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사월의 노래가 들려주는 사랑의 정의는 어딘가 간절하기도 하고 날카롭기도 했다. 사랑을 주지만 한편으론 그 사랑에서 벗어나고 싶은 양면적인 감정 속에 그는 맑은 목소리로 사랑의 모순을 노래하곤 했다. 이번 4집에서 김사월은 새롭게 각성한 듯 사랑을 받고 싶다고 외치기 시작한다. 이것은 지금까지의 솔직함과 또다른 방향의 솔직함이다. 사랑을 달라고, 사랑을 받고 싶다고 큰 소리로 요구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좋아하는 것들과 사랑이란 것들로 가득 채운 자신은 사랑이 만들어낸 산물이라 이야기한다.

어느 때보다 사랑으로 충만하고 자유로워진 김사월은 한결 눈에 총기를 띄며 조곤조곤 나른하지만 조금 더 다부진 말투로 이번 앨범에 대해 이야기한다. 1960~70년대 빈티지 사운드와 록, 포크를 넘나드는 초현실적인 타임머신과 같은 앨범에 관해 이야기하는 사월은 마치 긴 여행을 끝내고 돌아온 여행자 같기도 하다. 그와의 인터뷰는 언제나 새로운 사랑의 방식을 깨닫게 한다. 아름답지만 한편으론 지리멸렬할 정도로 복잡하고 난해한, 슬픔으로 가득한 사랑의 새로운 면을 들여다보게 한다. 나는 오늘도 눅진한 사랑의 품에 안겨 아름다운 사월의 목소리를 들으며 세상을 좀 더 다채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고자 노력해본다.

Q 사랑하고 싶고, 사랑을 주는 것에 더 익숙했던 김사월이 ‘사랑을 받고 싶어’라고 외치기 시작했어요. 조금은 파괴적으로 스스로를 껴안고, 힘주어 외쳤던 이전까지의 사랑 역시 솔직했지만, 이젠 좀 더 성장하고 세상의 감정과 삶, 사랑의 생애를 인정하고 수용하겠다는 주장을 하는 것 같아요. 어떤 변화가 있었기에 이런 앨범이 나왔을까요?

김사월 스스로 지금까지 계속 비슷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었다고 생각해요. 중심이 된 이야기는 같은데 말이죠. 그렇지만 이번에는 구성 자체가 조금 성숙하지 않나 싶어요. 기승전결의 구성을 보여드리는 식으로 앨범을 만들어 봤거든요. 그래서 조금 더 이야기의 완결성이라고 할까요? 확실히 예전보다 인물의 변화가 보이는 앨범인 것 같아요.

노래 ‘사랑받고 싶어’ ‘시들어도 가꾸어 줄게’ 같은 말은 저도 이번 앨범에서 처음 해보는 것 같아요. 어떤 계기 때문이기보다 1집을 내고 느낀 것, 2집과 3집, 이렇게 계속 음악을 하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살면서 느끼는 감정들을 따라가다 보니 자연스럽게 변화한 것 같아요. 앞선 제 앨범도 저라는 인간이 사랑을 추구하고 주변 사람들과 관계를 어떻게 감각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썼거든요. 이번 4집 <디폴트>의 경우 하나 더 추가됐어요. 음악을 계속하고 싶고 청자에게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 제게 더 많이 다가왔어요. 요 몇 년간 더 그렇게 된 것 같아요. 그래서 <디폴트>에 담은 다채로운 감정들은 음악을 하는 음악가로서의 감정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Q 정규 3집 <헤븐>(2020) 이후 3년 6개월이 흘렀어요. 이번 앨범 타이틀은 ‘디폴트’인데요. 조금 힘을 뺀 듯하면서도, 순수함과 자유로움이 느껴져요. 김사월에게 무엇이 완성이고 불완전이며, 인생에 있어서 (디폴트가 의미하는 것처럼) 무엇이 기본값이자 설정값인지 궁금해졌어요.

김사월 ‘디폴트’를 어떻게 보는지 시기마다 달라지는 것 같아요. 디폴트라는 말에서는 아무것도 없는 그 상태, 초기값 이런 걸 많이 상상하잖아요. 그런 아무것도 없는 나의 본질적인 게 뭘까 생각했을 때 지금보다 좀 더 어렸을 땐 스스로 좀 비관적으로 봤던 것 같아요. 부족하고 완전하지 못하고 나로 사는 게 아직 적응이 안 되고. 그래서 내가 좀 싫기도 하고. 그런 생각이 디폴트라서 항상 싫은 기분을 느끼는 쪽에 가까웠던 것 같아요. 지금 제가 디폴트라고 했을 때 드는 생각은 아무것도 없어서 기쁠 것도 슬플 것도 없기 때문에 좋다. 전부 그럴 수는 없겠지만 어떤 감정이라도 나에게 다가오면 감사하게 받고 싶다. 어렵겠지만 이런 생각으로 살아야겠다 생각해요.

아까 자유로워졌다는 말을 해주셔서 좋았어요. <헤븐>은 스스로 많이 파고들었던 작업이었거든요. 그걸 발매하고 나니까 밖으로 나가서 사람들을 좀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이후 좀 더 가벼운 과정으로 <드라이브>라는 EP도 만들어보고 라이브 앨범도 또 한 번 만들어봤어요. (그러고보니) 저는 좀 긴장될 때 라이브 앨범을 만드네요. <로맨스>(2018) 전에도 라이브 앨범을 냈는데, (정규앨범 작업을) 좀 더 잘하기 위해 그 전에 힘을 빼고 싶어서 그런 것 같아요. 2023년 즈음을 4집 작업에 본격적으로 착수한 기간이라 보는데 그때 느낀 진짜 즐겁고 기분 좋은 에너지를 앨범에 잘 담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 에너지를 다 담고 나면 나중에는 피폐해지기도 하고, 좀 긴장돼 있는 상태가 돼요. 하지만 앨범을 만드는 그때만큼은 정말 많이 풀어놓고 행복하고 그냥 자유로운 느낌으로 지냈던 것 같아요. 그게 담겼고 느껴졌구나 싶어서 기쁘네요.

