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감독의 <기생충>(2019)이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이후 칸 영화제에 대한 국내 관객의 관심이 더욱 커졌다. 칸 영화제는 <기생충>이 경쟁을 벌였던 경쟁 부문 이외에도 ‘주목할만한 시선’ 부문을 통해 혁신적인 작품들을 소개해왔다. 제63회 칸 영화제에서는 홍상수 감독의 <하하하>(2009)가 이 부문에서 대상을 받기도 했다. 2019년 10월 국내에 개봉한 <경계선>(2018)도 마찬가지로 대상을 받은 작품으로, 때로는 경쟁 부문보다 주목할만한 시선 부문의 작품들이 관객들에게 더 좋은 평가를 받기도 한다. 관객이 주목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칸 영화제 주목할만한 시선 부문 수상작들을 살펴보자. 

 

<도쿄 소나타>

'사사키 류헤이'(카가와 테루유키)는 하루아침에 회사로부터 해고를 통보받는다. 그러나 가장으로서 자신이 해고당했다는 걸 집에 알릴 수 없어서, 매일 정장 차림에 서류 가방을 들고 출근하는 척 무료급식소와 인력사무소를 찾는다. 사사키 류헤이의 아내 '메구미'(고이즈미 쿄코)는 늘 집에서 가족을 챙겨줄 뿐, 집에서 외롭게 보내는 시간이 많다. 두 아들 중 첫째 '다카시'(코야나기 유)는 아르바이트와 학교 수업으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적고, 둘째 '켄지'(이노와키 카이)는 집 근처 피아노 학원의 피아노 소리를 들으며 피아노를 배우고 싶다고 느낀다. 사사키 가족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 채 공존 중이다.

<도쿄 소나타>(2008)는 제61회 칸 영화제 주목할만한 시선 부문에서 심사위원상을 받은 작품으로, 연출을 맡은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은 몇 년 뒤에 <해안가로의 여행>(2015)으로 같은 부문에서 감독상을 받는다. 구로사와 기요시는 2000년대 중반까지 <큐어>(1997), <회로>(2001), <절규>(2006) 등 스릴러, 호러 영화로 이름을 알렸는데, <도쿄 소나타>를 기점으로 다양한 장르를 소화하기 시작한다. 이전까지 일본 사회에 잠재된 공포를 스릴러, 호러 장르로 영화화했다면, <도쿄 소나타>는 피부에 닿는 직접적인 현실을 다룬 드라마다.

사회를 파악하기 위해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는 그 사회에 속한 가족을 관찰하는 거다. <도쿄 소나타> 속 사사키의 가족은 일본 사회의 다양한 문제를 고스란히 몸으로 느끼는 이들이다. 회사에서의 직급이 가장의 권위라고 믿었으나, 그게 사라지자 어찌할 바를 모르는 사사키의 모습은 안전망 없는 사회의 단면이다. 행복을 회사의 이름이나 직급 같은 외부의 조건에서 찾아야 하는 사회에서는 대부분의 사람이 불행할 수밖에 없다. <도쿄 소나타>가 개봉한 지 10년도 더 지난 지금, 세상은 얼마나 더 나아졌는가.

<도쿄 소나타> 트레일러

 

<캡틴 판타스틱>

'벤'(비고 모텐슨)은 6명의 자녀와 함께 숲에서 생활 중이다. 벤의 방식에 따라 아이들은 학교에 가지 않고, 숲에서 신체 훈련을 하고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낸다. 그러나 아이들에게 숲에서의 생활이 완벽하게 좋은 것만은 아니다. 벤은 도시에 있는 아내의 소식을 듣고, 이를 아이들에게 전한 뒤 고민하다가 다 함께 도시에 가보기로 한다.

<캡틴 판타스틱>(2016)은 제69회 칸 영화제 주목할만한 시선 부문에서 감독상을 받은 작품이다. 각본과 연출을 맡은 맷 로스는 HBO의 드라마 <실리콘벨리>, <빅 러브> 시리즈와 영화 <아메리칸 싸이코>(2000), <에비에이터>(2004)에 출연한 배우이기도 하다. <캡틴 판타스틱>은 배우들의 앙상블을 보는 것만으로도 가치 있는 작품인데, 이는 배우 출신 감독 맷 로스의 경험 덕분이 아닐까.

