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부터 연재를 시작한 웹툰 <술꾼도시처녀들>(이하 <술도녀>)이 2017년 3월 마지막 이야기를 전했다. 35세 동갑내기 세 여자가 36세, 37세가 되는 동안 온갖 음주 에피소드들을 쏟아냈다. ‘술’ 좀 좋아하는 이라면 빠짐없이 공감할 이야기로 연재 당일 조회 수 평균 50만을 기록한 <술도녀>는 그 인기에 힘입어 두 권의 단행본으로 출간되기도 했다. 사실 옛날부터 술에 관한 예찬은 모든 영역을 막론하여 존재해왔다지만, <술도녀>가 더욱 특별한 이유가 있다. 그건 술꾼들에게 술을 왜 마시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과도 비슷하다. 그냥, 좋으니까! 술보다 술자리가 좋아서 마신다는 이유도 사치인 <술도녀>의 주인공들은 그 특유의 솔직 당당함으로 여성뿐 아니라 30대 직장인, 이 시대 술꾼 모두의 애환을 달랜다.

<술꾼도시처녀들> 예고편 일부. 참고로 웹툰 소개문에는 이런 문구가 있다. “경고: 지나친 음주는 건강을 해칠 수 있습니다”

106화 ‘해결사 리우 5’ 편. 독자들에게 가장 사랑받은 시리즈다

104화 ‘솔로의 술’ 편. 술도녀는 세 명의 ‘여성’ 주인공을 통해 여러 편견을 꼬집기도 한다

“어째서 우리 이야기를 다룬 만화는 없는가”라는 하소연으로 시작한 이 만화는 결국 웹툰 작가 미깡의 이야기인 셈이다. 많은 독자가 그러한 작가의 실체를 궁금해하지만, 정작 미깡은 얼굴을 직접 드러내지 않는다. 베일(?)에 싸인 미깡 작가에 관해 한 가지 확실한 건, 에피소드마다 ‘깨알’ 공감 대사를 넣고, 맛깔난 안주까지 추천해주기 위해 정성스레 <술도녀>를 그려왔다는 것이다. 만화에서 종종 볼 수 있는 문구, "Work Later, Drink Now”가 무색해질지언정.

그런 미깡 작가가 온전히 자신의 취향을 담은 영상들을 보내왔다. 예상과 달리 ‘술’에 관련된 내용은 아니지만, 아닌들 또 어떠한가. 이유 없이 보더라도 좋은 음악과 화면이 준비되어 있고, 여기에 술 한잔 곁들이지 말라는 법은 없다.

 

Mikang Says,

“유튜브에 열 번 접속한다면 아홉 번은 술 마실 때 ‘떼창’ 배경음악을 찾기 위해서고, 나머지 한 번은 콘티 작업이 잘 풀리지 않을 때다. 두서없이 가동하느라 뜨거워진 머리를 식히고 싶을 땐 아무 생각 없이 볼 수 있는, 웃긴 개그 영상이나 귀여운 동물 영상을 본다. 반대로 머리를 탈수기처럼 탈탈 쥐어짜도 아이디어가 나오지 않아 자극이 필요할 땐 걸출한 아티스트들의 빛나는 작품들을 입 벌리고 앉아 구경한다. 의도한 긴장, 의도한 이완을 얻을 때도 있지만, 머리를 식히려고 튼 잔잔한 영상에서 예상 밖의 자극을 받기도 하고, 나를 긴장시키고 자극하는 영상에서 불현듯 평온함을 느끼기도 한다. 그런 의외성이 재미있어서 요즘은 처음부터 뭘 찾아보겠다는 생각을 비우고 이리저리 발길 닿는 대로 쏘다니고 있다.”

