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회 한국대중음악상 후보가 지난 금요일 발표되었다. 올해는 20년 만에 선정위원장이 바뀌고 프리즘(PRIZM)을 통한 실시간 발표를 예고하는 등 또 다른 변화를 선보였다. 지난 몇 년 동안 코로나19 시기도 거치며 시상식의 형태와 분위기는 조금씩 달랐지만, 지명도나 시장 논리와 상관없이 오롯이 그 해 좋은 음악과 진정한 음악인을 소개하는 시상식의 취지와 의지는 긴 시간 동안 변함없이 이어져 왔다. 시상식의 이름인 '한국 대중음악'은 상대적인 대중성과 인기를 의식한 용어가 아닌, 그 음악이 유명하든 하지 않든 누구에게나 닿을 수 있다는 절대적인 보편성과 접근성을 염두에 둔 표현이다.
인디포스트는 2018년부터 꾸준히 한국대중음악상 후보 밖 올해의 음악을 소개하고 있다. 매해 언급하듯 중요한 사실은 누가, 어떤 음악이 후보에 오르고, 오르지 못했냐가 아니라 이토록 좋은 작품과 멋진 음악인들이 있었음을 다시 기억하고 꼽아보는 일이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외부 필자들이 함께 참여한 인디포스트의 선정 리스트를 이틀에 걸쳐 공개한다. 오늘은 포크, 블랙 뮤직(랩&힙합, 알앤비&소울, 재즈), 글로벌 컨템퍼러리 부문을 다룬다.
* 음반과 노래 부문을 가리지 않고 장르별 한 팀 혹은 두 팀씩 선정했습니다.
** 노래와 선정 리스트는 인디포스트 각 필자 개인의 의견이며, 한국대중음악상 선정과정 및 결과와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포크 부문
전호권 <야즈드의 불빛>
어쿠스틱 기타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고즈넉한 서정성이 포크의 정석에 가깝다. 조곤조곤 읊조림에 가까운 보컬은 정직하다고 할 만큼 꾸밈이 없고 담백하다. 전호권이 가사를 꼭꼭 씹듯 짚어가는 동안, 피아노를 비롯한 여러 악기가 더해져도 여전히 곳곳에 팽배한 목가적인 분위기가 음악을 소박하게 만든다. 전호권은 <야즈드의 불빛>을 통해 여백이 풍요로움을 안겨준다는 것을 경험하게 한다. ‘야즈드’라는 지명은 이국적이지만, ‘불빛’은 ‘맑은 시’ 속 노란 유채와 노란 꽃길로 표현됨으로써 색채를 품은 채 정겨움을 더한다.
‘이상한 세상에서 아름다운 단어로 노래를 만든다’라 하던 전호권의 기조를 생각하면 그에게 현실이란, 이상하고 그가 꿈꾸는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먼 개념일 것이다. 이를 반영하듯 음악에는 고즈넉한 쓸쓸함도 감돈다. 하지만 말간 순수함과 자연 그리고 사랑에 맞닿아 있는 그의 노래에 가만히 귀 기울여보면 삶과 언어의 아름다움을 엿볼 수 있다. 따스한 노란 빛으로 스며드는 노래를 통해 우리의 내일은 한결 다정해지지 않을까 짐작해본다. | 이아림
전호권 인스타그램
민수홍 <사소함>
2023년은 좋은 포크 음반이 유난히 많이 쏟아진 해다. 이를 반영이라도 하듯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포크 음반 후보에는 다른 장르 부문보다 더 많은 6장의 후보가 등장했다. 그렇다고 해서 그걸로 충분한 건 아니다. 지난해 만일 민수홍의 솔로 데뷔작을 놓쳤다면 꼭 한 번 들어 보길 권한다. 오롯이 기타 한 대와 목소리를 중심으로 만든 음악이지만 평범한 포크 음악이라기에는 색다른 감각과 분위기가 감지된다. 처음부터 포크로 음악 활동을 시작하지 않고, 록 기타리스트와 밴드 활동 시절을 거쳤으며, 1960~70년대 프로그레시브 록과 소프트 록을 좋아했다는 민수홍의 경력과 취향을 알고 나면 비로소 그의 음악이 조금 더 잘 이해된다.
