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기생충>(2019)이 무려 4관왕을 차지했다. 비록 <기생충>에 밀려 수상은 못했지만 작품상 부문의 <1917>(2019)은 미국 골든 글로브와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을 차지하며 가장 유력한 수상 후보로 꼽히던 영화였다. 

<1917>은 제1차 세계대전을 다룬 작품이자 콜린 퍼스와 베네딕트 컴버배치 등의 출연진으로도 관심을 끌지만, 가장 중요한 건 감독 샘 멘데스의 존재감이다. 데뷔작 <아메리칸 뷰티>(1999)로 등장과 동시에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과 감독상을 거머쥐며 화려하게 등장한 샘 멘데스는, 데뷔작이 가져다준 영광에 안주하기보다는 갱스터 무비부터 007시리즈까지 다양한 장르 작품에 도전 중이다. 완벽에 가까운 데뷔작을 만든 뒤에도 도전을 멈추지 않고 있는 샘 멘데스의 작품을 살펴보자.

미국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영화 <1917>(2019)로 작품상과 감독상을 받은 샘 멘데스 감독, 출처 – 'imdb'

 

<아메리칸 뷰티>

'레스터 번햄'(케빈 스페이시)은 아내 '캐롤린'(아네트 베닝), 딸 '제인'(도라 버치)과 함께 살지만 늘 무기력하게 지내고 있다. 집에서나 직장에서나 별 의욕 없이 지내던 레스터 번햄은 우연히 제인의 친구 '안젤라'(미나 수바리)를 보고 욕망을 느낀다. 한편 캐롤린은 같은 업계에서 잘 나가는 '버디'(피터 갤러거)와 가까워지고, 제인은 옆집에 이사 온 '릭키'(웨스 벤틀리)가 자신을 관찰 중이라는 걸 알게 된다.

<아메리칸 뷰티>(1999)는 데뷔작이라고 믿지 않을 만큼 대중과 평단으로부터 환영받은 작품이다.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촬영상, 남우주연상을 받은 영화로, 샘 멘데스는 데뷔작으로 각종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을 받으며 자신의 존재감을 알린다.

<아메리칸 뷰티> 트레일러

영화의 제목인 '아메리칸 뷰티'는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 가능하다. 레스터 번햄이 안젤라를 상상할 때마다 등장하는 장미, 영화에 등장하는 미인, 소박하지만 아름다운 순간들까지 모두 포괄하고 있지만, 어떻게 해석해도 레스터 번햄은 '아메리칸 뷰티'와 가까워지기 힘든 인물이다. 세상의 기준에서 본다면 분명 행복할 만한 조건을 갖췄지만 왜 행복하지 않을까. 마음 안에 숨겨두고 살아야 했던, 진짜 행복의 조건에 대해 생각해본다.

 

<로드 투 퍼디션>

1931년 미국, '마이클 설리반'(톰 행크스)은 마피아 조직 보스 '존 루니'(폴 뉴먼) 밑에서 양아들처럼 자란 뒤 그를 위해 일하고 있다. 마이클 설리반은 아내와 두 아들과 평화롭게 지내지만, 호기심이 많은 큰아들 '마이클 설리반 주니어'(테일러 후츨린)는 아버지의 직업을 궁금해한다. 마이클 설리반 주니어는 몰래 아버지를 쫓아가고, 그곳에서 마이클 설리반이 존 루니의 아들 '코너 루니'(다니엘 크레이그)와 함께 임무를 수행하는 걸 지켜본다. 현장에서 코너 루니는 보스의 명령을 어기고 살인을 저지르고, 마이클 설리반은 이 현장을 지켜본 아들에게 비밀을 지킬 것을 신신당부한다.

<아메리칸 뷰티>(1999)로 화려하게 데뷔한 샘 멘데스 감독의 차기작은 맥스 앨런 콜린스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갱스터 무비 <로드 투 퍼디션>(2002)이다. 영화는 콘라드 L.홀에게 바친다는 말과 함께 끝나는데, <로드 투 퍼디션>은 촬영감독 콘라드 L.홀의 마지막 작품이다. 콘라드 L.홀은 샘 멘데스 감독의 <아메리칸 뷰티>에 이어 <로드 투 퍼디션>에서도 촬영을 맡았고, 두 작품 모두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촬영상을 받았다.

