같다. 오리지널 <블레이드 러너>에 얽힌 일화들을 재조명해 보았다.

 

* <블레이드 러너>에 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명대사 “Tears in Rain”

<블레이드 러너>를 걸작이라고 칭송할 때 자주 인용되는 명장면이다. 탈출한 네 명의 복제인간 중 마지막 남은 리더 ‘로이 배티’(룻거 하우어)가 자신을 추격하던 블레이드 러너 ‘데커드’(해리슨 포드)를 오히려 죽음에서 구해주고 4년이라는 수명이 다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내뱉는 독백은, 광팬이라면 암송할 수 있을 정도로 유명하다.

<블레이드 러너>의 마지막 Tears in Rain 명장면

“I've seen things you people wouldn't believe. Attack ships on fire off the shoulder of Orion. I watched C-beams glitter in the dark near the Tannhäuser Gate. All those moments will be lost, in time, like tears in rain. Time to die.”

이를 연기한 네덜란드 출신의 악역 전문 배우 룻거 하우어(Rutger Hauer)가 시나리오에 있던 문장을 직접 고치고 다듬었는데, 문장의 핵심 구절인 “Tears in rain”은 오롯이 그가 지은 것이다. 흰색 비둘기 역시 그의 아이디어다. 이 장면의 촬영이 끝났을 때 지켜보던 스태프는 박수하며 어떤 이들은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고 한다.

 

40년 후의 로스앤젤레스 풍경

1982년에 개봉한 영화의 배경은 2019년의 로스앤젤레스이다. 약 40년 후의 미래사회를 상상하였지만, 2017년이 된 지금 로스앤젤레스와 비교해보면 별로 비슷하지는 않다. 하지만 전쟁과 환경오염으로 항상 비가 내리는 칙칙한 대도시, 4백 층이 넘는 거대 빌딩과 일본풍의 네온사인, 포장마차와 국수집으로 혼잡한 차이나타운과 그곳을 살아가는 사람들로 가득 찬 암울한 미래도시를 당시의 시각 효과 기술과 상상력으로 훌륭하게 그려내 호평을 받았다.

영화 <블레이드 러너> 오프닝 신

이를 구현한 비주얼 콘셉트 아티스트는 시드 미드(Syd Mead)라는 유명한 시각 디자이너로, <스타트랙>, <에이리언>, <트론> 같은 미래 SF 영화에 참여하여 명성을 쌓았다. 영화에 등장하는 초고층 건물, 공중을 나는 자동차, 미래형 기계장치 모두 그의 스케치에서 창조되었다.

<블레이드 러너>의 한 장면

 

리들리 스콧 감독과 배우, 스태프 간의 불화

리들리 스콧은 이제 최고 반열에 오른 명감독이 되었지만, 당시만 해도 유럽에서 단 두 편의 영화를 제작하고 할리우드에 입성한 초짜 감독이었다. 감독이 전권을 행사하는 영국의 제작환경과는 달리, 제작자와 스태프의 권한이 센 할리우드 관습에 애를 먹었고 자신의 뜻대로 편집할 수도 없었다. 그는 10년이 지나서야 자신의 의도대로 감독판을 제작하여 재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

‘데커드’가 인조인간이었다고 밝히는 리들리 스콧 감독. 하지만 해리슨 포드는 아니라고 한다

또한 감독은 주연 배우 해리슨 포드와 촬영 내내 다투었고, 지금도 주인공인 ‘데커드’가 인조인간인지 아닌지에 대해 서로 엇박자를 내고 있다. 튀는 성격으로 유명한 배우 숀 영(Sean Young) 또한 로맨스 상대 역의 해리슨 포드와 사이가 좋지 않아 스태프는 그들을 두고 ‘Love Scenes’이 아니라 ‘Hate Scenes’을 찍는다고 수군거리기도 했다.

해리슨 포드와 숀 영의 로맨스 신

 

반젤리스의 전자 음악

영화 <불의 전차>(Chariots of Fire, 1981)로 1982년 제54회 아카데미 시상식 음악상을 받은 그리스 출신 록 키보디스트 반젤리스(Vangelis)의 음악은 영화 <블레이드 러너> 전체에 걸쳐 암울한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 음악은 이듬해 영국 아카데미와 골든글로브 시상식 후보작으로 오른 채 수상으로는 이어지지 못했지만, 평단과 팬들의 열광적인 호평을 얻었다.

<블레이드 러너>의 엔딩 테마곡

최종 편집된 영화에는 반젤리스의 작품 다수가 미수록된 채 개봉되었고, 영화사와의 불화로 인해 사운드트랙 앨범 또한 발매가 늦춰졌다. 합의가 되지않자 영화사는 새로운 밴드를 고용하여 사운드트랙 앨범으로 발표하는 촌극이 벌어졌다. 반젤리스의 오리지널 사운드트랙은 영화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진 후인 1994년이 되어서야 미수록 곡들을 포함하여 발매되었다.

재즈풍의 ‘One More Kiss, Dear’는 반젤리스의 곡에 가수 피터 스켈런(Peter Skellern)이 가사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