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를로트 페리앙’이란 이름을 들어본 적 있는가? 20세기 모던 디자인을 이끈 디자이너 중 한 사람인 샤를로트 페리앙은 남성이 지배적이었던 건축, 산업디자인 분야의 1세대 여성 디자이너로서 현대인의 생활공간에 혁신적인 비전을 제시했다. 그의 궤적을 찬찬히 살펴보자. '페리앙'이란 한 예술가의 이름이 마음 깊이 새겨질 것이다.

1903년 프랑스에서 태어난 샤를로트 페리앙은 1925년 장식미술중앙연합학교(Ecole de L’union centrale des arts décoratifs)를 졸업한다. 당시 남성이 지배적이었던 건축, 실내디자인 분야는 여성들이 진출할 수 없었으며, 여성은 단지 집을 아름답고 장식적으로 꾸미는(아르데코) 역할에 머물러 있었다. 페리앙 역시 학교를 졸업한 후 아르데코 디자이너로 활동하였으며, 1926년 장식미술전 (Salon des Artistes Décorateurs)에 출품한 페리앙의 '거실의 코너 (Coin de Salon)'는 당시 디자인계가 여성에게 바랐던 사회적인 경향이 어떠했는지 말해준다.

샤를로트 페리앙이 출품한 '거실의 코너 (Coin de Salon)'의 일부

아르데코 디자이너로 활동하던 페리앙은 우연히 친구 장 푸케(Jean Fouquet)를 통해 당대 최고의 건축가였던 르 코르뷔지에의 책 '건축을 향하여(Vers une architecture)'(1923), '오늘날의 장식예술(L’Art décoratif d'aujourd'hui)'(1926)을 접한다. 기존 건축 및 장식미술에 대한 고정관념을 탈피한 그의 생각에 감명을 받은 페리앙은 그의 사무실에 무작정 찾아가 자신을 고용할 것을 제안하지만, 코르뷔지에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페리앙을 돌려보낸다.

 

르 코르뷔지에와의 만남

샤를로트 페리앙, '지붕 아래의 바(Bar in the Attic)'(1927)

하지만 페리앙은 멈추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생각을 작품에 온전히 구현하는데 집중했다. 그는 1927년 살롱도톤(Salon d' Automne)에 한 점의 작품을 출품한다. 바로 '지붕 아래의 바(Bar in the Attic)'로, 여성의 전유물이었던 부엌을 혁신적으로 탈바꿈시켜 당대 디자인계의 주목을 받았다. 화려하고 장식적이던 기존의 부엌은 페리앙의 손에서 기능적이고 실용적인 공간으로 재탄생했으며, 차가운 알루미늄, 유리, 스틸은 그의 생각을 뒷받침하는 최상의 재료가 되었다. 페리앙은 이 전시를 기점으로 아르데코 디자이너로서 마침표를 찍고, 새로운 디자인을 제시하는 선구자로서 첫 포문을 열었다. 르 코르뷔지에는 이 작품을 보고 페리앙에게 본격적으로 같이 일할 것을 제안하고, 그를 가구디자이너로 고용한다.

왼쪽부터 르 코르뷔지에, 퍼시 스코필드, 샤를로트 페리앙, 디오 부르주아, 장 푸케 © Archives Charlotte Perriand

페리앙은 이 시기부터 르 코르뷔지에, 피에르 자네레와 함께 모던 디자인의 역사에 오래 남을 작품을 제작한다. ‘LC’로 시작하는 이름을 가진 의자 시리즈는 현재까지도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 클래식의 상징이 되었다.

'LC4', 페리앙 자신이 직접 모델이 되었다. © Courtesy of Louis Vuitton Foundation
샤를로트 페리앙, 르 코르뷔지에, 피에르 자네레가 함께 디자인한 의자 'LC2'
샤를로트 페리앙, 르 코르뷔지에, 피에르 자네레가 디자인한 회전의자 'LC7'(1928)

페리앙은 가구를 중심으로 디자인 작업을 이어나갔지만, 현대인의 주거양식을 총체적으로 변화시킬 방법에 대해서도 치열하게 고민했다. 1929년 설계한 '주거를 위한 설비(Equipement d’Habitation)'에서 이러한 고민의 흔적이 잘 드러난다. 실용적인 기능성을 강조한 이 공간은 제목에서부터 디자이너의 의도를 명확히 파악할 수 있다. 공간과 가구는 더 이상 아름다운 장식품이 아니라 인간의 주거를 위한 하나의 설비(Equipement)가 되었다.

샤를로트 페리앙, '생-쉴피스 스튜디오 다이닝 룸-바'(1927) ⓒ Adagp, Paris, 2019 ⓒ Archive Charlotte Perriand
르 코르뷔지에, 피에르 잔느레, 샤를로트 페리앙이 디자인한 '주거를 위한 설비'(1929), 살롱 도톤 전시 ⓒ F.L.C. / Adagp, Paris, 2019 ⓒ Archive Charlotte Perriand.

페리앙은 1930년대부터 효율성, 기능에만 집중한 모던 디자인을 넘어 삶과 주거가 녹아있는 디자인에 깊이 천착하게 된다. 모던 디자인은 현대인의 평균적인 주거 환경을 한층 개선했지만, 인간의 수공적 장인정신, 자연스러움을 배제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었다. 페리앙은 이 지점에서 다른 가능성을 탐구하기 시작했다.

 

인간을 향한 디자인

대나무를 재료로 재제작된 샤를로트 페리앙의 'LC4'

1927년부터 10여년간 르 코르뷔지에와 일했던 페리앙은 그의 사무실을 관두고 업무 차 일본에 방문하게 된다. 여기서 그는 일본 전통의 수공예적 디자인에 매료되었고, 밀짚, 대나무와 같은 재료로 제작한 가구 디자인을 선보이게 된다. 대량생산으로 판매되던 기존의 방식에 반발하고, 수공예적 요소를 접목한 페리앙의 디자인은 당대 비판을 받던 모던 디자인에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었고, 점차 르 코르뷔지에의 그늘에서 벗어나 삶과의 조화를 추구하는 디자인으로 지평을 넓혀갔다. 페리앙은 사회가 여성이라는 존재에 응당 부과하는 기대를 번번히 배반했으며, 언제나 자신의 언어로 이야기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1955년 샤를로트 페리앙이 디자인한 응접실
샤를로트 페리앙, 사진 출처 - 링크

 

지금 파리 루이비통 재단 미술관에서 1999년 9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그의 20주년 회고전이 열리고 있다. 남성 거장 디자이너의 보조적 위치로만 평가받던 20세기 여성 디자이너를 주목하는 움직임이 점차 거세짐에 따라, 페리앙이 남긴 디자인과 기록이 다시금 재평가되고 있다. 이렇듯 그늘에 머물러있던 여성 디자이너들의 이름이 시대의 흐름에 맞춰 차례로 호명되는 중이다. 샤를로트 페리앙은 그 시작의 첫 번째로, 우리는 그를 오래 기억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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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우 인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