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 황금기를 맞은 재즈 신은 피아노 트리오나 트럼펫 또는 색소폰 스타들이 대세였다. 재즈 스타들은 속도감 있는 연주나 자신만의 연주 스타일을 무기로 재즈 클럽을 찾은 팬들을 열광하게 했다. 스윙 시절의 인기 악기였던 트롬본이나 클라리넷 대신 트럼펫과 색소폰이 무대 전면에 등장했을 때, 비인기 종목이던 트롬본 듀오로 구성된 이색 콤보가 혜성처럼 등장하여 정상의 인기를 구가했다. 1940년대 스윙 악단에서 인기 트롬보니스트로 쌍벽을 이루던 제이제이 존슨(J.J. Johnson)과 카이 윈딩(Kai Winding)이 사보이 레코드(Savoy Records)의 제안에 따라 협연에 나선 것이다.

두 사람의 사보이 첫 앨범 <Jay & Kai>(1954)에 수록한 ‘Lament’

트롬본은 손가락으로 밸브를 여닫는 방식인 트럼펫이나 색소폰과 달리, 슬라이드를 밀고 당기면서 음을 낸다. 따라서 트롬본은 부드럽고 풍부한 소리를 내는 반면, 빠른 연주에는 약점을 지닌 악기였다. 스윙 시대의 빅밴드에는 여러 명의 트롬본 연주자들이 함께 합주하기도 했던 인기 악기였지만, 비밥 시대로 접어들며 속주가 인기를 끌면서 재즈계에서 하락세를 면치 못하던 악기였다. 하지만 소수의 트롬본 연주자들이 비밥이나 모던 재즈를 건너 오늘 날까지 명맥을 이었는데, 대표적인 연주자들이 제이제이 존슨, 카이 윈딩 그리고 슬라이드 햄프턴(Slide Hampton)이었다. 이들은 트롬본이 구식의 스윙 합주나 뉴올리언즈 딕시랜드 스타일에 어울릴 뿐이라는 대중의 생각을 불식시키고 오늘날까지 솔로 악기로서의 위상을 지켰다.

일본 무대에서 제이제이 존슨과 카이 윈딩의 ‘It’s Alright With Me’(1982)

두 사람 모두 1940년대 막바지 인기 빅밴드의 솔로이스트였다. 존슨은 카운트 베이시 악단과 베니 카터 악단의 스타였고, 윈딩은 스탄 켄튼 악단과 베니 굿맨 악단에서 이름을 날렸다. 존슨은 빅밴드를 그만두고 1946년 뉴욕으로 들어와 비밥 연주자들과 어울리며 비밥 콤보에서 연주했다. 당시 그의 재능을 알아본 디지 길레스피는 “나는 언젠가 트롬본이 뭔가 다르게 연주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그가 바로 제이제이 존슨이었다”라 말하기도 했다. 마일스 데이비스의 시대를 앞서간 앨범 <Birth of the Cool>의 12곡 녹음에는 두 사람이 번갈아 참여하여 존슨이 8곡을, 윈딩이 4곡을 맡으며, 대표 트롬보니스트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제이제이 존슨 오리지널 ‘Wee Dot’. 네 명의 트롬보니스트의 협연곡이다

두 사람은 1954년부터 1956년까지 3년 동안 함께 콤보를 이루며 십여 장의 음반을 발표하였고, 그 후에도 수시로 함께 활동했다. 1950년대 후반에 결성했던 제이 앤 카이 8중주단(Jay & Kai Octet)에는 무려 여덟 명의 트롬본 연주자들이 함께 협연하기도 했다.

Jay and Kai Trombone Octet의 <+6>(1956) 앨범 표지

1983년 카이 윈딩이 뇌종양으로 먼저 사망하면서 이들의 콜라보레이션은 멈췄지만, 제이 앤 카이(Jay and Kai)라는 이들의 콤보는 재즈 트롬본 연주자들의 전설로 남았다. 지금도 제임스 퓨(James Pugh)와 데이브 테일러(Dave Taylor), 콘래드 허위그(Conrad Herwig)와 스티브 데이비스(Steve Davis), 마이클 데이비스(Michael Davis)와 빌 라이헨바흐 주니어(Bill Reichenbach, Jr.)와 같은 트롬본 연주자들이 이들의 전설을 따라서 트롬본 듀오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버브레코드 50주년에 열린 카네기홀 콘서트(1994). 그로부터 7년후 J. J. 존슨은 고향 인디애나폴리스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