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 뉴욕의 빌리지 뱅가드에서 녹음된 빌 에반스 트리오의 공연 음반은 재즈 역사상 최고의 실황 명반으로 인정된다. 그로부터 열흘 후 스콧 라파로가 교통사고로 생을 마감하여 유작이라는 의미를 더했다.
가장 아름다운 발라드 연주로 정평이 났지만, 그는 술만 취하면 말썽을 일으켜 ‘야수’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지나친 음주와 괴팍한 성질이 발목을 잡은 그의 인생 역시 순탄치 않았고 마지막까지 혼자였다.
마약 중독자의 치료로 유명한 사설 재활원 ‘시나논’에 수감된 환자 일곱 명이 재즈 밴드를 구성하여 음반을 발표했다. 밴드의 리더 조 패스는 15년 동안 중단되었던 뮤지션의 여정을 다시 시작했다.
명문 줄리어드 스쿨을 한 학기만 다니다 중퇴하고 재즈 무대에 뛰어 들어, 20대 젊은 시절에 ‘Windows’를 만들었다. 일찌감치 재즈 스탠더드가 된 이 곡은 언제 어디서나 그가 즐겨 찾는 레퍼토리가 되었다.
존 콜트레인의 후계자로 아방가르드와 영적 재즈를 개척한 파로아 샌더스가 생을 마감했다. 이로써 영국의 플로팅 포인츠와 협업하여 찬사를 받은 앨범 <Promises>(2021)는 그의 유작이 되었다.
그의 히트곡은 피아노 트리오 형식으로 팝과 알앤비, 그리고 댄스를 넘나들면서 큰 인기를 누렸다. 당시 그의 트리오에서 드럼을 치던 모리스 화이트는 후일 최고의 펑크 밴드를 창단하기도 하였다.
1950년대 재즈의 중흥기에 블루노트 음반이 앤디 워홀의 디자인으로 화제를 일으키자, 경쟁사 컬럼비아 레코드는 화가 출신인 닐 후지타를 고용했다. 재즈 명반의 표지에 남은 그의 추상화를 감상해보자.
영국 포크 음악을 대표하는 알 스튜어트와 오랜 세월동안 함께 한 사이드맨 기타리스트였지만, 뒤늦게 데뷔하여 출반한 솔로 음반과 싱글들을 미국 재즈 차트의 상위권에 올려 놓았다.
1970년 8월 29일 영국 휴양지 와이트섬에서 열린 록 페스티벌에는 우드스탁보다 더 많은 60만 관중이 모였다. 무대에 오른 마일스 데이비스와 여섯 명의 재즈 뮤지션은 38분 동안 즉흥연주를 펼쳤다.
1958년 9월, 57명의 재즈 뮤지션들이 뉴욕 할렘에 모여 전설이 된 사진을 남겼다. 그 중 지금까지 살아있는 사람은 베니 골슨과 소니 롤린스 단 두 사람. 영화 <터미널>의 모티프가 되었던 장면이다.
뉴올리언스의 프렌치 쿼터에 가면 길거리 공연을 하는 그를 표를 사지 않아도 볼 수 있다. 정규 음악교육을 받았고 지금까지 네 명의 미국 대통령 앞에서 연주한 실력파 뮤지션이다.
1972년 뉴욕의 어느 날,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택시를 몰던 팀 하우저가 승객으로 탄 로렐 매스를 우연히 만나면서 시작된 혼성 4인조 아카펠라 그룹이 올해로 50주년을 맞았다.
1950년대 중반 비밥 재즈와 알앤비(R&B)에 심취한 뮤지션들의 강한 비트의 음악을 하드 밥이라 불렀다. 10여년 동안 흑인 음악의 대세로 자리은 하드 밥 장르 다섯 곡을 선정해 보았다.
그는 정통파 재즈 피아니스트로 시작했지만, 장르를 초월하여 팝 스타와 같은 인기를 누렸다. 그가 작곡한 재즈 오리지널 중 빌보드 차트에 오르며 대중적인 사랑을 받은 네 곡을 소개한다.
그는 스윙시대 밴드 리더 듀크 엘링턴과 베니 굿맨에게 곡을 써주었고, 비밥 뮤지션 찰리 파커, 셀로니어스 몽크, 디지 길레스피, 버드 파웰의 멘토였다. 사람들은 그를 비밥 뮤지션의 대모라 불렀다.
윈도우 비스타의 오디오 샘플로 전세계 PC 9,000여만 대에 다운로드 된 ‘OAM’ Blues’란 재즈곡이 있다. 이 곡의 주인공인 재즈 피아니스트 아론 골드버그는 하버드대를 우등 졸업한 수재다.
팻 매스니가 베이스 없는 새로운 트리오 밴드 사이드-아이를 조직하면서, 그의 새로운 피아니스트가 주목을 받고 있다. 이제 20대 후반의 젊은 피아니스트 제임스 프란시스에 대해 알아보았다.
프로듀서 노먼 그랜츠는 1953년부터 아트 테이텀의 피아노 연주를 다양한 형식으로 담아냈다. 오랜 세월이 지나 ‘파블로’를 설립한 그는 옛 마스터를 다시 찾아내 기념비적인 시리즈를 구성했다.
그는 재즈와 솔 장르를 오가며 ‘California Soul’ 한 곡으로 반짝 인기를 누렸지만, 최근 힙합 프로듀서들이 경쟁적으로 그의 그루브 넘치는 음악을 샘플링하면서 다시금 각광을 받고 있다.
그의 여덟 번째이자 다섯 번째 솔로 앨범 <We Are>가 올해의 앨범상 포함 그래미 8개 부문에, 그가 재즈음악 작곡을 맡은 디즈니 애니메이션 <소울>의 영화음악이 3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
‘Body and Soul’로 대표되는 테너 색소폰 스타 호킨스는, 50대에 들어와 색다른 코드와 허스키한 음색의 발라드로 전성기를 유지했으며 다른 뮤지션들과 함께 콜라보레이션 음반을 시도했다.
쳇 베이커와 빌 에반스의 서정적 감성은 많이 닮았지만, 두 사람이 만날 기회는 많지 않았다. 두 사람은 리버사이드의 주선으로 세 번의 세션에 만나 12곡을 녹음하여 쳇 베이커 앨범 두 장에 담았다.
중요한 사실은 누가 후보에 오르고, 수상할 지가 아니다. 이토록 좋은 음악이 다양한 장르와 분야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음을 되새기는 일이다. 올해도 한국대중음악상 후보에 오를 법했지만 오르지 못한 음악들을 돌아보며 이 상의 중요한 취지를 지지한다.
1959년에 42세의 전성기를 맞은 엘라는 송북 시리즈 중 네 번째로 거슈윈 형제의 레퍼토리에 도전했다. 여기에는 넬슨 리들 오케스트라의 편곡과 베르나르 뷔페의 다섯 장 그림도 함께 담았다.
로그인이 필요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