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루이스 캐럴의 터무니없는 말장난을 좋아한다면, ‘난센스의 아버지’로 불리는 에드워드 리어의 작품에도 분명 흥미를 느끼게 될 것이다. 동시대 영국에서 활동한 두 작가가 탄생시킨 난센스 문학은 관습과 논리를 전복시키는 유희적인 언어의 사용으로 기발한 상상의 세계를 창조하는 장르이다. 루이스 캐럴의 수학적 상상력에는 존 테니얼의 세밀한 삽화가 더해져 수수께끼 같은 흥미를 유발한다면, 에드워드 리어의 익살맞은 글에는 직접 그린 거침없는 그림이 곁들여지며 해학적인 묘미를 자아낸다.

‘Edward Lear Aged 73½ and His Cat Foss, Aged 16’, 희화적인 자화상. 아끼던 반려묘 포스는 여러 작품에 모델이 되어주었다, 이미지 출처 – 링크

사실 리어는 진지하고 학구적인 작업을 하던 자연사 화가였다. 새와 포유류의 세밀한 과학적 삽화로 잘 알려져있었으며, 빅토리아 여왕의 개인 그림 강사로 임명될 정도로 그 실력을 인정받았다. 이런 그가 엉뚱한 난센스 작품을 창작하게 된 계기는 개인 동물원 삽화를 의뢰했던 한 백작의 손주들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준 경험이었다. 리어는 이 이야기를 모아 <A Book of Nonsense>라는 제목의 책으로 출간하면서도 자연사 화가로서의 명성이 떨어질까 염려되어 가명을 사용했는데, 작품이 큰 인기를 얻자 기꺼이 자신이 저자임을 인정하였다.

 

엉뚱한 글과 장난스러운 그림의 조합

리어는 라임을 맞춰 익살스러운 시를 짓는 형식인 리머릭을 유행시켰다. 그의 대표작 <A Book of Nonsense>에는 직접 삽화를 그린 수십 개의 리머릭이 수록되어 있다. 엉뚱한 단어의 조합이 탄생시킨 어이없는 상황들은 희극적인 삽화로 인해 더욱 우스워 보인다.

<A Book of Nonsense>의 세 번째 판부터 리어의 이름으로 출간되었다. 아이들을 기쁘게 하기 위해 책을 만든 남자의 이름인 ‘Derry down Derry’는 리어가 썼던 가명이다, 이미지 출처 – 링크
수염에 새들이 둥지를 튼 남자, 이미지 출처 – 링크
까마귀와 춤을 추는 남자, 이미지 출처 – 링크

리어가 남긴 여러 난센스 작품 중에서도 특히 동물과 식물을 주제로 한 작업들은 그만의 독특한 유머를 잘 보여준다. <Twenty-Six Nonsense Rhymes and Pictures>에는 단순한 의인화를 넘어 어딘가 괴짜 같은 모습의 동물들이 등장한다. 죽마로 걷는 물고기, 가발을 쓴 까마귀, 우산을 든 딱정벌레처럼 희한한 발상 역시 라임이 맞는 의외의 소재가 조합된 덕분이다.

“The Fizzgiggious Fish, who always walked about upon Stilts, because he had no legs.”, 이미지 출처 – 링크
“The Rural Runcible Raven, who wore a White Wig and flew away with the Carpet Broom.”, 이미지 출처 – 링크
“The Bountiful Beetle, who always carried a Green Umbrella when it didn't rain, and left it at home when it did.”, 이미지 출처 – 링크

<Nonsense Botany>에 실린 식물들은 주전자, 의자, 호랑이, 물고기처럼 사물과 동물로 이루어져 있다. 그림만으로도 흥미롭지만 라틴어를 흉내 낸 학명도 함께 눈여겨보기를 권한다. 글과 그림이 조화되면 더 많은 것이 보이는, 에드워드 리어만의 개성이 잘 드러난 작업이다.