 

Q 사월 씨 블로그에, 이번 앨범이 몸에서 빠져나가는 것 같아 공허하다는 말이 있어요. 이번 앨범을 만들면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언제인가요? 그리고 잊지 못할 순간은 언제인가요? 블로그에 “영광의 시대가 지금 왔으면 좋겠다.”라고 했는데 사월 씨가 생각하는 영광의 시대는 어떤 모습인가요?

김사월 종종 블로그에 포스트를 쓰는데요. 재밌어요. 평소 제게 변태적인 면이 좀 있어요. 이쯤에서 그만해도 될 것 같을 때 조금 더 벗는 바람에 사람들이 “쟤 저것도 벗어.” 하는 걸 좀 즐기는 게 있거든요. 블로그가 약간 그런 공간인 거죠. 아마 공허하다는 말을 하기 전에는 엄청나게 충만했다는 말을 앞에 이만큼 써 놓았을 거예요. 이만큼 공허하지만, 그만큼 충분하다. 이런 식의 이야기가 제 블로그에 반복돼요. 공허하다는 얘기에 좀 말을 붙여보자면 앨범을 내기 직전, 그러니까 마스터 버전을 제가 갖고 있고, 유통사와 소통하는 한 2~3주 정도의 기간이 있어요. 그때 너무 앨범을 내기 싫은 거예요. 물론 발매는 할 거지만 그냥 그런 마음이 든다는 거죠. 이걸 발매하면 이제 내가 지금만큼 이 앨범을 사랑하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저랑 이 앨범 둘만 있으면 저는 얘를 언제까지나 사랑해주고 계속 고쳐가면서 다듬고 그렇게 살면 될 텐데 이제 세상에 나오면 이건 고정된 것이 되고, 저도 사람들이 하는 말에 영향을 받아서 저랑 얘랑 둘이 있을 때 사랑하던 거랑 다른 느낌으로 얘를 좋아하게 될 거란 생각이 들었죠. 지금 시점으로 앨범을 릴리즈 한 지 2주 조금 넘었는데요. 지금은 또 꽤나 많이 떨어졌어요. 이게 그래요. 그래서 앨범을 내고 나면 마음이 공허한 것 같아요.

 

Q 블로그에 있는 글 중 발매 후 시간이 좀 지나면서 앨범이 썸네일로 남는다는 문장이 무척 인상 깊었어요.

김사월 창작물을 내는 분들은 다 비슷하게 공감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언제나 그렇기는 하지만 이번에도 너무너무 과몰입 하면서 행복하게 만들어서 이걸 마무리하는 게 더 아쉬웠던 것 같고요. 그러니까 너무 좋았기 때문인 거죠. 앞에 얘기하신 ‘영광의 시대’도 해명해야 할 것 같은데 저는 내 마지막 직업이 음악가의 작업이면 좋겠다. 영원히 음악하고 싶다. 이렇게 생각하는데요. 내가 원한다고 그렇게 되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 살 수 있는 때가 주어져 있을 거예요. 아마도. 그렇게 생각했을 때 전 아직 젊고, 그래서 이런 말을 하는 건 오만하지만, 이번 활동이 내 음악 인생에서 제일 열정적이고 열심히 한 활동으로 남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그런 말을 쓴 것 같아요. 앞으로 솔직히 모르겠어요. 물론 또 열심히 하겠죠. 이렇게 말해놓고는. (웃음)

 

Q 이번 앨범에 애정이 많았나 봐요. 모든 앨범이 그렇겠지만.

김사월 블로그에 그 말도 되게 많이 썼어요. “내 새끼 나나 이쁘지.” 하면서. 원래 그래요. 자기 작품이 제일 예쁘죠. (그 중에도) 걘 (<디폴트>) 달라요. 늦둥이가 얼마나 예쁜지. 완전 정이 많이 붙었습니다. (웃음)

Q 이번 앨범의 커버가 인상깊어요. 지금까지 어떤 앨범보다 가장 독특한 메이크업과 연출이 시도된 것 같아요. 이러한 인상에는 짧은 숏컷 헤어스타일이 한 몫 하는 것 같아요. 이런 아이디어는 어디서 왔나요?

김사월 제가 본격적인 화장을 하고 스튜디오에서 앨범 커버를 찍은 건 아마 이번이 처음인 것 같아요. 이전까지 계속 스냅 사진을 찍었고 뇌(N’Ouir) 작가님하고 1집부터 3집까지 작업을 했어요. 전 개인적으로 그분이 저를 정말 예쁘게 찍어 주시는 분이라고 생각해요. 그분이 얼굴이 말갛게 보이는 느낌을 잘 찍으셨고, 특히 1집 <수잔>(2015)의 앨범 커버는 저의 베이직한 모습을 많이 보여드리는 앨범이라서 화장 없는 얼굴이 잘 어울렸던 것 같아요. 4집 <헤븐>의 경우에는, 구성 자체가 앞의 세 앨범과 좀 다르거든요. 저도 지금 되돌아보니 1집부터 3집까지는 연작까지는 아니지만 한 세 번까지는 내리쳐야 없어지는 어떤 감정이 있었던 것 같아요. 4집은 기승전결이 있고 테마도 좀 다르죠. 이전 앨범들은 좀 더 주인공 위주이잖아요. 이번 앨범은 더 바깥으로 가는, 다른 사람들을 향해 가는 앨범인 것 같아요. ‘디폴트’라는 앨범 제목과 타이틀곡을 정하고 연상되는 이미지들을 만들어보는데 오히려 기본값이니까 이것저것 다 될 수 있을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뮤직비디오 안에서도 다양한 모습의 제가 나타났고 ‘사랑해 주세요. 그리고 버려요’ 같은 경우에 인형 옷도 입어봤죠. ‘디폴트’의 대표적인 이미지는 고민을 많이 하다 지금 앨범 자켓이 됐는데요. 하얀 바탕에 약간 표면적으로는 세상에서 기준으로 내세우는 보통의 성인 남성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그런 것의 탈을 쓴 내 모습 같은 것을 연출해보고 싶었고, 방향을 그쪽으로 잡다 보니까 헤어 메이크업 선생님께서 먼저 가발을 쓰자고 제안해 주셨어요. 이것저것 써봤는데 아주 짧은 머리가 제일 잘 어울리더라고요. 이 인물은 여기서도 저기서도 완전히 나눠지지 못하는 경계에 있는, 디폴트에 약간 반항심이 있는 그런 모습이에요.

