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에 열릴 예정이었던 제59회 베니스 비엔날레는 코로나 팬데믹의 영향으로 1년 더 미뤄져 2022년에 열렸다. 해당 비엔날레의 총감독은 이탈리아 출신의 세실리아 알레마니(Cecilia Alemani)가 맡았다. 

비엔날레에서 가장 두드러졌던 점은 여성작가들의 참여비율이다. 213명의 참여 작가 중 여성 작가 혹은 젠더 비순응 작가가 약 90% 정도에 달했다. 그뿐만 아니라 유색 인종 작가들의 활약도 눈에 띄었는데, 본 전시에서 최고 작가상을 받은 시몬 리(Simmone Leigh), 국가관 부문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은 영국관 참여 작가 소냐 보이스(Sonia Boyce) 두 명 모두 흑인 여성이다. 시몬 리는 흑인 여성의 억압받는 삶을 대형 청동 조각으로 표현했고, 소냐 보이스는 영국 음악사에서 소외되어왔던 흑인 여성 뮤지션들에 관해 영상과 결합한 설치 작업으로 표현했다.

이런 설명으로만 보면 이번 비엔날레가 여성과 인종에 관한 것들로 가득 차 있을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어쩌면 관객들에게 사회적 메시지를 주입하는 장이 아닐까 하고 말이다. 하지만 전시장에는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교훈적인 작품이기 이전에 우선 미적인 즐거움을 주는 작품들이 많았다. 그러한 미적 풍요로움 속에서 비엔날레의 또 다른 중요한 주제의식이 보였고 그 주제는 초현실주의 작품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이미지 출처 ‘Practice for Everyday Life’

알레마니 총감독은 이번 베니스 비엔날레의 제목을 ‘꿈의 우유’(The Milk of Dreams)로 정했다. 꿈의 우유는 초현실주의 여성 화가 레오노라 캐링턴(Leonora Carrington)의 동화책 제목에서 따온 것이다. 알레마니의 설명에 따르면 이 책에 나오는 세계는 변화하고 변형되고, 무언가 혹은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는 자유롭고 가능성으로 가득 찬 세상이다. 캐링턴의 책에 나오는 세상과 같이 이번 비엔날레 또한 모든 것이 변형되어 있는 초현실주의적 작품들이 많았다. 이번 비엔날레에서는 세 가지 주제에 초점을 맞췄는데, 신체의 표현과 변형, 개인과 기술 간의 관계, 신체와 지구의 연결이다. 알레마니는 “기술의 압력, 사회적 긴장의 고조, 전염병의 발발, 다가오는 환경 재앙의 위협은 우리에게 영원히 살 수 없는 몸으로서 우리는 무적도 자급자족도 아니고, 오히려 우리를 서로에게 혹은 다른 종과, 그리고 지구에 연결하는 상호의존성의 공생적 거미줄의 일부라는 것을 매일매일 상기시킨다.”라고 말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인간 사이에 직접적인 소통은 줄어들고 그 사이를 기술이 채웠다. 또한 기술의 발전으로 인간을 대체할 수 있는 많은 것들이 생겨났고 인간을 정의하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의문도 생겨났다. 그리고 팬데믹을 통해 인간이 다른 생명체들과 지구에 대해 어떤 책임감을 가져야 하는지 또한 생각해볼 기회가 생겼다. 이번 비엔날레에서는 인간 중심적인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다른 생명체와 함께 공생할 수 있는 방법, 신체의 변형을 표현한 작품을 통해 지구의 새로운 가능성을 탐구한다. 그중 흥미롭게 보았던 세 가지 작업을 소개한다.

 

1. Songs from the Compost: mutating bodies, imploding stars, Eglė Budvytytė – 비인간과 인간의 공생

이미지 출처 ‘Eglė Budvytytė’ 홈페이지

메인 전시관 중 하나인 아르세날레(Arsenale)의 초반부에 있는 이 작품은 30분가량의 비디오 작품이다. 제목을 직역하자면, ‘퇴비에서 온 노래: 변형된 신체, 폭발하는 별들’이다. 리투아니아 출신의 작가 에글례 버드비티톄(Eglė Budvytytė)의 작품이며 리투아니아의 숲과 모래사막에서 촬영되었다.

