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보려면 무조건 극장으로 가야 했던 때가 있다. 기술은 점점 발전해서, 스마트폰으로 영화를 보는 게 더 익숙한 시대가 됐다. 집에 누워서 스마트폰으로 짧은 영상들을 보다 보면, 두 시간짜리 영화도 벅차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런데도 여전히 긴 러닝타임의 영화를 만드는 감독과 이를 즐기는 관객이 존재한다. 다른 영화보다 몇 배는 더 긴 영화를 어떻게 보냐고 묻는다면, 상영 시간만큼 여운도 길기 때문이라고 답할 거다. 걸작이라고 불리는 아시아 영화 중에 러닝타임이 긴 작품들이 있다. 200분이 넘는 러닝타임 때문에 시작도 전에 겁을 먹지만, 서서히 관객을 몰입시키면서 영화감상을 경이로운 체험으로 바꾼다.

내 삶이 영상이 된다면, 이왕이면 짧은 영상보다는 긴 영화였으면 좋겠다. 보는 내내 삶을 상영해주는 듯 보였던 긴 영화들처럼 말이다. 200분은 영화치고는 길지만, 삶을 본다고 생각하면 짧은 시간이다. 관객에게 삶에 대한 묵직한 질문을 남기는, 러닝타임 200분이 넘는 아시아 영화를 살펴보자.

 

237분의 삶, 에드워드 양의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

14살 소년 '샤오쓰'(장첸)은 성적 때문에 주간부에서 야간부로 반을 옮기고, '소공원' 파와 어울려 다니며 '217' 파와 대립한다. 샤오쓰는 양호실에서 우연히 '밍'(양정이)을 만나고 점점 가까워진다. 샤오쓰는 소공원 파와 217 파의 대립, 가족 문제, 밍에 대한 마음 등으로 고민한다.

에드워드 양 감독은 2007년에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작품은 여전히 많은 관객의 삶에 유효기간 없이 남아있다. 그의 대표작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1991)은 1961년 대만에서 14살 소년이 또래 학생을 칼로 찔러 죽인, 대만 최초의 미성년자 살인사건을 토대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소년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당시에 혼란스러웠던 대만 사회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샤오쓰는 영화촬영장에서 밍을 배우로 캐스팅하려고 했던 영화감독과 마주치자 "진짜와 가짜도 구분 못 하면서 영화를 찍는다고? 당신이 뭘 찍고 있는지 알기나 해"라고 말한다. 진정성을 가지고 '진짜' 삶을 담아내는 게 좋은 영화일 거다. 그런데 삶에서 어떤 걸 ‘진짜’라고 불러야 할까. 진짜도 가짜가 되는 혼란한 세상에서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어디까지 일까.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 예고편 

밍은 샤오쓰에게 "네가 날 바꾸겠다고? 난 세상과 똑같아, 세상은 변하지 않아"라고 말한다.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은 샤오쓰가 손전등을 훔치면서 시작한다. 샤오쓰는 어둠 속에서 손전등이 만든 빛을 희망처럼 따라가지만, 그 빛은 어둠 전체를 밝히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어둠으로 벗어나기 위해 필요한 건 손전등이 아니라, 어둠을 없애고 불을 켜줄 세상이다.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은 그 어떤 긍정 혹은 부정도 하지 않고, 세상과 부딪힌 개인이 할 수 있는 여러 경우의 수 중 가장 어두운 수를 보여주는 이야기다.

 

217분의 삶, 아오야마 신지의 <유레카>

평화롭던 마을에서 어느 날 버스에 탄 남자가 총기로 승객들 대부분을 죽인다. 경찰의 진압 끝에 버스 기사 '사와이 마코토'(야쿠쇼 코지), 중학생 '나오키'(미야자키 마사루)와 초등학생 '코즈에'(미야자키 아오이) 남매만 극적으로 목숨을 건진다. 생존한 이들은 언론과 주변 사람들로부터 상처받고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마코토는 몇 년간 잠적했다가 마을에 다시 나타나고, 돌아온 뒤에 나오키, 코즈에 남매가 집에 고립된 채 살고 있음을 알게 된다. 마코토가 돌아온 뒤로 마을에 연쇄살인이 일어나자 사람들은 마코토를 의심하고, 마코토는 집을 나와서 나오키, 코즈에 남매의 집에서 함께 지낸다.