민수홍의 1집 <사소함>은 억지로 티 내지 않는 음악이다. 기타와 목소리 어느 쪽이든 그가 들려주는 표현의 스펙트럼이 워낙 넓고 임팩트도 강렬함에도 이를 과도하게 앞세우지 않는다. 과장하거나 덧대지 않는다. 불필요한 소리와 효과, 세션을 모두 덜어낸 채, 반복하는 기타 리프와 레이어를 더하는 목소리의 결만으로, 단출하면서도 사이키델릭한, 뾰족하고 몰입도 높은 순간을 완성한다. 마치 민속음악처럼 들리기도 하는 보컬의 음 처리나 오버 더빙 사운드는 신선한 감상을 배가한다. “넌 숨을 쉬기 위해, 푸르게 물들기 위해, 그 어디도 헤맬 필요 없니”(‘광합성’) 해석의 여지와 감상의 여운을 동시에 남기는 가사 역시 이 음악을 곱씹게 하는 힘이다. | 정병욱
민수홍 인스타그램
랩&힙합 부문
이테 <소리선>
‘이테’(ITÉ)가 지난해 ‘아이테’(AITÉ)에서 이테로 활동명을 변경하며 내놓은 정규앨범 <소리선>은, 그가 자신의 새 출발을 위해 지난 과오라고 할 수 있는 도박 중독의 시간을 음악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앨범 제목이자 수록곡 가사 곳곳에 등장하는 ‘소리선’은 이테가 창조한 합성어다. ‘선’(before)과 ‘후’(after)를 가늠하는 기준이자 일상의 규범을 안과 밖으로 구분 짓는 ‘선’(line)이기도, 절대적인 판단의 이정표인 ‘선’(good)이기도 하다. 그렇게 ‘소리’와 ‘선’을 연결해 그만의 메타포를 활용함으로써 이테의 가사는 단순한 솔직함 너머 깊이를 획득한다.
타이틀곡 ‘다 가운데 (Feat. 류지호 of 오월오일)’ 속 화려한 필인의 드럼 루프가 직전 트랙 말미 아주 잠깐의 침묵을 깨고 등장할 때, 무반주 드럼 비트 위 전체 가사를 관통하는 서두 한 문장을 생략과 도치를 곁들여 내던질 때(“가끔 그럴 때 있어. 나 어디로 가야할 지보다 어디로 와있는 지를”) 청자는 자연스레 그의 뒷이야기에 주목하게 된다. 이테의 자기 고백적 서사, 이를 누구나 이해할 법한 욕망과 후회로 뒤바꾸는 깊이 있는 은유와 수사는 가사와 음악만이 아니라 앨범 커버의 인상적인 아트워크에도 드러나 있다. 이 음반을 들으며 모처럼, 그 어떤 위계 없이 음악과 문학이 엮일 수 있음을 다시 떠올리게 된다. | 정병욱
허성현 <Voice tool tip.txt>
가치관이나 추억 등을 소재로 삼은 허성현의 첫 정규앨범 <926>(2022)는 자못 비장하고 진지해 이 래퍼가 앞으로 어떤 이야기를 써갈지 그려보게 했다. 그리고 지난해 허성현이 발매한 EP <Voice tool tip.txt>는 전작을 통해 특정한 서사를 상상했던 이의 예상을 보기 좋게 무너뜨렸다. 이 영리하고 유능한 래퍼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이야기뿐 아니라 낼 수 있는 소리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다는 걸 새 EP로 보여줬다.
<Voice tool tip.txt>라는 제목을 번역하면 ‘목소리 사용법’쯤 될 텐데, 허성현은 그렇게 명명한 앨범으로 제 목소리를 하나의 악기로 운용해 내는 데 성공한다. 재생하자마자 본능적으로 쾌감을 안기는 첫 트랙 ‘2ttam’을 시작으로 마지막 곡에 이르기까지, 그는 목소리를 곡에 맞춰 절묘하게 비틀고 다른 세기로 박아 넣는다. 한편 피처링으로 바비, 스트릿 베이비, 루피 등 목소리가 곧 인장인 래퍼들이 적절하게 배치됐는데, 이로써 허성현이 잘하는 래퍼인 동시에 똑똑하고 감 좋은 프로듀서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예상치 못할 방향으로 뻗어갈 한 아티스트의 미래를 기대하게 하는 앨범. | 김유영
허성현 인스타그램
알앤비&소울 부문
밀릭 <~>
2017년 밀릭이 발매한 첫 앨범 <VIDA>는 팬시차일드가 피처링한 타이틀곡 ‘PARADISE’가 특히 사랑받으며 오래 회자되었다. 화려하고 다채로웠던 그 앨범으로부터 6년, 밀릭이 새 EP <~>을 들고 왔다.