영상에는 리투아니아의 숲과 해변에서 헤매는 청년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인간의 외형을 하고 있지만 어쩐지 인간 같지 않다. 몸을 뒤집어 사족 보행을 하기도 하고 무릎으로 걷기도 한다. 또한 숲에서 걷기를 멈춘 장면에서는 모두가 뒤엉켜 엎어졌다가 다시 뒤집히는 행동을 반복한다. 누워있는 한 사람의 신체에는 곰팡이가 피어나기도 한다. 남성 신체로 보이는 한 사람은 천으로 가슴 부위를 가리고 있는데 이 사람의 하반신에는 탯줄로 연결된 아이가 보인다.

기이한 분위기의 영상에 몰입감을 더하는 것은 사운드다. 배경에는 음악과 함께 반복적으로 들리는 가사가 있다. 내레이션처럼 들리는 이 가사는 이 작품의 작가 에글례 버드비티톄(Eglė Budvytytė)가 직접 작성하고 녹음한 것이다. 내용은 생물학자 린 마굴리스(Lynn Margulis)의 내부공생이론과, 잡종성과 공생의 비유를 통해 인간 중심적 계급 체계를 분열시킨 사변 소설 작가 옥타비아 버틀러(Octavia E. Butler)에게서 따온 내용들이다.

이 작품은 부패와 붕괴에 대해 탐구하면서 인간 중심적인 관점에서 벗어나 다양한 종간의 관계의 확장과 비인간과 인간의 공생에 대해 이야기한다. 영상을 보고 있다 보면 자연스럽게 다양한 가능성과 나를 둘러싼 비인간과의 공생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2. Le Sacre du printemps (Tandvärkstallen), Zheng Bo – 식물과 인간 간의 성적 결합

이미지 출처 ‘Zheng Bo’ 홈페이지

제목을 직역하면 ‘봄의 제전’이며 중국 출신의 작가 정보(Zheng Bo)의 16분 정도 분량의 영상 작업이다. 스웨덴의 소나무 숲에서 남성 무용수들과 함께 작업했다. 영상에서 나체의 남성 무용수들은 땅에 머리를 박고 나무와 신체적 접촉을 한다. 고요한 숲에서 남성의 신음 소리가 계속해서 들린다. 영상의 대부분은 거꾸로 뒤집혀 있어서 무용수들이 영상 윗부분에 매달려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인간이 머리를 땅에 박고 물구나무를 하는 자세로 있다 보니 인간의 힘을 상실한 것 같았다. 평소 인간에게 나무는 베어버리고 이용할 수 있는 존재이다. 하지만 인간이 평소 서있던 것과는 반대의 자세로 있다 보니 그 권력관계가 흐트러진 느낌이었고, 그 장면을 담아낸 영상 또한 위아래가 바뀌어 있어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여러 명의 무용수들이 동시에 나무와 성적 접촉을 하고 있는 것은 나무와 인간의 일대일 관계라기보다는 집단적인 성욕의 발현으로 느껴진다. 그로 인해 이 영상에서 인간은 복잡한 내면을 가진 주인공으로 그려지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자연의 일부로서 느껴진다. 이러한 점들이 자연을 바라보는 인간 중심적인 시선에서 벗어나게 만든다. 인간과 식물의 성적 접촉이라는 주제는 종의 다양성과 종간의 연결성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한다.

 

3. Endless House : Holes and Drips, 이미래 – 신체의 변형

이미지 출처 ‘LA BIENNALE DI VENEZIA’

위 두 작품은 인간 중심적인 체계에서 벗어나 비인간과 인간과의 관계를 탐구하는 작품들이었다. 한국 작가인 이미래 작가는 키네틱 조각 작품을 통해 신체의 변형을 다뤘다. 커다란 구조물에 동물의 내장으로 추측되는 모형들이 걸려있고 그 위로 붉은색 유약이 호스를 통해 끈적하게 흐르고 마르고 다시 흐르고를 반복한다. 구조물 앞에도 내장 모형이 몇 개 널브러져 있다. 동물이나 인간의 신체에서 장기는 살과 뼈의 보호를 받고 안쪽에 위치한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장기는 무엇에도 보호받지 않고 온전히 바깥세상과 접촉한다.

처음 이 작품을 봤을 때 괴기스럽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 괴기스럽고 불편한 느낌 때문에 계속해서 그 자리에 머물며 작품을 바라보게 만들었다. 유약이 끈적하게 흐르고 떨어지고 다시 흐르는 소리를 들으며, 눈앞에 있는 낯선 신체에 대하여 느끼는 약간의 거부감과 새로운 관점에 대한 흥미를 동시에 느꼈다.

 

Writer

Kim Sunm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