아오야마 신지 감독이 연출과 각본부터 편집과 음악까지 직접 담당한 <유레카>(2000)는 갈색톤의 화면으로 진행된다. 95년 3월, 옴진리교가 도쿄 지하철에 사린 가스를 살포하여 십여 명이 죽고 몇천 명이 다치며, 이 사건은 일본인들에게 트라우마로 남는다. <유레카>는 지하철 사건을 버스 사건으로 바꾸었을 뿐, 당시 사건을 기억하는 모든 이들에게 삶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마코토는 '내가 살아남은 것이 잘못인가'라고 자신에게 묻는다. 생존자들은 피해자임에도 세상으로부터 점점 배제된다. 돌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아예 새로운 방식의 삶을 살아야 하는 상황이 된 거다. 생존자들은 함께 여행을 간다. 돌아갈 곳도, 목적지도 없는 여행. 그런데도 이들은 함께 삶의 가능성을 늘려간다. 마코토는 나오키에게 "잘 살자" 대신 "죽지 마"라고 말한다. 죽음보다 못한 삶 같지만, 죽지 않고 버텨내면 새로운 삶의 가능성이 생기지 않을까. 고립된 이들이 함께하면서 서로에게 돌아갈 곳이 되어 준 것처럼 말이다.

<유레카> 예고편

행복과 불행은 마치 주사위 게임을 하듯 예측 불가한 순서로 찾아오고, 그에 따른 결과도 함부로 예상할 수 없다. 사고를 당하고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삶이 자신에게 찾아올 거라고 예상 못 했을 마코토와 나오키, 코즈에처럼 말이다. 그러므로 삶은 그 어떤 조건을 떠나서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상처는 여전하고, 세상은 차갑겠지만 그런데도 죽지 않고 버텨냈다면 그걸로 된 거다. 그리 따뜻하지 않은 세상의 이치를 인정하고 외쳐본다, '유레카'라고.

 

317분의 삶, 하마구치 류스케의 <해피 아워>

'사쿠라코'(키쿠치 하즈키), '아카리'(타나카 사치에), '후미'(미하라 마이코), '준'(카와무라 리라), 30대 후반의 네 사람은 꾸준히 함께 시간을 보내온 친구다. 예술 관련 전시를 기획하는 후미는 자신이 기획한 워크숍에 친구들을 초대하고, 워크숍 뒤풀이 자리에서 준은 그동안 이야기하지 않았던 사실을 고백한다. 이로 인해 갈등이 생기고, 어느 날 준이 사라지면서 이들은 관계에 대해 다시 돌아보기 시작한다.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은 2013년, 일본 고베에서 연기 경험이 없는 이들을 대상으로 연기 워크숍을 연다. 68회 로카르노 국제영화제에서 공동으로 여우주연상을 받은 <해피 아워>(2015)의 네 배우는 워크숍에 참여했던 이들이다. 비전문 배우의 연기, 이들의 이야기에서 영감을 받아 바뀐 시나리오, 크라우드 펀딩으로 마련한 제작비 등 <해피 아워>(2015)의 제작 과정은 영화보다 더 영화 같다.

워크숍 뒤풀이 자리에서 준의 갑작스러운 고백에 다들 놀란다. 특히 친구들은 중요한 일임에도 미리 이야기하지 않은 것에 섭섭함을 느끼고 화를 낸다. 준은 차분하게 말한다. 아무도 묻지 않아서 말하지 않았고, 말하고 싶어졌을 뿐이라고. 이들은 솔직하면 상처를 줄까 봐, 감추면 섭섭해할까 봐 신경 쓰는 사려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오래 이어 온 인연도, 서로가 원하는 솔직함의 정도를 조율하는 건 쉽지 않다.