 

Q 그러게요. 이야기를 듣고 보니까 헤어스타일과 옷 등 전반적인 느낌이 우리가 일반적으로 보통의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때의 디폴트 값 같기는 해요. 레고 인형 같기도 한 모습.

김사월 좀 꼬아버린 거죠. 전혀 거기에 부합하지 않는 내 스스로의 정체성을 반영했다고 할까요? 어디에 부합되지가 않아서 오는 외로움 같은 게 <수잔> 때부터 계속 있었던 것 같아요. 이번 사진은 남자 버전, 여자 버전이 있는데요. 김사월 쇼 포스터에서 제가 여장을 했어요. 남장보다는 여장을 하니 제가 조금 더 부끄러움을 많이 탔어요. 제 모습이 너무 예쁘게 꾸며져 있어서. 남장했을 때는 갑자기 막 어깨에 힘을 주게 되고 그랬는데 말이죠. 약간 끼워 맞추면 ‘눈과 비가 섞여 내리는 밤’ 그 자체가 디폴트의 표지이고, 온도에 따라 눈도 됐다가 비도 됐다가 하는 게 우리 인생인 것 같아요.

 

Q 낙관과 비관을 내려놓은 상태. 사랑 속에서도 상처가 있음을 인정하고 어둠 속에서도 빛을 기다릴 수 있는 깨끗한 마음. 사랑을 다시 배우며 슬프지 않은 혼자가 되는 것. 사랑이란 결국 혼자 오롯이 완전해질 수 있어야 하는 것이겠지요? 김사월이 사랑에게, 그리고 사랑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소망하는 것은 무엇인지 자세히 알려주세요.

김사월 그 말에 반항심이 생겨서 만든 앨범이 <로맨스>였단 말이에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나니 혼자서도 잘 살아야 되는구나 결국 귀결된 거예요. (웃음)

 

Q 지금은 <로맨스> 때와는 확실히 많이 달라졌나요?

김사월 제가 사랑에게, 혹은 사랑이란 감정이 오고 가는 것에 관해 감히 어떻게 말할 수는 없을 것 같고요. 그걸 보는 제 태도는 예전보다는 가볍고도, 진지하고 싶어요. 결국 혼자서 잘 있어야 되는 게 너무 잔인하지만 맞는 것 같아요. 그리고 저는 요즘 혼자서 잘 있는 게 되게 좋더라고요. 2018, 2019년, 막 2집을 냈을 때만 해도 늘 새벽 6시까지 작업하고, 계획없이 방탕함에서 오는 창의적인 기분 같은 걸 되게 즐겼던 것 같아요. 그런데 인간에겐 당연한 수순이겠지만 서서히 체력이 떨어지게 됐어요. 요즘은 아침 7시에 일어나요. 아침에 햇빛의 기가 너무 세서 해가 뜨면 막 일어나요. 밤에는 11시, 12시에는 자려고 하죠. 사랑에 대해서 물으셨는데, 루틴 얘기를 하고 있네요. (웃음) 가볍지만 진지하고 싶다는 말은, 제가 약 10년 정도 제 음악을 듣는 분들을 만나오면서 평생 음악 안 하고 살았으면 몰랐을 너무 많고 큰 사랑을 받았어요. 이미 평생 써도 남을 만큼 받았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그 사랑을 받고 “감사합니다” 하며 매번 잘 받았으면 좋겠는데 받는 법을 잘 모르니까 그걸 일부 놓치고 다시 사랑을 갈구하는 제 모습을 인지하게 되어서, 아주 솔직한 마음으로 “사랑받고 싶어”라고 쓰게 된 것 같아요. 그리고 이젠 사랑을 주셨을 때 진짜 맛있게, 온전하게 받을 수 있는 힘이 내게 있으면 좋겠다 생각하고 있어요.

 

Q 이제는 온전히 사랑을 다 받아낼 수 있는 크기의 힘이 생겨난 걸까요?

김사월 사실 아직 없어요. 소망에 가까울까요? 사실 평생 없을 수도 있는데 제 마음가짐은 이제 그래요. 주시면 그렇게 다 받아내겠다고. 그럴 수 있다는 걸 진짜 믿어야 되는 것 같아요. 꼭 저와 청자의 관계가 아니더라도 사람과 사람이 만났을 때 이 순간을 그냥 믿는 것밖에 방법이 없는 것 같아요.

‘사랑해 주세요 그리고 버려요’ 뮤직비디오

Q 선공개 곡이자 첫 번째 트랙인 ‘사랑해 주세요 그리고 버려요’에서 이번 앨범의 정체성을 제대로 알 수 있는 것 같아요. 사랑해달라면서 버려달라는 모순이 김사월의 새로운 사랑의 방식 같았어요. 이 두 가지가 공존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김사월 이야기를 듣다 보니까 생각나는 게 있어요. 예전에 제가 만든 노래 중에 ‘비밀’(2014)이라는 노래가 있어요. 가사가 ‘나를 아껴줘 아니 그냥 내버려 둬’거든요. 저는 블로그도 그렇고 반대되는 말을 반복해서 써서 결국 이 사람이 대체 뭘 원하는 건지 상대가 파악하지 못하게 만드는 그런 화법이 있어요. 사실 ‘사랑해 주세요. 그리고 버려요’는 좀 신기한 게 저는 이게 되게 명확하다고 생각했거든요. 왜냐하면 이건 떠나가는 사람한테 하는 얘기예요. 나를 사랑하는 사람한테 나 사랑도 해주고 버리기도 해라가 아니고 날 다 사랑하고 떠나는 사람한테 사랑해 주셨으니까 이제 버리실 때가 됐군요. 버려주세요. 그리고 나 버림받는 거 좋아합니다. 이런 아리랑 같은 노래예요. 다들 왜 사랑해 달라면서 버리라고 하지라는 질문은 사람들이 사랑해 주세요라는 말에 그만큼 많이 반응한다는 뜻이라고 저는 생각해요. 그래서 다들 사랑받고 싶구나라는 생각도 해요.

 

Q 이 곡을 선공개한 이유가 있을까요? 앞서 ‘칼’(2023)과 이 노래가 선공개됐을 때 나름 이번 앨범에 대한 힌트라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또 다른 이유가 있을 것 같아요.

