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0년대 후반에 당시 대세였던 비밥(Bebop)과는 다른 새로운 재즈가 싹트기 시작했다. 빠르고 뜨겁고 예측 불가한 비밥과는 달리, 차갑고 여유롭고 클래식 음악처럼 리허설을 거친 음악이라고 하여 ‘쿨(Cool)’이라 불렀다. 쿨 재즈의 기원을 빅스 바이더백이나 레스터 영까지 거슬러 올라가기도 하지만, 많은 평론가는 이를 1949년에 잠시 존재했던 마일스 데이비스 9인조 콤보(Miles Davis Nonet)에서 찾는다.

<Birth of the Cool>(1956) 음반 표지

이 콤보의 산파나 다름없는 재즈 어레인저 길 에반스(Gil Evans), 후일 모던 재즈 쿼텟의 중심이 된 피아니스트 존 루이스(John Lewis), 바리톤 색소폰 명인 제리 멀리건(Gerry Mulligan), 알토 색소폰의 리 코니츠(Lee Konitz)는 9인조의 주요 인물들로, 훗날에도 쿨 재즈의 중심에 선 인물들이다. 이들이 1949년에서 1950년 사이 세 번의 스튜디오 세션에서 녹음한 12곡은 후일 <Birth of the Cool>(1957)이라는 컴필레이션 음반으로 출반되어, 쿨의 효시로 불린 랜드마크 음반이 되었다. 그래서 이 음반이 녹음된 1949년을 쿨 재즈의 탄생한 해로 기념하여, 올해를 70주년으로 부르는 배경이 여기에 있다.

 

비밥과 다른 새로운 재즈의 시도

마일스 데이비스는 디지 길레스피의 대체 트럼페터로 찰리 파커와 함께 일하며 대중적인 스타로 올라섰다. 하지만 찰리 파커의 속주와 즉흥성을 따라잡기 어려워 항상 긴장과 스트레스로 힘들어했다. 비밥 뮤지션들과 달리 클래식을 전공한 마일스는, 클래식 음악의 요소를 도입하여 체계적이고 준비된 방식으로 즉흥연주의 긴장감보다 여유롭고 표현적 면모를 살린 음악을 하고 싶었다. 찰리 파커와 결별한1948년, 클로드 손힐의 재즈 오케스트라(Claude Thornhill Orchestra)에서 어레인저로 일하던 길 에반스를 만나 새로운 재즈 음악을 구상했다. 뉴욕 55번가 중국 세탁소 뒤에 있던 에반스의 반지하 아파트는 같은 생각을 가진 재즈 뮤지션들의 미팅 장소가 되었다.

쿨 재즈 연주방식에 관한 빌리 테일러의 교육 세션

 

마일스 데이비스 노넷

마일스 데이비스 노넷의 스튜디오 레코딩 사진. 오른쪽에 서 있는 뮤지션이 마일스다

이들은 비밥 콤보보다 많고, 빅밴드보다 적은 9인조 콤보를 구성했다. 당시 재즈 콤보의 필수 악기였던 테너 색소폰을 빼고, 대신 하이 섹션에 트럼펫과 알토 색소폰을, 미들 섹션에 트롬본과 프렌치 혼을, 로우 섹션에 바리톤 색소폰과 튜바(Tuba)로 모두 6명의 브래스를 넓게 편성했다. 그리고 클로드 손힐의 오케스트라 멤버였던 존 루이스(피아노), 제리 멀리건(바리톤 색소폰), 그리고 당시 찰리 파커에 필적한 알토 색소포니스트 리 코니츠를 불러 모았다. 말하자면 실험적인 프로젝트 콤보였는데, 후일 마일스 데이비스 노넷(Miles Davis Nonet)이라 불렀다.

다큐멘터리 <Miles Davis Story> 증 마일스 데이비스 노넷

 

쿨 재즈의 시초

마일스 데이비스 노넷은 1948년 뉴욕의 재즈 클럽 로열 루스트(Royal Roost)에서 카운트 베이시 오케스트라의 오프닝 무대에 ‘실험적인 세션’이라는 광고와 함께 2주간 출연했다. 그들의 음악을 들은 카운트 베이시는 “그 느린 곡들은 생소했지만 좋았다”는 어색한 평가를 내렸다. 이들은 당시 객석에 있던 캐피털 레코드 간부의 주선으로 1949년부터 1950년에 걸쳐 세 번의 스튜디오 세션을 갖고 12곡을 녹음했다. 다들 스케줄이 여의치 않아 세 번 모두 녹음에 참여한 사람은 마일스 데이비스, 제리 멀리건, 리 코니츠와 빌 바버(튜바) 단 네 사람뿐이었다. 각 세션의 싱글 LP는 판매가 저조했지만, 캐피털 레코드는 1957년 12곡을 함께 모아 <Birth of the Cool>이라는 쿨 재즈의 랜드마크 음반을 출반했다.

<Birth of the Cool>의 대표곡 ‘Boplicity’

 

유일한 현존 레전드 리 코니츠

노넷에 참여했던 레전드 대다수는 사망했지만, 리 코니츠는 유일하게 지금까지 생존한 멤버인 데다 92세의 나이에 여전히 음반을 발표하고 공연에 나선다. 1940년대 인종 차이에 기인한 가십성 기사로 언론들이 찰리 파커의 라이벌로 자주 인용했지만, 본인은 찰리 파커와 매우 친한 사이였다고 밝혔다. 노넷 시절에도 마일스 데이비스의 백인 뮤지션 기용에 대해 흑인 재즈 팬들의 비난이 집중되었던 뮤지션이 바로 그였다. 1949년부터 2018년까지 70여년 동안 자신의 이름으로 150여장의 음반을 출시한, 쿨 재즈 70년을 대표하는 현존 뮤지션으로 남아있다.

2017년 NEA Jazz Masters에서 연주하는 90세의 리 코니츠

블루노트는 음반 녹음 70주년을 기념하여 <The Complete Birth of the Cool>을 리마스터하여 바이닐 2장의 세트로 출반할 예정이다. 여기에는 12곡의 스튜디오 레코딩에다 로열 루스트에서 녹음된 실황 1곡도 포함될 것이다. 마일스 데이비스는 후일 인터뷰에서 이 음반에 대한 생각을 밝혔다. “비밥에서 벗어날 생각은 별로 하지 않았다. 단지 좀 더 부드러운 음악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차 있었다.” 이 음반은 모던 재즈의 신호탄이 된 랜드마크 음반으로 중요한 가치를 지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