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작가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Erich Maria Remarque)의 반전 소설 <서부전선 이상 없다>(All Quiet on the Western Front, 1928)가 출간된 지 90여 년 만에 세 번째 영화로 리메이크되었다. 1차세계대전에 참전한 독일 병사의 눈으로 바라본 전쟁의 참상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영화 기술 덕분에 더욱 실감나고 무겁게 전해진다. 올해 10월 28일 넷플릭스에 올라와 로튼토마토 98%를 기록했고, 며칠 만에 넷플릭스 영화 1위에 올랐다. 원작이 출간된 1928년 이후 독일에서 나치가 정권을 잡자 이 책을 금서로 지정하여 불태웠고, 후일 선전상이 된 요제프 괴벨스의 주도로 영화가 상영되던 극장에 뱀을 풀어놓아 관객을 내쫓기도 했다. 비록 독일 원작이지만 미국에서만 두번이나 영화로 제작되었는데, 이번에는 모국인 독일 영화로 처음 제작되었고 독일 배우들이 독일어로 연기한다는 데 의미가 있다.

넷플릭스 영화 <서부전선 이상 없다>(2022) 예고편

 

나치가 금지한 반전 서적

1917년 전쟁채권을 홍보하기 위한 포스터(왼쪽)를 패러디한 레마르크의 원작 표지(오른쪽)

레마르크는 1차세계대전에 참전하여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겼던 경험을 바탕으로, 소설 <서부전선 이상 없다>(1928)와 후속편 <귀로>(The Road Back)를 써서 대표적인 반전 작가로 부상했다. 데뷔작 <서부전선 이상 없다>는 그해 독일에서 150만 부가 판매되었고, 이듬해 영어로 번역되어 미국에서도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그는 자신이 쓴 소설이 정파적이지 않다고 줄곧 주장했지만, 나치가 정권을 잡으면서 그가 쓴 책은 모두 금서로 지정되어 불태워졌다. 후일 나치의 선전상이 된 괴벨스는 작가의 행적이 ‘비애국적’이라며 그를 매도했고, 그의 책을 바탕으로 미국에서 영화로 제작되자 ‘유태인 영화’라 낙인을 찍고 영화관에 뱀을 풀어 넣기도 했다. 그는 나치의 보복을 피해 프랑스로 탈출했다가 미국 시민권을 받았으나 다시 돌아와 모국과 가까운 스위스에서 여생을 보냈다. 그의 여동생은 독일에 머물면서 레지스탕스 활동을 하다가 나치에 체포되어 처형된 바 있다.

저자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 소개 영상

 

참호전의 참상과 청춘의 헛된 희생

“이 책은 고발도 아니고 고백도 아니다. 모험은 더더욱 아니다.”로 시작되는 레마르크의 머리말은 유명하다. 작가는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가상의 평범한 독일 청년 ‘폴 보이머’를 통해 참호전으로 상징되는 1차세계대전의 참상을 그렸다. 당시 프랑스와 독일이 대치한 서부 전선은 보병을 동원하여 참호를 파고 버티는 양상으로 굳어졌으며, 상대의 무수한 총탄을 뚫고 고작 수백 미터를 진격하고 적진을 뺏고 얼마 후 다시 뺏기는 소모전을 벌이면서 양쪽에서 약 300만 명이 사망하였다. 병사들은 적의 기습이나 저격, 그리고 가스전에 시달렸고, 비만 오면 참호가 진흙탕으로 변해 병균으로 들끓었다. 특히 본토에서 멀리 떨어진 독일군은 물자 보급이 충분하지 않아 굶주리기 일쑤여서, 병사들에게는 그야말로 생지옥이나 다름없었다. 소설과 영화 <서부전선 이상 없다>는 종전 10년이 훌쩍 지난 시점에 나왔으나, 당시 참호전을 실감나게 그려 참전용사들에게는 끔찍한 기억을, 젊은 세대에게는 반전 감정을 불러 일으켰다.

영화 <서부전선 이상 없다>(1930)의 참호전 장면

 

전운이 감도는 시기의 반전 영화

세 차례 영화로 제작된 <서부전선 이상 없다> 포스터

소설을 바탕으로 만든 첫 영화 <서부전선 이상 없다>(1930)는 미국 서부지역에서 2,000여 명의 엑스트라를 동원하여 촬영되었고, 아카데미영화제에서 작품상과 감독상을 받으며 호평을 받았다. 이 영화는 반전 영화의 걸작으로 손꼽히며, 미국 의회도서관에 영구 보존되었다. 1979년에는 CBS가 작가 레마르크의 미망인에게 10만 달러의 판권료를 지불하고 TV 영화로 제작하여, 골든글러브와 에미 시상식에서 연이어 수상하였다. 이 영화에는 우리에게 70년대 인기 외화로 친숙한 <월튼네 사람들>의 리처드 토마스와 <에어울프>의 어니스트 보그나인(Ernest Borgnine)이 출연했다. 첫 영화는 제2차 세계대전을 앞둔 시점에, 두 번째 영화는 베트남 전쟁이 끝나고 냉전이 활발하던 시기에 제작되어 반전의 메시지를 전파했다. 독일에서 제작된 세 번째 리메이크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유럽 전체에 전운이 드리운 시기에 나와, 로튼토마토 91%의 평점을 받으며 순항하고 있다.

TV영화 <서부전선 이상 없다>(1979) 예고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