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벤슨(George Benson, 1943~)의 공연은 언제나 열정으로 가득 차 있다. 짙게 화장한 얼굴에 느끼한(?) 표정으로 땀을 뻘뻘 흘리며 가벼운 몸동작도 서슴지 않는다. 청중을 즐겁게 하기 위해서 무엇이든 가리지 않는 자칭 “엔터테이너”이지만, 그는 원래 장고 라인하르트(Django Reinhardt)를 동경하고 웨스 몽고메리(Wes Montgomery)에게 가르침을 받은 정통 재즈 기타리스트 출신이다. 21세에 재즈신에 등장해 성공적인 솔로 경력을 쌓기 시작했고, 마일스 데이비스의 부름을 받아 그의 앨범 <Miles in the Sky>(1968)에 참여하기도 했다. 마일스는 자신의 밴드에 그를 영입하려고 했지만, 그의 매니저는 “조지, 우리는 마일스보다 더 성공해야 해”라며 거절할 것을 권했다. 벤슨은 두말하지 않고 매니저의 권고를 받아들였다. 그도 상업적인 성공에 대한 열망이 누구보다 컸던 것이다.

뉴요커가 사랑하는 곡 ‘On Broadway’는 그에게 그래미 R&B 보컬상을 안겼다

1960년대 그가 ‘Soul Jazz’를 표방하며 발표한 앨범들은 재즈 차트의 상위권에 진입하였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상업적인 성공과 스타덤에 오르기 위해서는 상대적으로 작은 시장인 ‘재즈’를 벗어나 거대 시장인 ‘팝’으로의 진입이 필요했다. 그는 새로운 팬층을 공략하기 위해 자신의 앨범에 노래를 한두 곡씩 삽입하였다. 그러나 음반 프로듀서들은 그의 보컬을 썩 좋아하지 않았고, 기타 연주에 집중하기를 원했다. 그는 연주곡으로만 구성된 앨범을 낼 것을 주장하는 프로듀서를 교체하기까지 하면서 자기 생각을 굽히지 않았다.

조지 벤슨의 최대 히트곡 'This Masquerade'는 그에게 그래미상을 안겼다.
조지 벤슨의 최대 히트 앨범 <Breezin’> 커버

1976년 재즈 전문 CMI 레이블에서 더욱 대중적인 워너 뮤직으로 이적하면서 첫 앨범 <Breezin’>을 발표했다. 여섯 곡 중 유일한 보컬 곡인 ‘This Masquerade’은 상업적인 성공을 열망하던 그에게 크나큰 전환점이 되었다. 싱어송라이터인 레온 러셀(Leon Russell)이 작곡하였고, 인기 듀오 카펜터스가 리바이벌했던 곡이지만, 매니저가 권해서 처음으로 들어 봤을 정도로 존재가 희미한 곡이었다. 조지 벤슨의 소울풀한 창법과 재즈 분위기의 연주로 편곡되어 마침내 가치가 드러난 것이다. 앨범 <Breezin’>도 이 노래의 인기에 힘입어 빌보드 팝, R&B, 재즈 차트 모두 1위에 올랐고 ‘Song of the Year(올해의 노래)’를 포함한 다섯 개의 그래미를 휩쓸었으며, 지금까지 약 1천만 장이 넘게 팔렸다.

앨범 <Give Me the Night>(1980) 타이틀송. 빌보드 4위까지 오른 빅히트곡이다.

그는 광범위한 팬덤을 확보하며 발표하는 앨범마다 승승장구했다. 이제는 재즈 기타리스트를 넘어선 스타 가수가 되었고, “기타를 든 냇킹콜(Nat King Cole)”이라 불리기도 했다. 부와 명예를 위해 재즈를 저버린 건 아니냐는 기자의 질문에, “음악으로 무엇을 하든, 우리는 성공을 갈망하지 않는가? 물론 금전적인 혜택도 보지만 말이다.” 하고 받아넘겼다. 음악적인 변신에 대한 비난에도 “평론가들은 처음엔 우리에게 마구 험담을 해댔어요. 어떤 카테고리에 정확하게 들지 않으면 양쪽 모두로부터 비난을 받게 되죠”라며 별로 개의치 않았다.

1983년 그래미를 수상한 ‘Turn Your Love Around’. 무대에서의 쇼맨십은 그의 강점이다

그는 성공을 위해 자신의 뿌리인 재즈를 넘어 크로스오버 아티스트로 변신했고, 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불렀다. 마일스 데이비스를 넘어서고 싶었고, 상업적 측면에서는 그를 넘어섰다. 노래를 잘하는 재즈 기타리스트인지, 기타를 잘 치는 대중적 가수인지는 그에게 중요하지 않다. “<Breezin’>은 내가 성취할 것이라 꿈도 꾸지 못한 곳으로 나의 경력을 이끌어 온, 정말 소중한 앨범이었어요” 라고 한 조지 벤슨. ‘This Masquerade’를 부른 일은 그의 인생에 가장 중요한 순간이었다고 회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