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여름이 되면 미국 로드 아일랜드 해변의 작은 도시에 재즈 팬들이 모여든다. 지난해에는 코로나 판데믹 때문에 아쉽게 취소되었지만, 미국 최초의 실외 재즈 페스티벌이 돌아왔다.
브라질 출신의 재즈 피아니스트 겸 보사노바 싱어 엘리안느 엘리아스와 빌 에반스의 마지막 베이시스트 마크 존슨. 이 재즈 뮤지션 부부가 뉴욕의 팬더믹 상황에서 온라인 연주 영상을 올렸다.
생전의 그는 지금처럼 주목을 받지는 못하였다. 6년 전 생을 마감한 후 그의 데뷔 앨범이 온라인에서 뒤늦게 유명세를 얻었고, 동료 피아니스트 배리 해리스와의 오랜 우정이 화제로 떠올랐다.
그래미 9회 수상의 싱어송라이터 조니 미첼은 1970년대 후반 재즈 베이시스트 자코 패스토리우스와 함께 일하게 되면서 한동안 재즈, 록 그리고 포크가 뒤섞인 실험적인 퓨전 음악에 빠졌다.
그에게 1964년은 정말 바쁜 해였다. 많은 음반을 출반했고 장래를 약속한 연인이 있는 유럽으로 활동무대를 옮겼다. 하지만 그의 염원과는 달리 베를린의 무대에서 갑자기 쓰러져 다시 돌아오지 못하였다.
여타 재즈 레이블과는 다른 길을 걷는 에디션 레코드의 변화는 현재 진행형이며, 아티스트를 향한 지지와 존중 위에 피어난 형형색색의 음악은 지금 들어야 할 재즈로 손색없다.
미국의 에스페란자 스폴딩에 비유되는 여성 재즈 뮤지션이 영국 런던에 등장했다. 테너 색소포니스트인 그는 자신만의 음악을 담은 데뷔 음반으로 남성 중심의 재즈 무대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그는 블루스 감성을 지닌 실력파 피아니스트로 마일스 데이비스 퀸텟에서 빌 에반스를 대체했다. 하지만 뛰어난 즉흥연주 실력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이름보다 사이드맨 피아니스트로 명성을 떨쳤다.
1991년 3월 간암 투병 중이던 재즈 레전드 스탄 게츠는 동료 피아니스트 케니 배런과 함께 듀엣으로 코펜하겐의 재즈 명소 카페 몽마르트르의 무대에 올랐고, 그로부터 3개월 후 생을 마감했다.
통장에 단 70센트를 남긴 채 생을 마감한 그는 사후 60여년이 지난 후에도 여전히 스크린을 누비는 스타다. 그의 전기를 쓰던 도중 시신으로 발견된 작가 린다 리프낵 쿠엘 역시 조명을 받고 있다.
뉴욕으로 건너와 단 한 장의 정규 음반을 남긴 독일의 재즈 피아니스트 유타 힙의 일생은 베일에 쌓여 있었다. 나치 치하의 가난과 무대공포증으로 고생한 그는 뮤지션 대신 고독하고 평범한 삶을 선택했다.
그는 1950년대 정상의 재즈 피아니스트였지만 마약 소지죄로 체포되어 10년형을 받았다. 하지만 케네디 대통령에게 사면을 청원하는 편지를 보내 극적으로 조기 석방되었고, 전성기를 되찾을 수 있었다.
재즈 피아노의 명인 칙 코리아가 플로리다 자택에서 79세를 일기로 영면했다. 그를 추모하며 우리에게 친숙한 그의 스탠더드 명곡 ‘Spain’의 음악적 기원에 대해 살펴 보았다.
그는 주로 사이드맨 트럼펫 연주자로 활동하며 명성을 얻었지만, 수입 면에서는 디지나 마일스에 크게 미치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프로듀서 크리드 테일러의 CTI와 손잡고 음악의 극적인 변화를 모색했다.
뉴올리언스의 인기 피아니스트였던 그는 자신이 1902년에 재즈 음악을, 1906년에는 스톰프 음악을, 1907년에는 스윙 음악을 가장 먼저 했다고 주장했다. 지나친 과장이기는 하지만 그는 분명 초창기 재즈의 중요 인물이었다.
지난해 그래미상 후보에 이름을 올린 그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이름있는 베테랑 재즈 색소포니스트였지만, 나이 63세가 되어서야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이 전면에 새겨진 보컬 앨범을 발매했다.
코로나19로 인해 모든 것이 얼어붙었을 것만 같은 지난 한 해 동안에도 일상은 평소와 다름없이 흘러갔다. 공연과 무대가 사라지는 와중에도 묵묵히 땅을 일구고 자신의 음악을 피워낸 아티스트들의 일상도 그러하다. 어제 발표한 ‘2021 한국대중음악상’ 후보에 오르지 못해 아쉬운 올해의 음악들을 꼽아 봤다.
베이시스트 스콧 라파로와 함께 1961년 녹음한 세 장의 명반에는 자신의 슬픈 감성으로 재해석한 발라드가 수록되었는데, 그의 뛰어난 곡 해석 능력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명곡으로 남았다.
그는 1950년대 초부터 젊은 뮤지션들을 모아 밴드 리더와 작곡가로서 능력을 발휘했다. 그가 10여 년 동안 ‘재즈 워크숍’ 활동을 하면서 발표한 30여 장의 음반에서 평론가들의 찬사를 받은 네 곡을 선정했다.
열여덟의 나이에 아마추어 노래대회에서 우승해 재즈 밴드의 보컬리스트가 된 사라 본. 그가 밴드의 일원에서 벗어나 스타 가수로 발돋움한 데에는 그를 뒤에서 지원하고 조종한 ‘스벤갈리’가 있었다.
올해 그래미상 재즈 연주앨범 부문 후보에 오른 앨범 <RoundAgain>는 조슈아 레드맨이 처음 밴드 리더로서 구성했던 쿼텟 멤버들이 25년 만에 함께 만든 콜라보 앨범으로 주목받았다.
런던 SOHO 지역에 위치한 재즈 클럽 로니 스콧츠는 1959년에 개장하여 60주년을 지낸 브리티시 재즈의 산실이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여파로 한동안 문을 닫았다가 공간을 대폭 축소하여 다시 문을 열었다.
1953년 5월 15일, 토론토의 매시 홀에 당대 재즈계를 대표하는 다섯 명의 스타 뮤지션들이 모였다. 평론가들은 이날의 공연이 재즈 역사상 최고의 연주였다며, 이들을 “더 퀸텟”이라는 상징적인 이름으로 불렀다.
두 번에 걸친 뇌졸중으로 인해 지난 3년 동안 공연을 중단한 키스 자렛의 2016년 공연 실황 <The Budapest Concert>가 발매되었다. 아직 왼손이 부분적으로 마비되어 이제 피아노 연주는 힘들 것이라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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