벤의 홈스쿨링 결과를 보면, 아이들은 또래와 비교도 안 될 만큼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고 운동신경도 뛰어나다. 그러나 정작 또래들이 당연하게 아는 문화에는 무지하다. <캡틴 판타스틱>은 교육과 관련해서 많이 고민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남들과 다른 삶을 사는 건 옳지 않은 걸까, 사회화를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교육은 무엇인가. 진짜 행복을 위해 필요한 교육에 대해서는 우리 모두 이야기해볼 필요가 있다.

<캡틴 판타스틱> 트레일러

 

<윈드 리버>

미국 와이오밍 주에 위치한 인디언 보호구역 윈드 리버. 야생동물 사냥꾼 '코리'(제레미 레너)는 설원 위에서 한 소녀의 시체를 발견한다. 수사를 위해 FBI 요원 '제인'(엘리자베스 올슨)이 나타나고, 제인은 윈드 리버에 대해 잘 아는 코리에게 협조를 요청한다 .

<윈드 리버>는 제70회 칸 영화제 주목할만한 시선 부문에서 감독상을 받은 작품이다. 각본과 연출을 맡은 테일러 쉐리던은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2015), <로스트 인 더스트>(2016)의 각본가로서 주목받다가 <윈드 리버>에서는 연출까지 직접 맡았다. 테일러 쉐리던가 쓴 세 편의 각본은 멕시코의 국경 도시 후아레스, 미국 텍사스, 인디언 보호구역 윈드 리버까지 배경이 되는 지역이 중요하다. 이방인의 등장을 시작으로 지역사회의 특성을 토대로 부조리한 세상에 대해 말한다.

<윈드 리버>는 소녀의 죽음을 쫓는 과정에서 미국 사회의 단면을 목격한다. 인디언 보호구역이지만 인디언은 보호받지 못하고, 타지에서 온 백인들은 인디언에게 폭력적으로 구는 게 당연하다는 듯 말한다. 인디언이 삶의 터전을 잃고 점점 변방으로, 누구도 머물고 싶지 않은 땅으로 몰리는 건 과거부터 현재까지 진행 중인 일이다. 가족을 잃은 이들이 슬픔에 잠긴 동안에도, 통계로 잡히지도 않는 실종자들이 계속 생기고 있다는 게 윈드 리버의 가장 큰 비극이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외면한 땅 위에서 비극 말고 무엇이 생길 수 있는가. 우리의 시선은 이곳으로 갈 필요가 있다.

<윈드 리버> 트레일러

 

<경계선>

'티나'(에바 멜란데르)는 후각으로 감정을 읽는 출입국 세관 직원이다. 티나는 남들과 다른 외모와 특수한 능력으로 인해 타인과 친밀한 관계를 맺지 못하며 지낸다. 평소처럼 일을 하던 티나는 자신과 닮은 '보레'(에로 밀로노프)를 만난다. 보레는 티나가 그동안 숨겨왔던 본능을 자극할 만한 발언을 하고, 티나도 점점 변하기 시작한다.

<경계선>(2019)은 이란에서 태어나 유럽에서 활동 중인 알라 아바시 감독의 작품으로, 제71회 칸 영화제 주목할만한 시선 부문에서 대상을 받았다. <렛 미 인>(2008)의 원작 소설과 각본을 쓴 작가 욘 아이비데 린드크비스트의 단편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으로, <렛 미 인>만큼이나 과감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영화다.

<경계선>은 상상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표현방식을 가진 영화로, 주인공 티나는 경계선에서 고민하는 인물이다. 세상은 늘 이상적인 값을 제시하고, 그와 조금만 다른 모습을 보여줘도 틀렸다고 규정 지을 때가 많다. 살아가면서 너무나 많은 기준이 우리 곁에 존재하므로, 모든 이는 각자의 경계선에서 고민에 빠질 수 밖에 없다. 경계선에서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경계선 앞에서 자신에게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고뇌해본다.

<경계선> 트레일러

 

Writer

에세이 <나만 이러고 사는 건 아니겠지>, <달리다 보면> 저자. 좋아하는 건 영화, 여행, 음악, 문학, 음식. 특기는 편식. 꾸준한 편식의 결과물을 취향이라고 부르는 중. 취향을 바탕으로 창작활동을 하고 있다.
김승 인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