<로드 투 퍼디션> 트레일러 

<로드 투 퍼디션>은 아버지와 아들의 로드무비이기도 하다. 제목의 ‘퍼디션(Perdition)’은 사전적으로 ‘파멸’을 뜻하는, 마이클 설리반과 주니어의 목적지 이름이다. 둘은 평화롭게 지내던 시기에는 서로에 대해 잘 몰랐지만 위기에 처하자 서로 의지하며 가까워진다. 좀 더 일찍 서로의 애정을 확인하고 표현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마이클 설리반 주니어가 아버지의 나이쯤 되었을 때, 자신의 아버지를 어떤 존재로 기억하고 있을지 궁금해진다.

 

<레볼루셔너리 로드>

'에이프릴'(케이트 윈슬렛)과 '프랭크 윌러'(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단숨에 서로에게 끌림을 느끼고 결혼해서 가정을 이룬다. 둘은 레볼루셔너리 로드의 아름다운 집에서 두 아이를 낳고 지낸다. 겉으로 보기에 평화로워 보이는 에이프릴과 프랭크는 일상이 권태롭고 답답하게 느껴진다. 어느 날 에이프릴은 고민하다가 프랭크에게 함께 파리에 이민을 가자고 제안한다.

<레볼루셔너리 로드>(2008)는 리처드 예이츠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로, 샘 맨데스 감독은 <아메리칸 뷰티>(1999)에 이어서 평화로워 보이는 가정의 균열을 보여준다. <타이타닉>(1997)의 주연배우 케이트 윈슬렛과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다시 호흡을 맞춰서 화제가 되었던 작품으로, 케이트 윈슬렛은 <레볼루셔너리 로드>로 미국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을 받는다.

<레볼루셔너리 로드> 트레일러

에이프릴과 프랭크는 남들이 보기에 번듯한 가정을 이루고 있지만 그들의 삶은 곪아가고 있다. 에이프릴과 프랭크는 서로를 위해 희생하고 있다고 말하지만, 그들이 희생이라고 믿었던 일들은 정작 자기 자신과 상대방 모두에게 불행으로 이어진다. 어디까지 솔직하고 어디까지 무모해져야 삶은 행복해질까. 그 타협점을 찾는 게 어려워서 우리는 오늘도 연기하며 일상을 견디기로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007 스카이폴>

'제임스 본드'(다니엘 크레이그)는 'M'(주디 덴치)의 지시를 받고 '이브'(나오미 해리스)와 함께 임무를 수행하다가 추락하여 실종한다. 제임스 본드가 사라진 사이에 MI6는 위험에 처하게 되고, 실종되었던 제임스 본드는 이를 막기 위해 복귀한다. 제임스 본드는 자신의 몸 상태가 예전과 같지 않다고 느끼지만 적을 추격하기 시작한다.

<로드 투 퍼디션>(2002)에서 샘 멘데스와 호흡을 맞춘 다니엘 크레이그는 <007 카지노 로얄>(2006)을 시작으로 007시리즈의 새로운 제임스 본드가 된다. 샘 멘데스가 007시리즈에 합류하면서 둘은 오랜만에 다시 호흡을 맞추는데, 특히 <007 스카이폴>(2012)은 역대 007시리즈 중에서도 작품의 완성도와 흥행을 모두 잡은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007 스카이폴> 트레일러 

샘 멘데스는 늘 인간의 마음속 본능에 집중했고, 007시리즈에서도 그러한 기조를 이어나간다. <007 스카이폴>은 최신 기술로 만들어진 장비 대신 제임스 본드의 육체와 태도에 집중한다. 제임스 본드와 MI6의 수장 M, 두 사람 모두 육체적으로 예전보다 쇠약할지 몰라도 그들이 가진 사명감은 지칠 줄 모른다. 제임스 본드는 복귀를 앞두고 이뤄진 테스트에서 대부분 불합격 점수를 받지만, 00에게 필요한 역량은 정량적인 수치가 아니라 마음에서 나오는 태도일 거다.

 

Writer

에세이 <나만 이러고 사는 건 아니겠지>, <달리다 보면> 저자. 좋아하는 건 영화, 여행, 음악, 문학, 음식. 특기는 편식. 꾸준한 편식의 결과물을 취향이라고 부르는 중. 취향을 바탕으로 창작활동을 하고 있다.
김승 인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