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그래미 시상식에서 최고 보컬앨범상을 수상한 그레고리 포터(Gregory Porter, 1971~)는 유난히 거대한 몸집에 턱수염이 무성한 중년 남자다. 얼굴의 흉터를 가리기 위해 언제나 모자와 머리 전체를 뒤덮는 마스크를 쓰고 대중 앞에 나선다. 하지만 그의 음악은 외모에서 풍기는 선입견을 무색하게 한다. 평론가들은 그를 가리켜 “귀에 가장 편안한 목소리(The most easy-on-the-ear voice)”라거나, “크림 같은 바리톤”이라는 찬사를 멈추지 않는다. 뉴욕의 레스토랑에서 요리사로 일하면서 틈틈이 클럽에서 노래하던 그는, 마흔이 다 될 무렵에야 비로소 자신의 첫 앨범을 출반하면서 늦깎이로 데뷔하였지만, 이제껏 발표한 네 장의 앨범 모두 그래미 재즈 앨범상에 후보로 이름을 올렸고 두 개의 그래미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그래미 2017 시상식에서 최고 보컬앨범상을 수상한 <Take Me to the Alley> 커버
그에게 두 번째 그래미를 안긴 앨범 <Take Me to the Alley> 홍보 영상

그는 고등학교 때 잘 나가던 미식축구 라인맨(Lineman)을 맡은 선수였다. 졸업 후 샌디에이고 주립대학교에 특기 장학생으로 진학할 정도로 이름을 날리던 유망주였으나, 고등학교 2학년 때 입은 어깨 부상이 악화해 영원히 선수 생활을 접어야 했다. 실의에 빠져 방황하던 젊은 날, 어릴 때부터 자신이 목사로 일하던 교회에서 노래하기를 권유하던 어머니가 갑자기 암으로 사망하면서 “노래해, 아가야, 노래를!(Sing, baby, sing!)”라는 유언을 남긴다. 고향을 떠나 뉴욕에 진출한 그는, 요리사로 일하면서 클럽에서 노래하거나 브로드웨이에서 배우 생활을 시작한다. 그러다 마흔이 될 무렵 첫 앨범 <Water>(2010)를 출반하는데, 이 앨범이 평론가들의 호평을 받으며 그래미 후보에 오른다. 이후 그는 블루노트 레이블로 이적하여 두 장의 앨범을 발표하고, 모두 그래미 최고 보컬앨범상을 받으며 정상의 재즈 보컬리스트로 등극했다.

2012년 발표한 포터의 생애 첫 싱글 ‘Be Good (Lion’s Song)’

그에게 어머니는 각별한 존재였다. 아버지는 그의 생애 중 이틀 정도 만나 얘기했던 기억 외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차별이 심한 백인 동네에서 자그마한 교회의 목사로 일한 어머니는 강인하고 대범한 존재였다. 거리의 집 없는 아이들을 데려와 재우기도 하고, 포터의 옷을 나눠 주기도 하던 어머니는, 안타깝게도 암을 이겨내지 못했다. 임종을 집에서 보내기 위해 퇴원한 어머니는 마지막 힘을 다해 그에게 노래를 다시 시작할 것을 권했다. 하지만 포터는 어머니를 잃고 나서도 한동안 노래를 할 수 없었다. 그의 아버지 장례식에 초대를 받고 나서야 아버지가 재즈 가수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아버지에 대한 미움도 눈 녹듯이 다 사라졌다.

세 번째 음반 <Liquid Spirit>의 타이틀곡. 이 음반은 그에게 첫 그래미를 안겼다

포터는 자신의 노래를 직접 작사 작곡하는데 대부분의 곡이 어딘가 모르게 슬프다. 특히 그의 가사는 진솔하고 듣는 이의 가슴에 와 닿는 내용이라는 평이다. 더 이상 선수로 뛸 수 없는 슬픔, 자신의 전부나 다름없는 어머니를 잃은 슬픔, 아버지란 존재가 희미한 슬픔이 베었을지도 모른다. 그의 인생사를 알고 있는 청중들은 으레 그가 다음 레퍼토리로 ‘Mother’s Song’을 부르기를 기대한다. 요즘 이 노래는 미국에서 어버이날에 자주 연주되는 레퍼토리 중 하나가 되었다.

Gregory POrter & The Metropole Orchestra 'Mother's S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