김사월 저는 선공개 트랙을 정하는 게 재미있는 놀이 같기도 해요. 작년 10월에 냈던 ‘칼’과 ‘밤 통신’ 같은 경우에 김사월이 다시 포크 같은 거 하려나 보다 연막을 깔아 놓은 거죠. 그런데 사실 그 노래는 2부의 첫 곡과 앨범 아웃트로를 공개한 것이었어요. 사실 1부는 하나도 공개하지 않은 거예요. 그래서 앨범 임박 즈음 찐 선공개를 했을 때는 1부 첫 곡을 공개했어요. 그렇게 앨범의 구조를 보여드린 거죠. 1부 첫 곡, 2부 첫 곡 그리고 아웃트로. 그리고 중간에 ‘디폴트’가 나올테니 이런 식으로 제가 앨범 구성을 재미있게 만들었다는 거를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그리고 ‘사랑해 주세요 그리고 버려요’는 단순하고 빨리 다가갈 수 있는 메시지의 곡이라고 생각해서 많은 분들이 이 곡을 봐주셨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어요. 앨범 재킷도 되게 파격적인 걸로 하고 싶었고 선공개가 나온다는데 얘가 왜 인형 같은 걸입고 막 춤을 추고 있냐 하는, 당혹스러워서라도 저를 보고 음악을 들으셨으면 했어요.

 

Q 뮤직비디오 속 곰 인형 의상이 너무 귀여웠어요. 누구 아이디어예요?

김사월 제 아이디어예요. 여러 가지 요소가 좀 섞여 있어요. 옛날에 비틀스가 실제로 그런 코스튬을 한 적이 있어요. 그리고 영화 <수면의 과학>(2006)에도 그런 장면이 있고요. 우리가 그런 무드를 오마주하는 느낌인 거죠. 수록곡들의 경우 비틀스 음악처럼 믹싱도 재밌게 한 곡이기 때문에 ‘지금 우리가 이런걸 할 거야’를 보여주기에 좋은 곡이자 콘셉트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저는 저희 밴드 멤버들이 진짜 너무 매력적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보는 분들이 이 매력을 어떻게 쉽게 접근할까 생각했을 때 사랑스러운 모습이 되자! 하는 생각도 있었어요. 좀 복합적이게 가사는 버려달라고 하는데 되게 버리기 싫게 생겼으면 했어요. 버리지 못하겠는 모양새를 하고 ‘뭐 버려줘! 디폴트 뭔데?’ 이렇게 시니컬한 그런 느낌도 내고.

 

Q 앨범 초반부 트랙들은 올드 팝처럼 느껴져요. 빈티지한 사운드를 많이 담으려고 했다고 했는데 특히 첫 번째 트랙에서 두 번째 트랙으로 넘어가면서 1960~70년대 사운드가 강하게 느껴져요. 특히 사월 씨의 목소리가 오래전 미국이나 영국의 어느 클럽에서 들려올 것처럼 경쾌하다가 클라이맥스의 외침에서는 홀리한 느낌도 들고요. 두 곡을 이런 분위기로 연출한 배경이 궁금해요.

김사월 ‘디폴트’라는 노래를 먼저 만들고 이 곡을 주제로 앨범을 구성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 다음에 이 곡을 어디에 배치하면 제일 ‘디폴트’가 잘 들릴까 생각했고요. 제일 처음에 나올 수도 있고 뒤쪽일 수도 있고 여러 방식이 있겠지만 아예 중앙에 배치를 하는 게 가장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디폴트’ 자체가 기승전결이 너무 확실한 노래라서 이걸로 앞에 기승을 만들 수 있고, 뒤쪽 서사도 꾸릴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지금의 배치가 됐는데, 처음 두 곡의 경우에 일단 사랑 없는 세상이 ‘디폴트’니까 버림받은 것부터 시작을 해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두 트랙이 크로스 페이딩 돼서 그냥 하나로 쓱 이어지는 식으로 들으실 수 있는데요. 두 곡이 서로 영향을 주고 각자 못한 말을 서로 해주는 식으로의 노래가 진행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저는 앨범 만들면서 ‘이러면 어떨까?’ 하는 식의 가정을 하며 혼자 즐거워하며 만드는데요. 지금 형태는 김사월 4집이 나왔는데 한번 들어볼까? 하면서 1번을 눌렀을 때 결국 2번 끝까지 들어야 된단 말이에요. 그렇게 자연스럽게 3번 트랙 ‘너의 친구’까지 가실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가정했죠. 이 앨범 전체를 듣게 하려면 초반에 기선제압을 해야 된다! 그런 생각을 좀 했던 것 같습니다. 하드 패닝*과 같은 당황스러움과 함께 너 지금부터 이 앨범에 집중해야 될 거야 하는 느낌을 초반에 주고 싶었어요.

* 하드 패닝 : 특정 오디오 신호를 스테레오 영역의 완전히 한쪽 끝으로 배치하는 기술을 뜻한다. 즉 소리를 왼쪽 또는 오른쪽 스피커로만 전달하여 듣는 이에게 극단적인 좌우 위치감을 제공하는 방식이다.
‘너의 친구’

Q “외로워 보이는 건 죄가 아니지만 외로워 보이면 더 외로워질 거야”라는 가사가 인상깊어요. 사랑할 때도 사랑하지 않을 때도 우리는 늘 외로움을 느끼는데 이 외로움의 굴레에서 우리가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김사월 외로움에 대처하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일단 저는 외로움을 막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편이고 그걸 어떻게 길들이며 사느냐에 대한 얘기를 제가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전반부 기조가 그래요. 마치 <슬램 덩크>의 송태섭처럼 너무 힘들지만 온 힘을 다해 강한 척하는 것 같은 것과 비슷하죠. 너무 외롭기에 외롭지 않은 척해 아니면 넌 더 외로워질 거야가 전반부의 정서예요. 뒤에 이어지는 ‘독약’도 그렇고 ‘너희 친구’도 그런 기조가 전반부에 깔려 있어요.

