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뉴먼트 밸리 2> 공식 트레일러

2017년 5월 30일(한국은 31일), Ustwo사가 게임 <모뉴먼트 밸리(Monument Valley)> 2편을 공개했다. <모뉴먼트 밸리 1>이 소녀 한 사람의 이야기였다면, <모뉴먼트 밸리 2>는 엄마와 딸의 이야기다. 게임 내 서사의 전개가 게임의 구조와 훌륭하게 연결된 점, 더욱 섬세해진 음향 효과, 직접 손으로 게임 내의 기하학적 형태를 그려볼 수 있는 특별한 효과 등은 2편 만의 매력이다. 1편에서 조용히 격한 수난을 견디면서 ‘이다(Ida)’의 곁을 지켜주는 모습으로 팬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토템(Totem)’에 이어, 새 캐릭터 ‘도어템(Doortem)’의 등장도 기대를 받는 중. 하지만 등장하는 주요 캐릭터와 스토리가 1편과 다르게 전개되어 전편을 플레이하지 않았더라도 즐겁게 2편을 즐길 수 있다. 물론 1편의 팬에게는 달라진 점을 찾는 재미도 클 것이다. 1편의 퍼즐 패턴에 익숙한 유저라면 2편의 플레이 타임이 조금은 짧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뒤끝 없이 깔끔하고 정교하게 잘 만들어진 완결적 플레이가 여전히 감탄을 불러일으킨다.

<모뉴먼트 밸리 2>의 플레이 스크린 샷

2014년 3월에 발매된 <모뉴먼트 밸리 1>은 출시와 함께 아이폰과 아이패드 유저들로부터 폭발적인 인기와 지지를 이끌어냈다. 고요하고도 환상적인 게임의 분위기, 사물의 질감을 구현하는 청각 경험, 간단한 화면 터치로 캐릭터나 구조물의 반응과 동작·변형을 이끌어낼 수 있는 인터렉션 디자인은 성별과 나이를 불문하고 많은 유저들의 사랑을 받았다. 기하학적이고 건축적이면서 착시를 이용한 적당한 난이도의 퍼즐도 매력적이지만, 미니멀한 형태와 화려한 색의 대비가 특징적인 그래픽, 3D(정확히는 2.5D. 3D 공간의 일부분을 감추거나 삭제하여 평면처럼 보이게 만드는 기술을 사용해 2차원과 3차원을 넘나드는 듯한 효과를 만들어냈다)로 구현한 깊이 있는 공간 묘사 등은 게임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까지 한눈에 이끌기에 충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출시한 2014년에 까다로운 애플의 디자인 어워드를 수상하기도 한 <모뉴먼트 밸리>가 어떤 시각 이미지의 영향을 받았는지 살펴보자.

 

초현실주의 판화가, 에셔

M. C. 에셔, <벨베데레(Belvedere)>, 1958

M. C. 에셔(M. C. Escher, 1898~1972)는 네덜란드 출신의 판화가다. <모뉴먼트 밸리>의 게임 구조와 이미지에 대해 설명하는 데에 가장 많이 동원되는 이미지가 바로 에셔의 판화들이다. 반복과 순환, 닫힘과 확장이라는 에셔의 주요한 모티프들은 오마주에 가까울 정도로 비슷하게 묘사된다. 게임 1편의 크레딧에 에셔의 이름이 등장하는 이유다.

에셔의 이미지들은 얼핏 보면 자연스럽게 보이지만, 잘 들여다보면 뒤틀리고 부조리한 구조의 결합임을 알 수 있다. 특히 우리의 일상에서 볼 수 있는 풍경들이 일정한 구조 속에서 무한히 확장되거나, 꿈 속에서 본 것처럼 불가능하게 결합된 형태들은 <모뉴먼트 밸리>에 그대로 적용된다. 3차원과 2차원을 넘나드는 착시 효과를 통해 캐릭터들은 새로운 길을 발견하고 찾아 나갈 수 있다. 유저가 입체를 조율하는 과정이 에셔의 그림 속을 거니는 인물들이 된듯한 쾌감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눈속임과 차원의 혼재가 반드시 <모뉴먼트 밸리>에서만 발견되는 것은 아니다. 플레이스테이션3와 PSP 용으로 출시되어 인기를 끌었던 게임 <무한회랑(Echochrome)> 시리즈에서도 이와 비슷한 구조를 볼 수 있어, 아직도 많은 플레이어가 <모뉴먼트 밸리>를 <무한회랑>과 비교한다.