<~>는 어떻게 읽어야 할지 가늠하기 어려운 이름이지만, 흘러가고 깊어지는 물 같은 앨범에 붙이기에 이보다 알맞은 문자는 없을 것이다. 실제로 앨범 전반에는 ‘물’의 모티프가 진하게 드리운다. 비단 ‘SEA ANEMONE(말미잘)’ ‘CLIONE(바다 민달팽이)’ 등의 곡명에서 비롯하는 것만은 아니다. 밀릭은 노래 다섯 곡으로 듣는 이를 빗방울이 떨어지는 웅덩이부터 제 손바닥조차 보이지 않을 만큼 어두컴컴한 심해까지 데려간다. 그는 앨범 속 모든 음과 노랫말을 널리 확장하기보다는 하나의 중심을 간직한 채 더 깊이 파고드는 방식으로 직조한 듯하다. 그 방식이 섬세하고 정교하게 이뤄진 까닭에 청자는 지독한 고독과 아득함, 황홀과 공포, 평온과 슬픔처럼 물과 연결되는 감상을 느낄 수 있다. 깊은 물속에 머물다가 수면 가까이 올라오면 물 안에서도 빛이 보인다. 이 앨범은 끝내 빛이 가까워지는 순간의 희망마저 품고 있다. <~>가 아름답고야 마는 이유다. | 김유영
밀릭 인스타그램
Jclef <O, Pruned!>
“I feel the fear is over.” Jclef(제이클레프)가 정규 데뷔작 <flaw, flaw>(2018)으로 주목받은 후 5년 만에 내놓은 EP 첫 트랙이자 EP와 같은 제목의 노래인 ‘o, pruned’의 첫 줄 가사다. ‘pruned’는 가지치기 된 상태를 뜻하는 말. 그는 단어의 의미처럼 “가지가 잘려 나가듯 단절되어 닿을 수 없는 친구를 향해” 부른 노래라고 밝힌 적 있다. EP의 또 다른 중심 트랙 ‘jonny’s sofa’는 “살아가기 어려워하는 친구”에게 메시지를 전한다. “나는 너의 어떤 모습이든 궁금하고, 네 옆에서 항상 함께할 준비가 되어있다고.”. 가사 면면에 깃든 관계 중심적인 태도와 따스한 온도는, 기타의 어쿠스틱 사운드를 중요하게 차용한 EP 전반부의 사운드와 제이클레프의 목소리를 통해서도 느껴진다. 긴 기다림을 거쳤다고 전해지는 이 EP 자체가 자신의 소중한 친구 gimjonny와 함께 만든 것이라 소개글에 쓰여 있기도 하다.
다만 단순한 위로가 전부는 아니다. 불안을 품은 듯 미세하게 떨리는 목소리와 시간을 거스른 관계를 대변하는 듯한 지글거리는 로 파이 사운드, 가끔씩솔직한 감정을 쏟아내는 보컬 연출과 오묘한 불협의 효과들이 깔끔한 몇 마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뭉클한 관계와 순간들을 고스란히 대변한다. 신선한 가사 표현과 메시지, 그에 탁월하게 맞아떨어지는 멜로디와 플로우의 싱 랩이 자기 정체성을 완성했던 제이클레프는, 이 EP에서 조금 다른 스펙트럼의 음악성과 R&B 미학을 선보인다. 그게 제이클레프 자신의 일부이든, 친구와 함께해 완성한 것이든 상관없다. “It’s you everywhere on my planet.” ‘o, pruned’의 마지막 줄 가사다. | 정병욱
제이클레프 인스타그램
재즈연주 부문
우륵과 풍각쟁이들 <우륵과 풍각쟁이들>
‘우륵’과 ‘풍각쟁이’ 사이에는 1,000년가량의 시차가 존재한다. 우륵은 가야금을 전했다고 여겨지는 1,500여 년 전의 음악가, 풍각쟁이는 조선 후기에 민간에서 공연 활동을 했던 일종의 유랑 연예인이다. 두 단어를 조합한 이들의 이름으로부터 전통이나 국악의 향취를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겠지만 그게 다가 아니다. 기타, 베이스, 드럼 등의 밴드 악기, 색소폰 등의 관악기를 가지고 온전한 집단 즉흥 연주를 펼치는 이들의 음악은 막상 프리 재즈, 프리 뮤직을 중요하게 차용하고 있다. 흥미로운 건 순간의 퍼포먼스가 그리는 구상과 그것이 전하는 순간적인 뉘앙스다.