영화 <해피 아워> 예고편

<해피 아워>는 워크숍과 낭독회, 두 가지 활동을 길게 보여준다. 워크숍에서는 이마를 맞대고 서로의 생각을 맞추거나, 상대의 단전에 귀를 기울이고 몸 깊은 곳의 소리를 들어본다. 낭독회에서는 소설가가 낭독할 동안 참석한 이들은 소설 속 주인공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끼고, 소설 속 상황과 비슷한 삶의 어떤 지점으로 이동한다. 두 가지 모두 소통을 위한 활동이다. 상대를 이해하고, 내가 아닌 누군가가 된 듯한 기분을 느끼는 것. 화부터 내는 친구는 나 대신 화를 내주는 친구이기도 하고, 혼자 모든 걸 짊어지려는 친구는 때로는 기대고 싶은 친구이기도 하다. 완벽한 관계는 없기에 모든 관계 안에는 상처와 즐거움이 공존한다. <해피 아워>는 돌아보면 행복한, ‘해피 아워’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시간을 보낸 이들과의 우정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234분의 삶, 후 보의 <코끼리는 그 곳에 있다>

집에서 아버지에게 무시당하는 '웨이부'(팽욱창)는 괴롭힘당하는 친구를 돕다가, 폭력배의 동생으로 유명한 동급생을 밀어버리고 도망간다. 다친 학생의 친형인 '위청'(장유)은 사랑하는 이에게 마음을 거절당한 뒤에 홧김에 친구의 아내와 자고, 그걸 목격한 친구는 그 자리에서 자살한다. 가족으로부터 멸시받는 위청은 동생의 소식을 듣고 패거리를 이끌고 웨이부를 쫓는다. 웨이부는 도망치다가 같은 건물에 사는 노인을 발견하고 그에게 돈을 빌린다. 노인은 딸과 사위가 아이의 교육을 핑계 삼아 이사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기에, 곧 양로원에 보내지게 생겼다. 이혼한 뒤로 힘들게 일하며 사는 엄마와 갈등하는 '황링'(왕옥문)은 유부남인 부주임 선생님과 선생과 제자 이상의 관계다. 황링은 함께 도망가자는 웨이부의 말에 고민한다. 이들은 만저우리에 앉아 있는 코끼리가 산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곳에 가길 원한다.

<코끼리는 그 곳에 있다>(2018)는 영화가 끝난 뒤 후 보 감독의 사진과 함께 그에 대한 애도를 보낸다. 88년생으로 젊은 나이에 자신의 소설을 원작 삼아 영화를 만든 후 보 감독은, 17년도에 스스로 목숨을 끊으며 <코끼리는 그 곳에 있다>가 데뷔작이자 유작이 됐다. 자신이 상상하는 코끼리를 찾아가는 이들의 이야기가 끝난 뒤 마주하는 후 보 감독의 죽음은 영화 이상의 슬픔을 안긴다.

웨이부는 곧 폐교될 거라는 소식을 듣고 선생님에게 이에 관해 묻자, 어차피 너희들 중 절반은 시장에서 꼬치나 팔 거라고 무책임하게 말한다. 노인을 양로원에 보내고 싶은 딸과 사위는 아이를 이런 곳에서 키우면 미래가 없어서, 자기들은 이 도시를 떠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분명 많은 이들이 살아 숨 쉬고 있는 도시이지만, 다들 이 도시를 증오하고 떠나고 싶어 한다. 불행이 고삐 풀린 짐승처럼 돌아다니는 듯, 모든 인물이 병처럼 서로에게 불행을 옮기고 다닌다.

<코끼리는 그 곳에 있다> 예고편

미래가 없다고 말하는 도시에서 그 어떤 행동도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앉아 있는 코끼리를 보러 가는 게 희망 없는 도시에 멈춰있는 것보단 나아 보인다. 고통에서 도망치는 것도 용기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버티는 것과 피하는 것 중 무엇이 맞는지 누가 감히 답을 내릴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전진한다, 앉아 있는 코끼리를 만나면 할 이야기를 상상하며.

 

Writer

에세이 <나만 이러고 사는 건 아니겠지>, <달리다 보면> 저자. 좋아하는 건 영화, 여행, 음악, 문학, 음식. 특기는 편식. 꾸준한 편식의 결과물을 취향이라고 부르는 중. 취향을 바탕으로 창작활동을 하고 있다.
김승 인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