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 전성기라 불리는 1940년대 후반에서 1950년대. 당시 많은 재즈 스타들이 높은 인기에도 불구하고 장거리 순회연주로 고단한 생활에 시달리며 술과 마약에 중독된 삶을 살았다. 누구나 당대 최고의 비밥 피아니스트로 인정하는 버드 파웰(Bud Powell, 1924~1966)의 삶 또한 그랬다. 그는 상습적인 마약 복용과 정신병으로 인해 수시로 정신병원을 드나들었다. 어떤 평론가는 1954년 이전에 녹음된 것만 ‘진짜 버드 파웰’이라고 말할 정도로, 그의 음악적 삶은 마약과 정신병으로 얼룩져갔다.

버드 파웰이 작곡한 대표적인 오리지널 'Bouncing with Bud'(1949)

하지만 그의 전성기 시절인 1954년 이전의 연주 영상은 찾아보기 어렵다. 대신 유럽으로 건너가 건강이 다소 호전된 시기인 1950년대 후반의 영상에서 그의 건재한 모습을 볼 수 있다. 특히 프랑스의 앙테베 재즈 페스티벌 첫 회에 찰스 밍거스의 콤보에서 연주하는 영상에서 여전히 건반을 보지 않고 멜로디를 흥얼거리며 즉흥적으로 빠르게 연주하는 그를 볼 수 있다.

Bud Powell Solo 'Sweet and Lovely'(1960) at Antibe, France

버드 파웰은 어릴 때 아트 테이텀(Art Tatum)에 매료되어 그를 모방하며 스윙밴드에서 연주했고, 같은 동네에서 자라난 델로니어스 몽크(Thelonious Monk)의 소개로 비밥 연주자들과 교류하면서 비밥 최고의 피아니스트가 되었다. 특히 그는 찰리 파커의 색소폰 연주를 피아노로 재현했는데, 이는 ‘찰리 파커의 피아노 버전’이라 불릴 정도였다. 그러나 재미있는 사실은 그가 찰리 파커와 앙숙 관계였고, 연주 중에 자주 다투었다는 것이다.

그는 많은 재즈 스탠더드 곡을 작곡했는데 그중 ‘Un Poco Loco’는 예일대의 문화평론가 해럴드 블룸 교수가 ‘20세기 최고 아트의 하나’로 선정한 명곡이다.

Bud Powell 'Un Poco Loco'(1951)

전성기를 누리던 1945년 1월, 필라델피아에서 공연 후 밴드 동료와 헤어진 그는 술에 취한 채 브로드스트리트 역 앞을 배회하다가 경찰에 체포되어 유치장에서 심하게 얻어맞았다. 이후 그는 심한 두통을 호소했고 정신병원에서 3개월을 지내야 했다. 그로부터 2년 후 뉴욕 할렘의 나이트클럽에서 싸움이 붙었던 날에는 맥주병으로 눈 부위를 얻어맞았다. 과거 병력이 있던 그는 또다시 정신병원에 8개월 동안 갇혔다. 그는 인종 편견에 의한 학대가 있었다고 호소했지만, 분노를 가라앉히지 못해 전기충격 치료까지 받아야 했다.

버드 파웰은 이후에도 주기적으로 정신병원을 드나들었다. 1959년에는 프랑스로 건너가 파리에서 4년간 머물렀는데, 이 시기의 버드 파웰을 모티프로 1986년 영화 <라운드 미드나잇>이 만들어졌다. 1963년 미국으로 돌아온 그는 결핵 진단을 받았고, 계속된 과음과 건강 악화, 이상행동을 보이다가 42세가 되던 이듬해 사망한다.

버드 파웰의 장례식 퍼레이드(1964. 8.)

버드 파웰의 불행했던 삶은 재즈 연주자로서의 고단한 생활과 정신 질환을 비롯해 인종 편견과 경찰 폭력 같은 여러 환경적 요인도 영향을 끼쳤다. 유럽으로 건너간 그는 여자친구의 보살핌으로 정신적 안정을 찾았던 시기인 1962년 코펜하겐 몽마르트 카페에서 예전의 연주 실력을 과시하기도 했는데, 그때가 사망하기 불과 2년 전이었다.

Bud Powell 'Anthropology'(1962) at Cafe Montmartre, Copenhagen

재즈 피아니스트의 거장 빌 에반스는 자신에게 영향을 준 유일한 피아니스트로 버드 파웰을 꼽기도 했다. 삶의 질곡에도 불구하고 버드 파웰은 지금까지도 후대 피아니스트에게 ‘전설 중의 전설’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