 

Q ‘너의 친구’를 들으면서 저는 ‘붉은 늑대’(2019)가 생각났어요. “누구라도 상관없어, 당신이면 좋겠어.” 말하던 화자의 주장이 “누구의 연인도 아니고 네가 좋아하는 사람도 아냐” 이 부분의 반복에서 비슷한 뉘앙스로 느껴지고 한편으론 강하게 너를 원하던 화자가 이젠 그저 친구라도 고맙다고 느껴지는 게 김사월이 생각하는 사랑의 과거와 현재의 선명한 대비 같이 느껴졌거든요. 그리고 이번 곡 역시 모순적인 부분들이 있어요. 사랑을 받고 싶으면서도 그저 만족하는 것으로 포장하는 듯한 슬픔도 있고요.

김사월 저는 이 노래가 ‘붉은 늑대’랑 연결될 줄 상상도 못했어요. 얘기를 들어보니까 정반대의 것을 원하면서 반대로 얘기한다는 점에서 비슷한 것 같아요. 사실 누구라도 상관없고 당신이면 좋겠다는 말은 누구도 안 되고 너도 안 된다는 뜻이에요. (웃음) ‘너의 친구’는 나는 너에게 다가가고 싶고, 너의 친구 이상이 되고 싶어하기 때문에 다른 쪽으로 맴도는 거예요. 그냥 화법인 것 같아요. 제 노래에 많이 쓰이는 화법. 그리고 직진으로 말하는 방법을 제가 잘 모르는 것 같기도 하고요. 언어에서도 이중 부정이 더 강한 의미잖아요. 힘을 엄청 실어주고 싶어서 완전 다른 얘기, 반대편을 굉장히 강조하는 식으로 말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Q ‘독약’의 경우 원테이크로 녹음했다고 들었어요. 그 외에도 이번 앨범에는 원테이크 곡들이 많아요. 이 경우 어떤 부분이 크게 다르고 어떤 부분이 가장 장점인지, 어떤 의도로 그렇게 진행했는지 알고 싶어요.

김사월 이번에 제 앨범의 소개글을 직접 써버렸어요. 제가 너무 구조를 밝혀버리면 듣는 분들이 여기에 갇혀서 들을까 걱정도 됐지만, 용감하게 앨범 소개글을 썼고 그 안에 원테이크 녹음 유무도 적었어요. 원테이크 녹음 방식을 택한 건, 전반부의 콘셉트와 메시지를 1960~70년대 영미권 밴드가 가지던 바이브, 많이 다듬지 않았지만 질감이 좋은 그런 사운드들에 대한 동경이라고 할까요? 그런 걸 담는 형태로 전반부 콘셉트를 잡았어요. 그리고 그렇게 하려면 후작업으로 이펙트를 더하는 것도 방법일 테고, 장비를 더 빈티지하게 쓰는 것도 방법일 텐데, 저랑 믹싱 감독님의 생각으로는 비틀스가 녹음하던 당시에는 튠이나 수정을 안 했고 그래서 이런 느낌이 나는 거다. 결론을 냈죠.

‘독약’

Q 약간 지글지글 한 느낌이고.

김사월 그래서 연주하다가 약간 엇나가도 바이브가 좋으면 그냥 갔어요. 그게 오히려 멋있고 인장처럼 느껴지는 게 재미있어서 추구하게 된 것 같아요. 그래서 원테이크 녹음을 선택하게 됐고요. 방식은 드러머 분이 아이패드로 메트로놈을 듣지 않고 보면서 연주를 하고, 한 부스에서 함께 그 드럼 소리를 들으면서 멤버들이 연주를 해요. 그래서 원테이크로 표시된 곡들은 박자가 유지되진 않아요. 그런 미묘하게 당겨지거나 밀려지거나 좀 신나면 빨라지는 이런 것들이 되게 잘 담겨 있고 ‘독약’이 특히 원테이크와 잘 어울리는 노래인 것 같아요. 최근에 사월 쇼 준비 합주를 하며 느끼는데 우리는 매번 새로운 테이크를 연주하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서 이 버전이 더 특별하게 느껴졌어요.

 

Q ‘독약’에서 화자가 강인해지는 건 입 속에 독약을 머금고 삼키기 않도록 하는 것이라고 했는데 정말 어려운 일인 것 같아요. 그만큼 강해지고 아픔을 이겨내는 건 쉽지 않은 것이겠지요. 그런 가사와 내용에 비해 김사월은 무심하게 노래를 불러요. 전반적으로 기타를 비롯하여 악기의 풍성함과 코러스가 눈에 띄는 풍성한 곡임에도 보컬이 무심해서 좀 더 미니멀하게 느껴지기도 해요. 이 곡을 무심하게 부른 이유가 있나요’?

김사월 이 노래도 음악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쓴 거예요. 괴로움을 내가 삼키지도 뱉지도 못하고 그냥 갖고 가야만 하는 때가 있구나. 그렇게 비관하고 센 척 하다가도 소중한 시절의 사진을 보는 순간 마음이 무너져 내리면서 아 내가 지키고 싶었던 게 있어서 마음의 벽을 쌓고 있구나 이런 생각하게 되는 내용이라고 할까요?

 

Q 그 마음의 벽이 있어서 그런지 노래를 코러스나 이런 거에 비해 되게 무심하게 부르시거든요. 그러면 이제 그 벽이 무너져 내려가는 걸 표현하신 건가요?

김사월 그런 느낌을 연출하는 걸 좀 좋아해요. 엄청 슬픈 내용의 노래인데 나는 별로 안 슬프게 부르는 방식이요. 제 노래 중에 라이브 앨범에 실린 ‘너무 많은 연애’(2017)라는 노래가 있어요. 이 노래는 제가 부를 때도, 악기를 연주할 때도 슬퍼지기 쉽거든요. 그렇지만 저는 잔인하게도 특히 피아노 연주자에게 절대 슬프게 치지 말라고 해요. 진짜 슬플 수밖에 없는 코드지만 안 슬프게 쳐야 된다. 나도 안 슬프게 부를 테니까. 그렇게 말해요. 눈물 날 것 같은데 그걸 참아내면서 뭔가 완성되는 게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독약’의 화자도 너무 슬퍼 보이면 자기에 심취해 보이고 좀 꼴불견일 것 같아서 무심한 연출을 한 것 같아요.

 

Q 타이틀곡 ‘디폴트’를 중심으로 앨범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해요. 사랑없는 세상이 디폴트이지만 새로운 사랑을 꿈꾸는 그런 마음이 곡의 뒤로 갈수록 절정을 맞이하죠. 사랑의 다양한 모습, 양가적인 마음과 모순이 폭발하는 곡이 디폴트예요. 디폴트는 앨범의 타이틀이기도 한데 디폴트란 곡에 대해 설명해 주세요.

