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터미널>(2004)에서 카메오로 출연한 그를 볼 수 있다. 영화가 거의 끝날 무렵 주인공 ‘빅터’(톰 행크스)가 사인을 받기 위해 찾아다녔던 인물이 ‘A Great Day in Harlem’라 불리던 오래된 사진의 일곱 명 생존자 중 하나인 재즈 레전드 베니 골슨(Benny Golson)였고, 그가 영화에 재즈 연주자로 잠시 출연했던 것이다. 1958년 8월 12일, 이 사진을 찍은 사람은 프리랜서 포토그래퍼 아트 케인(Art Kane)이었으며, <에스콰이어> 매거진 주관으로 유명 재즈 뮤지션 57명을 할렘으로 불러모아 재즈사에서 길이 보존된 역사적 사진을 남겼다. 이제는 사진 속의 57명의 재즈 뮤지션 중 베니 골슨과 함께 소니 롤린스 단 두 사람만 생존해 있으며, 베니 골슨이 1929년생으로 소니 롤린스보다 1년 연상이기에 올해 93세의 최고령 재즈 레전드라고 할 수 있다.

영화 <터미널> 중 카메오로 출연한 재즈 색소포니스트 베니 골슨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그를 출연시키기 위해 상당히 공을 들였다. 그는 직접 전화를 걸어 간곡히 출연을 요청했지만, 처음에는 출연을 하지 않겠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하지만 스필버그 감독이 다시 한번 전화하자, 그는 마지못해 응하면서 왜 하필 자신을 택했는지 물었다. 당시에는 자니 그리핀, 행크 존스, 호레이스 실버 등 사진 속의 레전드 뮤지션들이 다수 생존해 있었다. 스필버그 감독은 대학 시절 학교 부근 클럽에서 그의 연주를 직접 들었다며, 아무런 대사도 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여 어렵게 성사된 것이다. 후일 베니 골슨은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나 톰 행크스나 열렬한 재즈 애호가였다”라면서, 톰 행크스와는 지금도 자주 연락을 한다고 전했다. 영화 <터미널>에서 베니 골슨이 출연하여 연주한 곡이 ‘Killer Joe’였고, 배경음악으로는 그의 오리지널 중 하나인 ‘Something in B Flat’이 나온다.

베니 골슨의 오리지널 중 가장 유명한 ‘I Remember Clifford’는 요절한 클리포드 브라운에게 바치는 곡이다.

그는 재즈 레전드의 산실 필라델피아 출신이다. 같은 고등학교에서 함께 연주한 뮤지션들 중에는 존 콜트레인, 레드 갈란드, 필리 조 존스 같은 쟁쟁한 인물들이 즐비했다. 대학 졸업 후 태드 다메론, 라이오넬 햄프턴, 아트 블레키의 밴드에서 일한 골슨은, 자신의 이름으로 첫 앨범 <Benny Golson’s New York Scene>(Recorded in 1957)을 발표하며 남들보다 다소 늦게 밴드 리더로 나섰다. 1959년부터는 트럼펫의 아트 파머(Art Farmer), 트롬본의 커티스 풀러(Curtis Fuller)와 함께 재즈텟(The Jazztet)이란 이름의 밴드를 창단하였다. 그의 전성기라 할 수 있는 1956년부터 1960년까지 그의 유명한 오리지널 대부분이 작곡되었는데, ‘I Remember Clifford’(1957), ‘Killer Joe’(1960), ‘Blues March’(1958), ‘Whisper Not’(1956)이 많이 알려진 곡이다.

재즈텟의 데뷔 앨범 <Meet the Jazztet>(1960)에 수록한 ‘Killer Joe’

1970년도에는 한동안 재즈 무대에서 자취를 감추어 스튜디오에서 어레인저로 일하거나 영화나 TV 드라마 분야, 그리고 광고 프로젝트에도 참가하여 <M*A*S*H>(1972~1983), <Mission: Impossible>(1966~1973), 빌 코스비 쇼의 오프닝 음악 등에 자신의 크레딧을 남겼다. 1982년에는 예전의 동료 아트 파머와 함께 뉴욕 재즈 신으로 돌아와 ‘더 재즈텟’ 소속으로 연주 활동을 재개하였다. 베니 골슨은 지금까지 리더로서 약 30여 장의 앨범을 냈고, 그가 작곡한 재즈 오리지널은 약 300곡에 이른다. 지금도 뉴욕의 아파트에서 가족과 함께 살면서, 로스앤젤레스와 독일에도 거처를 마련하여 세 군데를 돌아다니며 바쁜 생활을 계속하고 있다.

데뷔 앨범 <Benny Golson’s New York Scene>에 수록한 ‘Whisper Not’도 베니 골슨의 유명한 오리지널이다.

사진 <A Great Day in Harlem>을 남겼던 1958년만 하더라도 그 자신은 별로 이름없는 뮤지션이었다며, 디지 길레스피, 레스터 영, 콜맨 호킨스 같은 거물들과 함께 사진을 찍은 것은 영광이었다며 그는 언제나 겸손한 태도를 잃지 않았다. 베니 골슨의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제일 첫 페이지에 그 사진 속의 가장 뒤편에 아트 파머의 좌측에 선 그를 볼 수 있다. 비록 남들보다 출발은 늦었지만 꾸준히 자신의 영역을 넓혀 온 그를 두고 현존하는 재즈 레전드라 부르는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베니 골슨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