국악과 재즈는 오랜 시간 협력 관계였다. 국악이 전통 소재와 요소를 동시대 영미 음악에 녹여내는 데 있어 재즈의 화성이나 편성을 빌리기도 했고, 반대로 재즈가 새로운 시장이나 길을 모색함에 있어 국악의 장단과 음계, 국악기를 활용하기도 했다. 우륵과 풍각쟁이들은 이 같은 타협이나 교류를 택하지 않았다. 이들은 국악과 재즈 그 사이가 아닌 분명 재즈다. 그런데 재즈가 지닌 여러 특징 가운데 자유로운 즉흥 연주가 지닌 면모를 최대한 활용해 국악의 뉘앙스, 그것도 그 서사를 쉽사리 예측하기 힘든 일종의 무속음악과 같은 강렬한 에너지와 풍경을 완성했다. | 정병욱
우륵과 풍각쟁이들 인스타그램
Teho <Teho3>, <Teho4>
2020년 ‘테호’라는 이름으로 첫 앨범 <Teho1>을 발매했을 때 이들이 내놓은 목표는 “100회의 공연을 통해 10장의 음반을 발표하는 것”이었다. 기타의 이태훈, 드럼의 민상용으로 출발한 그룹은 현재까지 색소폰의 김성완, 피아노의 진수영을 포함하여 보다 다양한 즉흥의 순간을 만들어내고 있다. “완벽한 팀 사운드로 완결된 곡을 연주하는 것은 테호의 목표가 아니”라는 김성완의 말을 청자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반은 맞고 반은 달리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이들은 과정으로써의 음악을 통해 유기적인 호흡의 연주를 이미 만들어내고 있고, 육박하는 에너지는 익숙한 호흡을 끊임없이 불균질하게 만드는 각자 소리의 질감에서 비롯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과정의 음악에서 결과는 그저 따라온다.
테호의 음악이 확장성과 완결성을 모두 가졌다면 이는 여태껏 이어진 협연의 시간이 만들어 낸 산물이자 앞으로 이들의 음악이 예비하고 있는 즉흥과의 조우 덕분일 것이다. 이 우연이 테호라는 필연으로 발현되는 일은 지금까지 이들이 해 온 일이고, 가장 잘 하는 일이다. | 조원용
재즈보컬 부문
Soyoung Park <Behind the Clouds>
<Behind The Clouds>는 미국에서 주로 활동 중인 박소영의 정규 데뷔작이다. 나는 이 앨범이 시상식 최우수 재즈 보컬 부문 후보에 들지 못한 게 아쉽지 않다. 당연히 후보에 올라 결국 최종 수상작이 되지 못했다는 사실이 아쉽다. 좋은 재즈 보컬을 기대함에 있어 우리는 때때로 표면적인 ‘보컬’에 주목하느라 ‘재즈’를 놓칠 때가 많다. 박소영은 피아노 연주와 작곡을 모두 훌륭하게 소화하는 보컬이다. 순간적으로 강렬한 인상을 주기 힘든 미성을 지녔고, 수록곡 전반의 분위기가 포근하고 산뜻하지만, 막상 진지하게 들어보면 곡의 완성도와 퍼포먼스의 정확성을 모두 갖췄다.
‘Skylark’를 제외하고 전곡 직접 작곡한 송라이팅의 경우, 굳이 다른 장르를 빌리거나 난해하게 길을 잃지 않고도 흥미로운 밥 라인이 이어진다. 영어 가사를 쓴 재즈 보컬로서 조금도 이질감 없이 들리는 유려한 발음과 스윙 감각, 관습적으로 소화하지 않는 스캣 싱잉 모두 그의 장점이다. 국내에 제대로 소개되거나 시도된 적 없는 ‘보컬리즈’(vocalise) 스타일을 재치있고 어렵지 않게 구사한 곡 'Baker's Mood'이 특별히 인상적이기도 하다. 가요나 블루스가 아닌, 팝이나 스탠다드가 아닌 자연스럽고도 뛰어난 2023년의 재즈 보컬 음반을 물을 때 가장 권하고 싶은 음반 중 하나다. | 정병욱
박소영 인스타그램
June Yun <Enlightenment - solid waves>
June Yun(준 윤)의 이번 데뷔 앨범이 후보에 포함되지 못한 점은 아쉬운 일이다. 그의 앨범은 짜임새 있는 구성을 통해 한곳에 머무르지 않고 순환하는 빛과 어둠에 대해 얘기한다. 여기에 포함된 자기서사로서의 음악은 단상에 그치는 것이 아닌 연속된 음악으로 발현된다.