김사월 진짜 오랫동안 하지 못했던 얘기를 결국 하게 되는 내용이라고 생각해요. 이때까지 못했기 때문에 앞에 이야기들이 쌓여온 걸 수도 있고요. 결국 그 얘기를 하는 장면은 이 사람이 조금은 다른 선택을 하게 되는 가교에 있다고 생각해요. 너도 나도 비슷하고 그래서 나쁘고. 그런 마음이 ‘독약’과 ‘나쁜 사람’으로 이어지다 ‘디폴트’를 맞을 준비가 된 것 같아요. 사랑 없는 세상은 디폴트라고. 하지만 사실은 사랑을 기다리고 있고, 내가 진짜 원하는 건 사실 사랑받고 싶었던 거 아니었나? 그 말을 부끄러워서 못했던 거 아닌가? 이런 내용들이 담겨 있어요.

‘디폴트’ 뮤직비디오

Q 뮤직비디오가 매우 독특해요. 뮤직비디오 첫 번째 챕터에는, 중년 여성이 들고 있는 물감 이미지, 학생의 모습을 한 멍이든 김사월, 일본에 있는 김사월, 크래파스로 그린 수많은 그림이 있어요. 두 번째 챕터에는 “벅찬 기다림”이라는 가사와 함께 다양한 이미지가 폭발하죠. 이런 이미지들은 어떤 것들을 의미하는지 뮤직비디오에 관해 설명해주세요. 저는 전반적으로 뮤직비디오의 이미지가, 지금까지 김사월의 상념들이 모여 폭발한 듯한 느낌이 들었어요. 노래가 끝날 때 김사월이 숨을 내쉬듯 저도 벅차게 숨을 내쉬게 됐어요.

김사월 일단 저도 이번 뮤직비디오 너무너무 마음에 들고 참 좋아해요. 그리고 이런 소중한 작업을 함께 하게 된 NOKO 팀에게 감사드리는 바입니다. ‘디폴트’는 NOKO 팀에서 만들어 주신 이야기였는데, 저도 그 이야기에 되게 매료돼서 그 캐릭터처럼 연기를 한 것 같아요. ‘로르샤흐 테스트’라는 심리 검사를 첫 모티프로 잡았어요. 이 테스트는 검사했을 때 “이 문양에서 어떤 게 보여요.”라는 대답으로 상담 받는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는 검사예요. 그래서 뭐가 보이는지가 자유이고 어떤 것도 볼 수 있고요. 뮤직비디오 안에서는 사월이 여러 그림을 보면서 기억 속의 자신을 보는 거죠. 예전에 나도 보이고, 내 안에 나도 보이고. 이런 플롯입니다.

좀 디테일한 구조를 공개하자면 처음에 상담사와 김사월이 만나는 공간은 현실 세계가 아니고 사후 세계 같은 거라고 생각했어요. 사월은 검사를 진행하다 어느 순간 내가 지금 죽어서 여기 있는 거구나를 알게 되는 거예요. 그러다 열지 않아야 되는 어떤 공간으로 가거든요. 그후 일어나는 일은 죽음 혹은 새롭게 태어나는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고요. 저는 만들어진 영상을 보면서, 기어코 저걸 열어서 저걸 하게 돼 버렸구나, 한편으론 그게 또 새로운 시작일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마지막 장면도 결국 하나의 로르샤흐 테스트지처럼 보이잖아요. 그래서 보는 사람들에게 “너는 이게 뭘로 보여?” 묻는 거죠. 네가 보고 생각한 게 다 맞는 거라고 답해주는 것이기도 하고요. 그럼 저는 어디서 죽은 걸까요? 이제 뮤직비디오를 보면 찾을 수 있을 거예요.

‘칼’ 뮤직비디오

Q 다음 곡으로 ‘칼’이 나오면서 김사월이 이 곡을 왜 스포일러처럼 선공개했는지 알 것 같더라고요. ‘디폴트’로 폭발하던 사랑에 대한 복잡한 마음은 다시 널 힘들게 하는 세상을 베어버리는 성숙하고 용감한 자아로 승화했어요. 앞에서 격하게, 넘쳐 흐르던 마음과 사운드가 포크적으로 다시 정리되기도 했고요. 이렇게 파트를 나눈 이유가 있나요?

김사월 ‘디폴트’의 낙차를 처음 마주하는 곡이 ‘칼’인데, 저는 ‘디폴트’가 끝나고 ‘칼’로 차분하게 그리고 다시 차갑고 황량하게 시작하는 게 너무 좋더라고요. ‘칼’이라는 노래가 2부의 시작을 되게 잘 열어줄 수 있는 곡인 것도 맞고요. 1부는 쌓아가는 얘기라면 2부 부터는 나열하는 이야기예요. ‘이런 사랑도 난 할 수 있겠네.’ 이런 식의 나열이요.

 

Q ‘칼’ 이후 따뜻하고 성숙해진 화자는 ‘못 우는데’처럼 포근한 감정을 노래하기도 해요. 나는 못 울지만 대신 울어주는, 그런 상대를 안아주는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요. 그리고 ‘호수’ 역시 나의, 너의 마음을 덮어주는 듯 품어주는 듯한 넓은 마음이 느껴져요. 이렇게 포근한 마음은 김사월의 어떠한 곳에서 흘러나온 마음일까요?

김사월 결국 이때까지 하지 못했던. 그리고 어떻게 생각하면 너무 부끄럽고 떨리고 망신스럽기도 한 ‘사랑받고 싶어’ 이 말을 ‘디폴트’에서 하고 나서 자신이 조금 달라졌을 것 같아요. 그 해소감으로 달라진 게 있을 테이고, 이후에는 본능적이고 자연스럽게 후반부를 배치하게 된 것 같아요. 결국 저는 저로 돌아와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돌아온 나는 나랑 비슷해 보이지만 그래도 이 여정을 갔다 왔기 때문에 조금은 달라진 모습이었으면 했어요. 그래서 2부는 포크로 하고 싶었고요. 개인적으로는 2부를 편곡하거나 톤 잡기 훨씬 어려웠어요. 왜냐하면 늘 하던 거기 때문에 이거를 잘 하려면 너무 고민되는 부분이 많았거든요. 오히려 터트리고 막 나아가고 이런 것들은 그걸 굴러가게만 하면 돼요. 근데 이렇게 차분해질 때가 저는 오히려 고민이 많이 되는 것 같아요.

