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들이 번성하고 있다. 다만 흙이 아닌 인스타그램과 앨범 커버에서, 트렌드를 양분으로. 특히 한남동, 익선동, 연남동처럼 트렌드에 민감한 동네일수록 카페, 음식점, 술집, 옷가게 가리지 않고 메인 소품이 온통 식물이다. 아예 온실 콘셉트의 인테리어거나 ‘식물학’, ‘식물’ 등 식물이 상호명인 곳들도 있다. 이제 사람들은 커피 한 잔을 찍더라도 잎사귀 하나쯤 일부러 나오게 한다. 최근 복원된 창경궁 대온실을 데이트 장소로 찾는가 하면 동물 대신 반려식물을 키우고, 꽃집이 아닌 식물상점에 간다.

사진 출처- 라이프스타일농장 myallee

‘힙스터 식물’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본래 식물은 힙스터들의 코드였다. 하지만 플라밍고와 파인애플, 석고상이 그랬듯 식물도 각종 앨범 커버나 패션 화보에 등장하며 새로운 문화 코드가 됐다. 특히 요즘의 식물 코드는 꽃보다 잎이 선호되고, 자주 네온사인 조명이 곁들여진다는 점에서 기존의 꽃, 자연 애호와는 결이 다르다. 왜 식물이 뜨기 시작했는지, 하나하나 뜯어보려 한다.

 

흐느적거리는 힙스터처럼

사진 출처- 온라인숍 꼬띠, 29cm

요즘 식물, 그러니까 힙스터 식물은 고무나무나 야자수와 같은 활엽수나 드라이 플라워(말린 식물), 행잉 플랜트(매달아 키우는 식물), 데드 플랜트(죽은 듯한 식물) 등이 인기다. 특히 힙스터 식물의 대명사인 몬스테라는 ‘다이소’에서 조화 상품이 인기리에 팔리기도 했다. 이 식물들의 공통점은 모두 ‘꽃보다는 잎’이다. 사람들은 잎과 줄기를 꽃의 배경으로 여기던 예전과 달리, 그 자체로 찾고 즐기게 된 것이다. 그래서 힙스터 식물들은 색깔이 한정적(초록)인 대신 꽃에서 보기 어려운 길쭉함이나 뾰족함, 방울 형태 등 독특한 조형성이 부각된 것이 많다.

힙스터 식물의 또 다른 특징은 ‘흐느적거림’이다. 잎사귀 무게로 늘어진 야자수, 신선 수염처럼 희뿌연 틸란드시아, 바싹 말린 드라이 플라워, 시든 느낌의 데드 플랜트 등. 모두 화분 밖으로 나른하게 몸을 뻗어 흐느적거리는 모양새다. 그런데 기시감이 드는 것은 왜일까. 공연장에서 한 손에 맥주를 들고 흐느적거리는 힙스터들의 ‘쿨한 몸짓’ 말이다. 힙스터들이 미국 래퍼 드레이크의 ‘hotline bling’의 흐느적거리는 안무에 꽂혔듯, 쿨한 실루엣의 식물들에 매료된 것일지도 모른다.

 

꽃은 식물의 성기, 잎사귀는 허벅지

사진 출처- @beny_ju

흐느적거림은 유혹의 몸짓이기도 하다. 힙스터 식물들은 원조 ‘힙스터 식물’ 대마초처럼 퇴폐를 풀풀 풍기기도 한다. 말하자면 늘어뜨린 잎은 풀어헤친 머리칼을, 그림자는 은밀한 손짓을 닮았다. 이슬 맺힌 식물의 싱싱함은 초록빛 혀 같다. 다육식물을 쓰다듬으면 잔 근육을 훑는 느낌이다. 네온사인 조명에 번들거리는 덩굴에선 은밀한 실루엣이 비친다. 식물의 이러한 육감성 때문에, 모의고사 필적확인용 문장으로 화제였던 ‘햇빛이 선명하게 나뭇잎을 핥고 있었다’라는 표현이 가능했을 것이다.

뮤직비디오 캡처.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EXID ‘덜덜덜’, 크러쉬 ‘오아시스’, 밀릭 ‘파라다이스’, 엑소 ‘코코밥’

무엇보다 꽃이 식물의 성기라면, 잎사귀와 줄기는 허벅지나 사타구니다. 올 누드보다 시스루 차림이 더 아찔할 수 있는 것처럼, 꽃이 생략된 식물이 훨씬 매력적이기도 하다. 그래서 많은 뮤직비디오와 앨범 커버, 패션 화보에서 활짝 벌린 잎 사이에 뮤지션들과 배우들을 놓았을 것이다. 식물 자체가 아름다운 오브제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그 속의 주인공이 ‘그것’을 환기하기 때문이다.

 

바로 시들지 않는 잎사귀처럼

결국 식물이 새삼스레 유행하는 것은 기존의 꽃, 자연 코드에 대한 색다른 해석 때문이다. 관습적으로 식물은 결혼식이나 어버이날과 같은 경조사용으로 쓰이거나 웰빙, 행복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반면 지금의 식물 코드는 꽃과 이파리의 구별을 흩뜨리며 쿨함, 퇴폐와 같은 새로운 분위기들을 불러들였다. 물론 지금의 식물 코드도 이미 ‘힙스터 식물’이라는 이름의 클리셰가 되어버렸고, 언젠가 시들 트렌드다. 하지만 여전히 힙스터 식물들이 환기하는 의미들이 신선하다는 점에서, 좀 더 번성할 것이다. 뜯는다고 바로 생기를 잃지 않는 잎사귀처럼.

 

Writer

지리멸렬하게 써 왔고, 쓰고 싶습니다. 특히 지리멸렬한 이미지들에 대해 쓰고 싶습니다. 사진이나 미술 비평처럼 각 잡고 찍어낸 것이 아닌, 그 각이 잘라낸 이미지들에 대해. 어릴 적 앨범에 붙이기 전 오려냈던 현상 필름 자투리, 인스타그램 사진 편집 프레임이 잘라내는 변두리들과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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