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어떤 작품이길래 이토록 호평 일색일까. 일단 <셔커스: 잃어버린 필름을 찾아서>(이하 <셔커스>)는 저예산으로 만든 다큐멘터리인 데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유명인이 한 명도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셔커스>는 스크리닝 이후, 오직 작품의 힘으로 기대 이상의 반응을 끌어내며 2018 선댄스 영화제 월드 다큐멘터리 감독상을 거머쥐었다. 지난해 10월 극장 개봉 없이 넷플릭스에서 독점 공개됐으며, <가디언>, <인디와이어>, <i-D> 등 유수의 해외 매체에서 앞다투어 리뷰와 인터뷰 기사를 쏟아냈다. 뜨거운 입소문만큼이나 믿고 봐도 좋을 작품이라는 뜻일 테다.

아래는 다큐멘터리 <셔커스>를 관통하는 몇몇 키워드를 짚었다. 비슷하고 뻔한 콘텐츠에 질렸다면, 이 다큐멘터리가 신선한 감흥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셔커스: 잃어버린 필름을 찾아서>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컬트에 심취한 소녀

‘재스민’(좌)과 ‘샌디’(우)

‘샌디’(샌디 탄)가 나고 자란 1980년대의 싱가포르는 급속한 경제 성장을 이루었지만, 한편으론 국민들의 제반 활동이 국가의 삼엄한 통제와 검열 아래 놓였던 폐쇄적인 나라였다. 보수적인 조부모 밑에서 자란 샌디는 십 대 무렵, 개방적인 가정환경에서 자란 ‘재스민’(제스민 닝 킨 기아)과 단짝 친구가 되어 취향을 공유한다. 둘은 주변 사람들이 무시한 것에 열광했다. <아메리칸 필름>과 <필름 코멘트> 같은 영화 비평지를 열심히 봤고 찾는 영화를 볼 수 없자 싱가포르의 영화 기관에 이의를 제기하는 편지를 썼다. 14살 때 싱가포르의 언더그라운드 록 잡지 <빅오>에 기고했고, 직접 잡지 <익스플로딩 캣>을 만들어 자신들의 취향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 이 같은 샌디의 삶과 예술, 영화에 대한 깊은 애정이 다큐멘터리 전반에 진득이 배어 매력적인 미장센을 만들어낸다.

 

셔커스

당연히 샌디는 영화가 만들고 싶었다. 영화를 전문적으로 배운 적은 없지만 지금껏 싱가포르에 없던 독창적인 영화를 만들고 싶어 했다. 곧 샌디와 재스민은 함께 영화 제작 수업을 듣게 되는데, 바로 거기서 문제적 남자 ‘조지’(조지 카도나)를 만난다. 샌디는 누벨바그에 깊이 심취했고 영화에 관해 박식했으며, 여태껏 보아왔던 어른과는 사뭇 다른 조지에게 매료된다. 곧 조지와 떠난 미국 여행에서 돌아온 샌디는 대본을 완성하고, 1992년 여름 촬영 겸 감독을 맡은 조지와 함께 영화를 찍기 시작한다. 샌디와 친구들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낸 영화 <셔커스>의 역사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잃어버린 필름을 찾아서

<셔커스>는 ‘S’라는 이름의 16세 킬러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실험적인 로드무비였다. 하지만 줄거리 같은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샌디의 자유로운 영혼과 약동하는 젊음의 에너지, 예술을 위한 열정 같은 것들이 그 안에 살아 숨 쉬었다. 하지만 조지가 이처럼 순수하고 찬란했던 꿈과 젊음을 한순간에 앗아갔다. 영화는 1992년 여름이 끝나갈 무렵 완성됐으나, 1년 동안 편집을 질질 끌며 연락을 피하던 조지는 끝내 완성본을 내놓지 않았고 필름만 챙겨 사라졌다. 그 후 긴 세월 동안 샌디와 친구들은 미친 사람처럼 존재하지 않는 영화에 관해 이야기했고, <셔커스>를 떠올릴 때마다 분노하고 고통에 잠겼으며 나중에 이르러서는 자신들 삶의 거대한 부분을 영영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받아들여만 했다. 게다가 필름 도난 사건이 발생한 뒤 수년이 흘러 몇몇 영화에서 <셔커스>와 유사한 장면을 마주했을 때, 샌디는 다시 깊은 고통의 수렁에 빠져야 했다.

1998년 개봉한 영화 <맥스군 사랑에 빠지다>(좌)와 영화 <셔커스>(우)
2000년 개봉한 영화 <판타스틱 소녀 백서>(좌)와 영화 <셔커스>(우)

 

그 후

그러다 뜻하지 않게 필름이 돌아온다. 사건 발생 20년이 훌쩍 넘어 조지의 아내로부터 조지가 죽었다는 메일과 함께 <셔커스> 원본 필름 70통을 돌려받게 된 것이다. 그렇게 세상에서 사라졌다고 생각했던 필름이 돌아왔지만, 음성은 이미 사라진 상태였다. 버리거나, 구석에 묻어두고 영영 떠올리지 않거나, 재편집해 다시 영화로 살리거나, 여러 선택을 앞에 두고 샌디는 이 필름들로 다큐멘터리를 만들기로 했다. 그는 잃어버린 필름을 찾는 지난한 과정과 ‘무성영화’ 속에 담긴 젊음의 파편들을 엮어 96분 길이의 장편 다큐멘터리를 완성했다.

그렇다 한들, 수십 년간 샌디와 친구들을 갉아먹고 괴롭혔던 악몽이 이로써 종지부를 찍었다고는 아무도 섣불리 결론 내릴 수 없을 것이다. 다만 유의미한 건 살아 돌아온 필름 속에, 오래된 싱가포르의 풍경, 이제는 사라진 건물들, 그 시대를 뜨겁게 살았던 사람들의 얼굴이 또렷이 남았다는 사실이다. 스냅사진처럼 자유로운 분위기와 아날로그 감성이 진득이 배어 있는 화면, 몽환적인 사운드가 뒤섞인 영상 속엔 동시간, 동일한 장소에 두 번 다시 모여들 수 없는 찬란한 꿈과 젊음이 다시, 꿈틀댄다.

<셔커스: 잃어버린 필름을 찾아서>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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