 

Q 이 구간은 진짜 좀 마음이 짠해져요. 애절하기도 하고 간절하기도 하고. 앨범 앞에 워낙 많은 것들이 쌓여 있다가 폭발한 후에 이 곡들을 듣다 보니 좀 더 그 대비감이 커서 쓰러질 것 같은 기분이었죠.

김사월 그래서 ‘칼’도 선공개로 들었을 때랑 이 앨범 안에서 들었을 때 느낌이 달라요. 되게 다르게 느껴져요. 그러다 보니 아예 메시지도 다르게 느껴지고요. 앨범이라는 매체가 너무 매력적인 이유예요.

Q ‘가을장미’는 고요한 김사월의 목소리로 지나가버린, 혹은 지나갈 수도 있는 사랑에 대해 이야기해요. 아쉬울 것도 없다고 하는 김사월. 이 역시 세상의 모든 변화와 사랑을 수용하는 성숙해진 김사월이 느껴져요. 어떻게 보면 이 앨범의 마지막이 될 수도 있었을 이 곡에서 종료되지 않고 다시 로큰롤 사운드의 ‘눈과 비가 섞여 내리는 밤’이 삽입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아웃트로가 있긴 하지만 이 곡 덕분에 앨범을 동그랗게 감싸가지고 뫼비우스 띠처럼 계속 돌아가는 느낌도 있어요.

김사월 그 말씀이 너무 좋네요. 앨범을 감싸고 있는 끈. 개인적으로 저는 ‘가을 장미’가 너무 애착이 가요. 이 노래에는 플루트와 클라리넷이 있는데 관악기 편곡이 너무 두려워서 미루고 미루다가 올해 1월에 겨우 녹음했어요. 원래 작년에 다 끝나고 올해 초에는 믹싱만 하려고 했는데 이 곡을 제가 엄청 미뤄버린 거예요. 그렇게 걱정되는 녹음이었는데 거짓말같이 이 곡을 수음하는 마이크가 제게 너무 잘 맞는 것 같다는 경험을 했어요. 너무 마음에 들게 녹음을 하게 되었고 이 노래 한 곡이라도 이 마이크로 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가을 장미’라는 노래가 그런 거죠. 가을에 피는 장미면 곧 추워질 텐데, 곧 시들어서 죽을 텐데 자기는 그걸 다 만끽하면서 계속 살아가는 얘기잖아요. 그래서 후반부에는 그 코러스 라인 같은 게 진짜 흐드러지게 징그럽게 폈으면 했어요. 그러니까 곧 죽음이 다가온다 해도 마지막까지 사는 생명력처럼. 그리고 제가 이게 음악에 대한 앨범이기도 하다고 했잖아요. 마치 나도 ‘가을 장미’처럼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마지막까지 계속 피어나고 싶다는 그런 마음이에요. 그렇지만 삶은 그렇게 막 아련하고 멋있게 끝나지 않고 그런 선언을 하고 나서도 되게 지지부진하고 그냥 좀 재미없고 힘든 삶이 계속될 수밖에 없잖아요. 어떤 엔딩이 끝나고 나서도 갑자기 눈 뜨면 그냥 어제와 똑같은 아침이 계속될 수도 있는 거죠. 바로 전 앨범 <헤븐>에서는 나도 싫고 너도 싫고 다 죽어. 세상 멸망했으면 좋겠다! 실제로 ‘헤븐’은 없고 우리 다 행복하게 죽었습니다. 이렇게 끝나는데 가을 장미에서는 죽기 직전까지 살겠다고 희망을 보다가 다음 곡이 나와요. 멋지게 사라질 순 없더라도 계속 살고 싶은 그런 얘기입니다.

 

Q 결국 가을 장미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뒤에 뭔가를 남긴 거네요.

김사월 매해 다시 피어나면 되니까요. 아니 사후라도 또, 또 피어나면 되니까 아쉬울 거 없어요.

 

Q 마지막에는 에필로그처럼 선공개 곡이었던 ‘밤에서 아침으로 가는 통신’이 흘러나와요. 이 앨범을 들어준 모두에게 보내는 편지 같기도 하고요. 시공간을 초월하는 이 사랑이 마지막에 배치된 건 어떤 의도일까요?

김사월 ‘디폴트’라는 앨범 주제를 잡았지만 결국 이 얘기를 하고 싶어서 앨범을 만든 게 아닌가 생각도 들어요. 내 안에 있는 빛이 어떨 때는 나를 말려주고, 어둠이 또 나를 적셔주고. 이런 상황 자체를 이제는 이렇구나 받아들이고 싶은 기분. 세상이 빛과 어둠으로 쉽게 나뉘어지기도 어려울 정도로 복잡한 것이 다 섞여 있는 것이라 생각하지만 그것이 우리가 사는 삶이구나 생각하면 약간 위안이 되는 것 같아요. 저는 이전에는 나의 어둠 같은 것을 어쩔 줄 몰라서 끌어안지도 못하고 있었던 때도 있었고 내 빛을 되게 싫어할 때도 있었어요. 지금은 조금 더 편해지고 싶다. 나와 관계하는 사람들에게도 그런 마음을 나누고 싶고 우리 삶의 관계도 편안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Q 이번 역시 앨범의 가사가 또렷하게 들리고 듣는 내내 가사를 곱씹게 됐던 앨범이었습니다. 불완전 끝에 자기를 수용하고 솔직하게 고백하는 모습에서 또다른 김사월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김사월은 어떤 사랑을 했을까? 어떤 천국을 보고 어떤 지옥을 보고 또 얼마나 초탈할 수 있었던 것일까? 김사월의 영화 같은 사랑을 상상해보게 됐어요. 김사월은 지난 사랑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요?