1. 미국드라마 <덱스터> 오프닝 시퀀스

<덱스터(Dexter)>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드라마 시리즈 중 하나다. 여러 차례 정주행했고 지금도 실내 자전거를 타거나 단순한 작업을 할 때면 아무 편이나 열어서 보고 있으므로 ‘수백 번 봤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이 정도면 매번 똑같은 오프닝이 지겨울 만도 한데(많은 드라마가 시즌별로 오프닝을 바꾸지만 <덱스터>는 8년 내내 이거 하나만 썼다!) 오프닝을 건너뛴 적은 거의 없다. 커피를 내리고 식사를 하고 옷을 입는 평범한 아침 풍경에 여덟 가지 살인 방법을 오버랩한 탁월한 장면들은 수백 번을 봐도 질리지 않고 짜릿하다.

 

2. 오키나와 츄라우미 수족관 수조 전경
(BGM- Barcelona ‘Please Don’t Go’)

오키나와 츄라우미 수족관 2층에 있는 수조 ‘구로시오의 바다’ 모습이다. 기네스북에 등재된 세계 최대 규모의 이 수조는 아름다운 바닷속 풍경을 환상적으로 재현한다. 수많은 종류의 물고기들 사이로 거대한 고래상어, 쥐가오리가 유유히 헤엄치는 광경은 말 그대로 장관이다. 이 영상을 수도 없이 돌려볼 때가 있었다. 수족관의 스타인 고래상어와 쥐가오리에 가려져 아무도 눈길을 주지 않는 모래 바닥 어딘가에, 내가 꼭 찾아내 말해야 할 무언가가 숨어 있는 것 같아서였다. 그게 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영상을 보고 있으면 설명할 수 없는 슬픔에 여전히 사로잡히게 될 뿐이다.

 

3. 팻 매스니 & 브래드 멜다우 ‘The Sound of Water’ 라이브

팻 메스니(Pat Metheny)의 음악을 좋아한다. 그가 무대 위에서 연주하는 모습을 보는 건 더욱 좋다. 관객 앞에서 소위 ‘끼 부리는’ 일 따위 없이, 시선을 기타에 고정하고 연주에만 집중하는 우직한 모습은 언제 봐도 좋다. 자나 깨나 음악밖에 모르는 이 성실한 기타리스트는 자신에게 맞는 악기를 새로 개발하는 게 취미로, 넥(neck)이 3개 달리고 현이 무려 42현인 피카소 기타를 직접 제작했다. 이 한 대가 ‘열일’하며 풍성한 화음을 만들어 낸다. 신중하면서도 화려한 손놀림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그는 다양한 장르의 수많은 아티스트들과 부지런히 협연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케미’가 정말 좋은 브래드 멜다우(Brad Mehldau)와의 협연 영상을 골라봤다.

 

4. 이민휘 ‘침묵의 빛’ MV

술 먹다 전주가 들리면 벌떡 일어나 헤드뱅잉과 막춤을 추게 했던 무키무키만만수의 만수가 솔로 앨범을 내놓았다. 밴드 전작과는 온도도 색채도 몹시 다르다. 제멋대로 폭발하는 에너지도 좋았지만, 가다듬고 눌러 담은 이 힘은 더욱 좋다. <빌린 입>의 마지막 트랙인 ‘침묵의 빛’은 아름답고 묵직한 첼로-피아노 이중주와 거친 영상이 절묘하게 잘 어울린다. 일출 장면이 으레 장엄하거나 희망적이라면, 이 영상 속의 일출은 한없이 쓸쓸하고 아득해서 매혹적이다.

 

미깡은?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했고 10년간 직장생활을 했다. 부지런히 술을 마셨다. 30대 초반에 독립해서 프리랜서 작가로 일하던 중, 만화로 덜컥 데뷔했다. 부지런히 마신 보람이 있었다고 해야 할까. 2014년부터 2017년까지 Daum 웹툰에 <술꾼도시처녀들>을 연재했고, 책으로 묶어냈다. 현재 차기작을 준비하며 일상에서 일어나는 (주로 먹고 마시는) 이야기를 트위터에 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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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미깡 <술꾼도시처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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