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장 스탠리 큐브릭 감독이 연출한 장편 영화는 단 13편에 지나지 않는다. 그의 마지막 혼을 불어넣은 영화 <아이즈 와이드 셧>(Eyes Wide Shut, 1999)의 경우 최종 편집을 마치지 못한 채 갑자기 심장마비로 눈을 감아 유작으로 남았고, 지금까지 대중에게 밝혀지지 않은 숱한 의문과 논란에 빠진 영화가 되었다. 감독 본인은 자신의 최고 영화라고 평가했지만, 전문가들의 평가는 그리 후하지 않았고, 워너브라더스 영화사의 자의적 편집으로 인해 뭔가 어정쩡하게 마무리된 ‘미완의 걸작’이었다. 큐브릭 감독의 유작으로 알려지면서 박스오피스 1억 6,000만 달러를 벌어들인 성공한 영화가 되었지만, 영화를 보고 나온 관객들은 무언가 이상하다는 느낌이었다.
20세기초 비엔나 배경의 원작 <꿈의 노벨레>
큐브릭 감독은 영화 <스페이스 오디세이>(1968)를 만든 직후, 아르투어 슈니츨러가 1926년에 출간한 <꿈의 노벨레>(Traunnovelle)를 읽고 색다른 영감을 받았다. 이 소설은 20세기 초 오스트리아 빈에 살던 의사 프리돌린(Fridolin)이 이틀 동안 겪은 성적 판타지 소설인데, 외관상 행복해 보이는 상류사회 부부의 잠재된 성적 욕망을 다루었다. 큐브릭 감독은 다음 영화로 제작하기 위해 판권을 사들였지만, 프로젝트로 착수하는 데는 30여 년의 시간이 더 걸렸다. 1995년 겨울이 되어서야 <풀 메탈 자켓>(1987)의 차기작으로 결정되었고, 일찍이 마음에 점 찍어 둔 톰 크루즈와 니콜 키드먼 부부를 섭외했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미완성 유작
1996년 11월 런던에서 시작된 촬영은 원래 6개월에 끝낼 예정이었지만, 큐브릭 감독의 극심한 완벽주의를 반영하듯 수정과 재촬영을 수도 없이 거치면서 15개월 동안 진행되었고 기네스북에 최장 촬영 영화로 기록되었다. 현재는 명배우 반열에 오른 <굿 와이프>의 알란 커밍(Alan Cumming)이 호텔 프론트 직원으로 등장하는 한 장면 출연을 위해 다섯 차례나 감독과 오디션을 해야 했고, 일정 지연에 견디다 못한 하비 케이틀(Harvey Keitel)은 중도에 그만 두어 감독의 친구 시드니 폴락(Sydney Pollack)이 급히 대타로 나섰다. 하지만, 촬영이 종료되고 큐브릭 감독 홀로 편집 작업을 강행하던 시점에 심장마비로 사망하였다. 이에 따라 영화사가 감독의 최종 편집본과는 다르게 자의적으로 편집하여 개봉했다는 논란이 일었다.
삭제된 21분 분량에 관한 논란
영화를 본 관객들은 뭔가 이야기가 자연스럽지 않고 난해하며 주요한 장면들이 빠졌을 지 모른다는 느낌을 받는다. 영화가 원작에 충실하여 오픈 엔드 형식으로 끝났을 거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큐브릭 감독은 원작의 설정과는 달리 단순한 에로틱 코미디 또는 스릴러로 각색했다는 주장이 있다. 영화사가 등급을 유리하게 하기 위해 감독의 최종 편집본으로부터 21분 분량을 삭제하였다는 것이다. 이 주장에는 난교 파티에서 ‘빌 하포드’(톰 크루즈)에게 경고하고 그 대신 벌을 받은 미스터리 여인이 아내(니콜 키드먼)였고, 빨간 망토의 난교파티 리더가 앞 장면에서 니콜 키드먼과 춤을 추며 유혹했던 헝가리 부호라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만일 그렇다면 마지막 장면의 아내의 꿈 이야기와 다음날 그의 침대에 놓여 있던 남편의 베니스 가면의 설명이 된다.
크루즈와 키드먼 부부의 이혼
당시 할리우드 최고의 스타 부부였던 톰 크루즈와 니콜 키드먼은 영화 <Eyes Wide Shut> 촬영 직후 2001년 이혼했다. 영화 <폭풍의 질주>(Days of Thunder, 1990)에서 만나 결혼한 지 10여 년 만에 헤어진 것인데, 이들의 이혼에는 영화가 한몫 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큐브릭 감독은 이들 부부의 불신을 연기에 불어넣기 위해 두 사람에게 따로 대본을 주었고, 두 사람이 서로 공유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였다. 각자 촬영 때에는 상대가 그곳에 나타나지 않도록 했다. 예를 들어 아내가 처음 만난 해군 장교와의 짧은 베드신이 있었는데, 감독은 배우들에게 50여 가지의 다른 포지션을 수십 차례나 찍도록 하여 이 신을 끝내는 데 6일이나 소요되었다. 더군다나 감독은 니콜 키드먼에게 이 사실을 남편에게 그대로 전하도록 해, 부부 간의 긴장을 의도적으로 고조시켰다고 한다. 당시 최고의 스타였던 두 사람도 감독에게 꼼짝하지 못했다는 사실 역시 화제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