꽃대에 찻주전자가 송이송이 매달린 식물, 이미지 출처 – 링크
타이거 릴리라는 이름을 지닌 꽃을 말그대로 호랑이로 표현한 식물, 이미지 출처 – 링크
꽃잎 속에 안락한 암체어를 품은 식물, 이미지 출처 – 링크

 

리어의 글을 새롭게 변주한 일러스트레이션의 대가들

마더 구스에 필적할 만큼 널리 보급된 리어의 작품은 후대의 창작자들에게 많은 영감이 되었다. 리어의 글이 다른 작가의 그림으로 표현된 모습을 살펴보는 것도 흥미롭다. 그중 20세기 활발한 작업을 펼친 일러스트레이션의 두 대가, 에드워드 고리와 클라우스 엔지카트의 그림책을 꼽아보았다. 이들의 섬세하고 고전적인 묘사는 리어의 즉흥적이고 가벼운 터치와는 상반된 매력으로 텍스트에 담긴 상상력을 풀어낸다.

기묘한 상황을 다루는데 일가견이 있는 화가 에드워드 고리가 리어의 시를 바탕으로 작업한 것은 필연적으로 보인다. 구멍 뚫린 체를 타고 바다로 나가는 사람들, 램프를 넣은 커다란 코를 쓰고 다니는 소년처럼 해괴한 내용들이 고리의 기이한 필치를 통해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사연으로 펼쳐진다.

‘점블리 사람들’은 구멍 뚫린 체를 타고 바다로 나가는 사람들에 대한 시이다, 이미지 출처- 링크
‘반짝이는 코를 가진 소년 동’의 주인공 소년은 램프를 넣은 커다란 코를 장착하고 사랑하는 소녀를 찾아 온종일 헤맨다, 이미지 출처 – 링크

클라우스 엔지카트가 그림을 그린 <네 아이들의 세계 일주>는 <쾅글왕글의 모자>와 함께 국내에 출간된 리어의 두 작품 중 하나이다. 아이들이 배를 타고 모험에 나서는 이 이야기에는 역시나 희한한 존재들이 등장한다. 좁은 땅으로 둘러싸인 물로 된 섬, 집게발에 장갑을 끼는 게들, 우아하게 걸어 다니는 꽃양배추는 그 일부일 뿐이다. 사실적인 화풍으로 환상적인 세계를 그려내는 클라우스 엔지카트의 해석은 이야기에 입체감을 더한다. 엔지카트는 글에 나오지 않는 방의 모습을 묘사하여 아이들이 상상의 놀이를 하고 있다는 점을 전면에 드러낸다. 현실적인 실내 배경에 상상의 풍경이 겹쳐진 그림은 오묘한 인상을 준다.

커튼과 침대는 돛을 단 배가 되었다, 이미지 출처 - 링크
배가 뒤집혀 바다에 빠진 아이들은 달이 뜰 때까지 수영을 한다, 이미지 출처 – 링크

 

여전한 생명력을 지닌 영감의 창고

‘그림책의 선구자’로 통하는 에드워드 리어는 그림책의 역사에서 내내 큰 존재감을 지녀왔다. 그의 작품은 크레인, 콜더컷, 그린어웨이 등 그림책의 황금시대를 이끈 작가들부터 토미 웅거러, 모리스 센닥, 쉘 실버스타인과 같은 근현대의 거장에게까지 영향을 미쳤다. 리어가 창조한 넌센스의 세계는 지금도 꾸준히 재해석되며 변함없는 신선함과 즐거움을 주고 있다.

2018년 안데르센상을 수상한 러시아 일러스트레이터 이고르 올레니코프의 그림책 <JUMBLIES>, 이미지 출처 - 링크
스페인의 일러스트레이터 헤수스 시스네로스가 에드워드 리어의 시를 바탕으로 작업한 시리즈는 2019년 볼로냐 박람회 일러스트레이터 쇼에 선정되었다, 이미지 출처 – 링크
<The Little book of Abnormalities>, 고전문학과 관련된 작업을 즐겨하는 작가 윤주희가 에드워드 리어의 리머릭을 자신만의 시각으로 해석한 판화 작업, 이미지 출처 -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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