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밥 시절의 색소포니스트 소니 스팃(Sonny Stitt, 1924~1982)은 뛰어난 연주 실력으로 생애 1백여 장이 넘는 앨범을 발표하였으나, 왕성한 활동만큼 그에 대한 평가와 인기는 따라주지 않은 뮤지션이었다. 그는 프로 연주자들이 일대일로 연주 대결을 벌이는 컷팅 콘테스트(Cutting Contest)에서 기피 대상이 될 정도로 실력이 뛰어났으나, 찰리 파커(Charlie Parker)와 이상하리만큼 스타일과 사운드가 비슷해 ‘찰리 파커 모방자(mimic)’라는 꼬리표가 붙어 다녔다. 찰리 파커의 레퍼토리 중 하나인 ‘Lover Man’을 들어 보며 얼마나 비슷한지 비교해 보자.

1951년 뉴욕의 스튜디오에서 녹음된 찰리 파커의 ‘Lover Man’. 그가 즐겨 연주하던 레퍼토리 중 하나다

소니 스팃의 ‘Lover Man’. 이 영상은 유튜브에서 20만 조회수를 기록할 만큼 명연주로 유명하다

소니 스팃은 1943년 캔사스 시티로 찰리 파커를 찾아가 그들의 스타일과 음색이 유사하다는 것을 직접 확인하기도 했다. 당시 찰리 파커는 “큰일 났군요. 당신 연주는 나랑 정말 비슷하네요.” 하며 걱정을 표했고, 이에 대해 스팃은 “그렇기는 한데 어쩔 수가 없네요. 내 연주 방식은 내가 아는 유일한 방식이라서요.” 하고 답했다고 한다. 스팃은 찰리 파커와의 유사성에 대해 모방이 아니며 우연이라고 강변했다. 하지만 파커가 네 살 연장자인 데다 당대 최고의 인기 스타임을 고려하여, 많은 사람은 스팃이 파커를 모방하였다고 생각했다. 더군다나 스팃은 파커의 대체 주자로서 자주 고용되곤 하였다. 빌리 엑스타인(Billy Eckstine)의 밴드에서, 다음은 디지 길레스피(Dizzy Gillespie)의 밴드에서 찰리 파커가 떠난 자리에 대타로 나서며 비밥 재즈 신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소니 스팃 트리오의 'There Will Never Be Another You'(1956). 그의 알토 연주는 당대 최고였으나, 음색이나 스타일은 찰리 파커로 착각할 정도로 비슷했다.

그는 무엇에다 복수라도 할 듯이 열정적으로 녹음과 공연을 계속하여 가장 기록을 많이 남긴 아티스트(The most documented artist) 중 하나로 남았다. 왕성한 연주 활동 때문에 그는 ‘외로운 늑대(Lone Wolf)’라는 별명도 얻었다. 그와 연주를 함께 한 동료들은 뭔가 보여주려고 하는 듯한 공격적인 프레이징(Phrasing)에 놀라곤 했다.

소니 스팃은 열정적으로 레코딩과 연주공연에 나서 ‘외로운 늑대’로 불렸다 

서부 지역의 유명 알토 주자인 아트 페퍼(Art Pepper)는 그의 자서전 <Straight Life>에서 “소니 스팃이 같이 연주하자고 청하는 것은, 마치 핵 주먹 마이크 타이슨이 몇 차례 주먹을 교환하자고 청하는 것 같았다”고 술회하기도 했다. 그는 파커를 모방했다는 오명을 벗기 위해, 주 악기인 알토 대신 테너 색소폰을 연주하는 일이 잦아졌다. 테너를 연주할 때면 한결 파커의 연주와 다른 스타일이 나온다는 이유에서였다.

1960년대 초부터 테너 색소포니스트 진 아몬스(Gene Ammons)와 ‘Boss Tenors’라는 별칭으로 테너 색소폰을 듀엣으로 연주하면서 파커를 많이 벗어났다는 평가를 받았다

파커가 사망하고 10여 년이 지난 후에도 평론가들의 인식은 여전했다. 1963년 재즈 비평가 스티브 레이스(Steve Race)는 한 칼럼에서 “파커의 연주를 중단하고 스팃의 연주를 할 때가 되었다”며 포문을 열었다. 이에 스팃은 발끈하며 “우리는 모두 자신만의 연주 스타일이 있다.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살고 연주하고 느끼라고 말할 수는 없다. 나는 나의 스타일을 자유롭게 가져갈 것이다. 개인의 연주 스타일을 어찌할 수 없다는 데 대해 나와 파커는 서로 동의했고, 그날 우리는 맥주를 마시며 같이 연주를 즐겼다”고 대응했다.

1966년 발표한 헌정 앨범 <Stitt Plays Bird>에서 파커의 오리지널 ‘Ornithology’를 연주하였다. 앨범 커버는 존 콜트레인의 <Coltrane’s Sound>와 유사하여, 평론가들의 비난에 개의치 않는다는 무언의 항의가 느껴진다

1970년대 들어 앨범 <Tune Up!>이 호평을 받고 비밥 레전드들과 ‘Giants of Jazz’라는 밴드를 결성하여 활동에 나서면서 그에 대한 평론가들의 시각은 많이 달라지기 시작했으나, 오랜 기간 지속한 폭음 습관으로 그의 건강은 악화되기 시작했다. 젊은 시절 마약을 끊으면서 시작된 음주 습관이었지만, 평생 그를 따라다닌 ‘모방자’라는 오명과 그의 뛰어난 알토 실력이 평가절하된 데 대한 분노도 큰 요인이었을 것이다. 그는 1982년 워싱턴 D.C.에서 심장마비로 눈을 감았으며, 그의 사망 소식을 알리는 <뉴욕 타임스> 기사에는 “찰리 파커와 비유되는 스타일(Style Likened to Charlie Parker)”로 묘사되었다.

1971년 뉴포트 재즈 페스티벌에서의 Giant of Jazz 실황. 텔로니어스 몽크(피아노), 디지 길레스피(트럼펫), 아트 블레키(드럼) 같은 레전드와 같이 한 소니 스팃을 볼 수 있다

찰리 파커와 소니 스팃의 이야기는 재즈 역사에 자주 등장하는 에피소드이나, 적극적인 모방인지 우연의 일치인지는 알 수 없다. 최근 인터넷의 색소폰 동호회에 소니 스팃의 팬이 올린 코멘트가 눈길을 끈다.

사람들은 소니 스팃이, 특히 알토를 연주할 때 찰리 파커와 비슷하게 들린다고 말한다. 그것이 나쁜 것이라고는 말하지 않겠다. 그러나 소니 스팃은 자신의 음색을 갖고 싶어 테너를 연주했고 사람들은 더 이상 파커와 비슷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찰리는 비밥의 선구자였고 소니 스팃은 그 스타일을 택하여 더욱 발전시켰다. 나는 찰리 파커보다 소니 스팃을 더 즐겨 듣는다. 그는 (찰리 파커 보다) 더 세련되고 훌륭한 음색을 가지고 있으며, 이것이 찰리 파커의 영광을 뺏지는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