김사월 그런 얘기 많이 들어요. 무슨 사랑을 했나? 저는 연애적인 사랑으로만 사랑이야기를 쓰지는 않고요. 물론 2집 앨범 <로맨스>는 연인간의 사랑을 매우 특정해서 만든 앨범이긴 하지만 그것도 결국 그걸 통해 내가 어떻게 성장하느냐에 대한 얘기였다고 생각해요. 그냥 나로 살면서 내가 날 사랑하는 것. 주변과 나누는 사랑, 친구, 동료, 일이나 세상과의 관계에서 느끼는 사랑, 이런 거에 대한 얘기를 저는 계속 쓰는 사람인 것 같아요. 그래서 어떤 사랑했냐 물으시면 지금까지의 습관으로는 전 사랑 같은 걸 잘 못하기 때문에 이런 걸 씁니다. 말을 했던 것 같고요. 지금 시점에 조금 발전된 대답을 한다면 그냥 전 이때까지 좋아한 것의 합이 지금 제 성질이라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사랑은 저를 만들어 준 것들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Q 어쨌든 내 과거의 것들이 쌓여서 지금의 내가 있는 거니까, 그래서 그 사람들의 성격이 묻어났을 수도 있고, 그 사람들의 취향이 나에게 묻어났을 수도 있고, 그 사람들도 김사월 씨 덕분에 좋은 취향을 많이 가져갔을 거고요.

김사월 그렇게 생각하면 우리라는 존재는 다 그냥 주고받는 과정인 것 같아요. 그렇게 생각하면 또 모든 만남들이 참 좋아요.

 

Q 앨범 쇼케이스 공연이 있어요. 잠시 소개해주겠어요? 김밥레코드에서 진행한 미니 쇼케이스 이야기도 궁금해요.

김사월 미니 쇼케이스부터 말씀드리면, 김밥레코드는 좋은 음반을 소개도 하고 판매도 하는 곳이잖아요. 제안을 주셔서 너무 좋았어요. 진짜 오랜만에 예매 없이 현장에서 보는, 그리고 아주 가까운 거리에 관객들이 있는 그런 공연을 했어요. 새삼스럽고 신기하고 행복했어요. 그리고 그때 관객분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제가 사실 발매하고 하루 이틀 정도는 마음이 안 좋았거든요. 여러 가지 저의 안 좋은 습관들 때문에 마음이 힘들었는데 거기서 공연하고 공연 때 관객분들이 저를 되게 응원하신다는 걸 느낄 수가 있어서 힘이 났어요. 옛날에는 제가 긴장되는 것에 스스로 압도돼서 그런 걸 못 느꼈어요. 이제는 관객분들이 잘했으면 좋겠다 하면서 절 봐주시는 게 느껴져서 거기서 큰 응원을 받았고요. 끝나고 사인회도 있었는데, 한 사람 한 사람이 예전보다 조금 더 느껴지고 저에게 다가오는 것 같아서 진짜 그 마음을 맛있게 받아먹으려고 노력했어요. 이런 이벤트에서 저는 좋을 수밖에 없어요. 저를 좋아해 주셔서 오신 분들을 만나는 자리잖아요.

올해 ‘김사월 쇼’는 11회차이고요. 이게 바로 ‘눈과 비가 내리는 밤’입니다. 사실 10회로 끝내도 됐죠. 음악과 결혼도 했으니까요. 그런 욕망이 없던 것도 아니었어요. 그런데 삶이 그렇게 멋있게 끝나지 않잖아요. 11회, 12회, 13회 하면서 죽네 사네 하며 계속 해보려고요. 이번 공연은 저희 앨범에 들어가는 저 포함해서 김사월 밴드, 5분 브라스 밴드 세 분, 그리고 코러스 두 분, 그리고 다른 재밌는 어떤 것을 꾸려줄 분들까지 거의 무대에 10명 이상의 인원이 있을 거예요. 굉장히 큰, 이번 앨범 전체를 재현하는 공연이 될 거예요. 저는 이 공연을 보고 김사월 팀은 이렇게 준비돼 있으니까 다른 큰 공연에서도 이대로 부르면 되겠군. 섭외해야지. 이렇게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실질적으로 10명이 넘는 팀을 인디 신에서 부르는 건 어렵다는 걸 알고 있지만요. 어쨌건 굉장히 흔하지 않은 모습이지 않을까 싶고, 혹은 처음이자 마지막 모습일 수도 있어요. 브라스와 함께하는 저의 라이브 공연은 되게 희소할 겁니다. 앨범의 모든 곡들을 쭉 들려드리게 되고요. 4월 19일부터 21일까지 총 3일입니다. 많이 와주셨으면 좋겠습니다.

Q 이제 진짜 봄이에요. 김사월의 남은 계절들은 어떤 것들로 채워질까요? 김사월의 근황과 계획을 알려주세요.

김사월 그렇군요. 오늘도 너무 재미있는 대화였네요. 4집을 만들겠다고 생각한 때부터 되게 바라던 것이 있어요. 4집을 내고 나서 굉장히 바쁘게 활동하는 것. 그걸 너무나 바라면서 오랜 시간 작업을 했어요. 그래서 진짜 감사하게도 요즘은 행복하게 바쁘게 지내고 있어요. 앨범 알리는 인터뷰도 들어오는 거 다 하고 있고, 콘텐츠 및 여러 가지를 열심히 하고 있어요. 그냥 저의 몸만 잘 버티길 바라고 있어요. 이렇게 봄을 보낼 것 같고요. 올해는 4집을 알려드리는 활동을 아주 충분하게 하고 싶고, 그 후에는 좀 잔잔하게 지내고 싶어요. 한동안 너무 아웃풋만 했기 때문에… 이래놓고는 아마 못 쉴 것 같긴 하지만요. (웃음) 저는 그렇게 마음 편하게 못 있는 인간인 것 같아요. 저는 불안이 원동력인 인간이라서… 그리고 좋은 곳에서 불러 주시는 데 다 해야죠. 저의 마음가짐은 4집을 아주 풍성하게 잘 보여드리며 올해를 보내고 싶습니다.

 

<제11회 김사월 쇼 디폴트>

일시 2024년 4월 19일(금)~4월 21일(일)
장소 성수아트홀

 

인터뷰 조혜림

모든 사진 © 김사월

 

김사월 인스타그램

 

Writer

음악 콘텐츠 기획자, 하루키스트, Psychedelic rock. <중경삼림>의 영원한 팬. 읽고 듣고 보고 쓰는 것들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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