 

타셈 싱의 영화 <더 폴: 오디어스와 환상의 문>

<더 폴> 트레일러

타셈 싱(Tarsem Singh, 1961~)의 2009년 작 <더 폴: 오디어스와 환상의 문(The Fall)>(이하 <더 폴>)은 CF와 뮤직비디오에서 두각을 드러낸 감독의 독특한 영상미가 서사와 결합하면서 완벽한 시너지를 일으킨 작품이다. 촬영 중 부상으로 입원한 스턴트맨과 어린 소녀가 함께 만들어가는 이야기 속의 장면들이 고스란히 영상으로 구현된다. 화려한 원색의 대비와 이국적 건축물, 인간과 거대한 환경 사이의 대조, 말과 현대식 자동차, 설원과 사막이 공존하는 비현실적 시공간 등은 감독의 집념의 결과다. 대부분의 장면은 CG를 최대한 배제하고 현실 공간에서 촬영되었으며, 제작비의 대부분은 감독의 사재를 털어 충당했고, 장소를 섭외하는 데만 17년이 걸린 데다 촬영 기간은 5년여에 이르렀다는 작품. <모뉴먼트 밸리>의 환상적인 색감과 중동·극동 아시아풍의 건축 묘사, 장대한 자연환경과 대비되는 작은 소녀의 모티프는 이 영화와 꼭 닮았다.  

<나니아 연대기>(그중에서도 특히 <사자와 마녀와 옷장>)와 현대의 장난감 가게 사이 어디쯤 <모뉴먼트 밸리>가 있길 바란다는 것이 제작진의 바람이었다. 어리고 순수한 소녀가 자신이 처한 현실과 대조되는 환상적이고 동화적인 자신만의 세계를 상상으로 구현해낸다는 모티프는 장편 동화의 단골 주제다. 서양에서 만들어진 어린이 어드벤처에서 이슬람 문화권의 ‘이국’ 요소도 빼놓을 수 없는 주제. 이런 시점의 옮고 그름을 잠시 떼놓고 보자면, 서로 다른 문화권의 결합은 언제나 환상적인 시각적 결과물을 창조해낸다. 그렇게 만들어진 <모뉴먼트 밸리>의 공간은 단숨에 유저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타셈 싱 영화의 주인공이 소녀이기도 하지만 영화 속에 구현되는 공간 그 자체이듯, <모뉴먼트 밸리> 또한 그렇다.

 

미니멀리즘

도널드 저드의 콘크리트 조각 설치 광경(무제로 총 15점, 1980~1984), ©the Chinati Foundation

미니멀리즘(Minimalism)은 전후 미국에서 출발한 미술 사조다. 존 케이지(John Cage, 1912~1992)와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 1887~1968), 추상표현주의의 영향 속에서 1950년대 말 즈음부터 등장한 미니멀리스트들은 미술에서 환영을 극도로 배제하고 객관성을 지향하고자 했다. 그래서 이들은 최대한 주관을 배제하기 위하여, 인간적인 손길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기하학적 형태를 택하고, 또 이런 형태들을 사용할 때에는 규격화하고 반복하는 기법을 택한다. <모뉴먼트 밸리>에서도 느껴지는 기하학적 형태들의 냉철하고 관념적인 인상은 미니멀리즘 조각과 회화의 특징이다. 자신의 작품을 미술품, 조각이 아니라 사물에 가깝다는 의미로 ‘특수한 물체(Specific Objects)’라고까지 했던 이론가이자 작가 도널드 저드(Donald Judd, 1928~1994)는 미니멀리즘의 지향이 3차원에서 가장 잘 구현될 수 있다고 믿었고, 결과적으로 조각에 골몰했던 미니멀의 대표작가다. 모듈화된 형태와 반복적 배치, 인간의 흔적이 느껴지지 않는 매끈한 기성품 같은 표면 등 미니멀리즘의 특징들은 그러나, 후기로 갈수록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정신성’이라 할 만한 감각들을 느끼게 하기도 한다. 특히 미니멀리즘의 문법이 광활한 자연 속에 펼쳐진 월터 드 마리아(Walter de Maria, 1935~2013)의 작품, 저드가 마파(Marfa, 미국 텍사스 주) 사막에 조각을 설치한 광경 등을 보면, <모뉴먼트 밸리>에서 느껴지는 일종의 숭고함을 비롯한 다양한 감정들을 강렬하게 경험할 수 있다.

여담으로 <모뉴먼트 밸리>에서 스테이지를 클리어하면 캐릭터들이 모자를 벗는 작은 재단은 프랭크 스텔라(Frank Stella, 1936~)의 1950년대 말 ‘블랙 페인팅’이라 불리는 회화 시리즈와 무척 비슷하게 생겼다.

프랭크 스텔라, <질(Jill)>, 1959, 캔버스에 에나멜 ©Albright Knox Art Gall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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