비드 얌닉의 비브라폰과 샤이 마에스트로의 피아노가 포개지는 ‘Wherever Dark Takes You There Shall Be Light’는 준 윤의 보컬과 브래드 강의 기타가 함께 하면서 빛과 어둠의 교차를 소리의 낙차로 구현한다. 스캣으로 이뤄진 ‘Enlightenment’도 귀를 기울이게 된다. ‘Light In Your Eyes’에서는 김종국의 드럼 솔로로 시작해 준 윤의 보컬과 니콜라 카미니티의 색소폰이 함께 등장한다. 이 배후에는 얌닉의 비브라폰이 있고, 이들의 솔로가 번갈아 나오면서 공간감과 다이내믹을 함께 만들어낸다. 이처럼 섬세한 상호작용으로 이뤄진 앨범의 마지막 곡은 ‘Mirror’인데, 피아노 솔로가 준 윤의 목소리로 이어지면서 엄마를 바라보는 것이 거울처럼 나를 비추는 일이 됨을 노래한다. 언젠가는 우리 곁을 떠날 빛을 향해 노래하는 준 윤이 앞으로 들려줄 음악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다. | 조원용
준 윤 인스타그램
글로벌 컨템퍼러리 부문
구이임 <마주하다>
전통을 소재로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내고자 하는 젊은 음악가의 도전은 지금도 계속 이어진다. 구이임은 구민지(정가), 이채현(피아노), 임정완(가야금)으로 구성된 3인조 그룹이다. 구성원 전원이 국악을 전공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룹의 음악 지향이 특정한 단어의 의미나 이미지에 한정되지는 않도록 구성원의 성을 따서 팀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이름에 담은 고민처럼 이들의 첫 앨범 <마주하다>에는 국악 크로스오버 작품들의 전형성에 벗어나기 위해 노력한 모습들이 곳곳에 담겨 있다.
구이임은 대중음악의 특정한 장르를 특별히 택하지 않았다. 과거 영역과 현재의 영역을 구태여 나누지도 않았다. 오히려 곡을 구체적으로 완성해갈 주제와 아이디어를 바탕에 둔 채 규모와 편성, 사운드를 억지로 키우지 않고 세 사람의 콤비네이션만으로 흥미로운 결과를 완성했다. ‘마주하다’라는 추상적인 단일 주제를 관통하면서도, 각각의 수록곡 모두 몰입도 높은 나름의 질문과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었다는 건 분명 이들이 첫 앨범만에 이룬 성과다. 창작국악으로도, 무대극으로도, 가볍게 즐길 소품집이나 진지한 콘셉트 앨범으로도 모두 괜찮은 앨범이다. | 정병욱
구이임 인스타그램
살롱 드 오수경 <어느 정신이상자의 고백>
작곡가이자 연주자 오수경의 1집 <Salon de Tango>(2013)는 말 그대로 탱고 앨범, 2집 <파리의 숨결>(2015)은 그가 파리 유학 시절 느낀 감성과 주변 풍경의 뉘앙스를 바탕에 둔 소품집과 같은 앨범이었다. 3집 <데미안>(2019) 이후 다시 2년 만에 내놓은 <어느 정신이상자의 고백>은 바로크 시기에서 출발해(‘세기말 바로크’), 개화기(‘백치 아다다’)와 동시대(‘지옥철’)를 거쳐 다시 과거(‘반추’)와 현재(‘마침내, 삭발’)를 오간다. 이 같은 시대를 관통하는 여정은 앞서 오수경의 유학 및 해외 생활에서 체득한 글로벌뮤직 어법과 맞물려 그야말로 이 부문의 이름 ‘글로벌 컨템퍼러리’를 고스란히 연상하게 한다.
누구나 예상할 수 있듯 이 앨범의 주인공 ‘어느 정신이상자’는 오수경도, 오수경과 함께한 4인조 살롱 드 오수경도 아닌 바로 우리다. 이전까지 주로 관찰자의 시선에 머물렀던 그의 주제 의식은 이번 앨범을 통해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으로 보인다. 가사 없이 각 수록곡 제목의 이미지를 고스란히 꽤 구체적이고 상세히 재현하는 오수경의 작곡은 지난 짧지 않은 경력을 거쳐 더욱 개성 짙게 여물었고, 그의 음표 빽빽한 악곡과 스펙터클을 소화하는 동료들의 연주 역시 화려하고 깔끔하기만 하다. 국내에서 글로벌 뮤직에 대한 관심이 유독 소원한 가운데, 분명한 스타일 외에 하고 싶은 이야기도 함께 잔뜩 품은 음악가의 존재는 소중할 수밖에 없다. | 정병욱
오수경 인스타그램
<월간 재즈피플> 필자 &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재즈가 가진 즉흥의 가능성과 경계 위 음악 세계를 부연하고 있습니다. 종종 영화를 만들고 자주 사진을 찍습니다. 재즈를 포함한 여러 글을 씁니다.
조원용 인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