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와일라잇’ 시리즈는 세계적인 흥행작이다. 특히 두 주연배우인 로버트 패틴슨과 크리스틴 스튜어트는 트와일라잇 시리즈를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크게 알렸다. 두 배우에게는 공통점이 있는데, 바로 트와일라잇 이후의 작품 선택이다. 이미 성공했던 작품이 있기에 그에 안주해서 비슷한 캐릭터를 연기할 수도 있지만, 두 사람은 거장으로 불리는 감독들의 신작이나, 신인 감독들의 개성 넘치는 작품에 참여하고 있다.

트와일라잇(Twilight)은 해가 지고 어둠이 찾아오는 때를 뜻한다. 로버트 패틴슨은 트와일라잇 시리즈에서 어둠을 기다리던 뱀파이어만을 연기했지만, 이젠 다양한 역할을 소화하며 새로운 아침을 맞이하고 있다. 트와일라잇의 뱀파이어 ‘에드워드’ 혹은 연예 기사 속 하이틴스타 로버트 패틴슨이 아닌, 자신만의 개성으로 필모그래피를 채워나가고 있는 배우 로버트 패틴슨의 작품들을 살펴보자.

배우 로버트 패틴슨

 

<코스모폴리스>

Cosmopolis|2012| 감독 데이빗 크로넨버그|출연 로버트 패틴슨, 사라 가든, 케빈 두런드, 폴 지아마티

뉴욕 월스트리트의 젊은 투자가 ‘에릭’(로버트 패틴슨)은 세계 경제를 쥐고 흔드는 투자계의 큰손이다. 에릭은 건강검진부터 업무 관련 미팅까지, 하루 대부분을 초호화 리무진 안에서 보낸다. 세계 경제 공황으로 뉴욕 시내는 시끄럽지만, 에릭은 투자 관련 소식 이외에는 별 관심이 없다. 그러나 여론이 점점 에릭을 공공의 적으로 몰면서 난처한 상황과 마주한다.

로버트 패틴슨을 하이틴스타에서 연기자로 탈바꿈하는 계기가 되어준 영화는, 늘 실험적인 작품을 선보이는 데이빗 크로넨버그의 <코스모폴리스>다. MTV 영화제 혹은 그해 최악의 영화를 뽑는 골든 라즈베리 영화제 후보에 오르던 로버트 패틴슨은 <코스모폴리스>로 칸 영화제 무대에 서게 된다. 거장과 하이틴스타로 만난 둘은 서로에게 좋은 자극이 되었고, <코스모폴리스> 이후 <맵 투 더 스타>(2014)까지 연달아 두 작품에서 호흡을 맞춘다.

에릭은 자본주의에 완전하게 찌들어 있는 캐릭터다. 에릭은 자신이 투자할 때마다 세상이 바뀌는 걸 보면서 살기에 대부분의 자극에 무디다.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도 떨어지고, 업무 외에는 식욕과 성욕 등 일차적인 욕구에만 충실하다. 인간이 살아가기 위해서 맞춰야 할 균형이라는 게 있을 텐데, 에릭은 자본에 함몰되어 간다.

<코스모폴리스> 트레일러

로버트 패틴슨은 돈과 자신을 노리는 이들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는 에릭을 연기하면서, 할리우드에서 갑작스러운 명성을 얻고 파파라치에 시달리던 자신을 떠올렸을 거다. 그러나 자본이라는 하나의 키워드에만 집중하던 에릭과 달리, 로버트 패틴슨은 한 가지 역할에만 함몰되지 않기 위해 <코스모폴리스>를 선택했다. 로버트 패틴슨은 자신이 연기한 에릭보다 멋진 미래를 향해 가고 있음을 좋은 연기로 증명한다.

 

<더 로버>

The Rover|2014|감독 데이빗 미코드|출연 가이 피어스, 로버트 패틴슨, 스쿳 맥네이리, 수잔 프라이어

모든 것이 붕괴된 호주. 이곳의 사람들은 질서 없이 살아가고 있다. ‘에릭’(가이 피어스)은 자신의 차를 도난당하고, 차를 가져간 강도를 추적한다. 강도를 쫓던 중 그들 일행을 알고 있는 ‘레이’(로버트 패틴슨)를 만난다. 에릭은 레이에게 길을 안내하라고 하고, 둘은 서로의 목표를 좇아 함께 떠나게 된다.

<애니멀 킹덤>(2010)으로 주목받은 호주 출신 감독 데이빗 미코드 감독의 작품이다. <코스모폴리스>에서 뉴욕 월스트리트를 쥐락펴락하던 캐릭터를 연기한 로버트 패틴슨은, <더 로버>에서 뭘 해도 어설프고 나약한 캐릭터를 연기한다.

<더 로버> 트레일러

로버트 패틴슨이 연기한 레이는 범죄 현장에서 일행에게 버림받고, 자신을 포로로 삼은 에릭에게도 무시당한다. 레이는 자신의 존재감을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지만, 그에겐 황량한 도시에서 생존하는 것부터 버거워 보인다. 보는 이로 하여금 답답함조차 금세 연민으로 바꿀 만큼 어리숙한 레이. 로버트 패틴슨이 레이를 연기하며 보여준 어눌한 말투와 어리숙한 표정은, 영화의 배경인 희망 없는 도시의 냉혹함을 더욱 두드러지게 만든다.

 

<잃어버린 도시Z>

The Lost City Of Z|2016|감독 제임스 그레이|출연 찰리 허냄, 로버트 패틴슨, 시에나 밀러, 톰 홀랜드

영국군 소령 ‘퍼시 포셋’(찰리 허냄)은 영국 왕립지리학회의 권유로 아마존 탐사를 하고, 아직 알려지지 않은 문명의 증거를 발견한다. 탐사에 동행한 부관 ‘코스틴’(로버트 패틴슨)과 함께 복귀한 뒤에, 자신이 발견한 미지의 문명에 대해 연설을 하지만 사람들의 반응은 좋지 않다. 게다가 몇 년 사이 훌쩍 자라난 자식들도 자신을 못 알아본다. 탐험에 대한 그의 욕망은 커지지만, 그의 바람과 달리 쉽게 이뤄지지 않는다.

<잃어버린 도시 Z>에서 로버트 패틴슨의 분량은 많지 않다. 그럼에도 <잃어버린 도시 Z>가 그에게 의미 있는 작품임은 틀림없다. <비열한 거리>(1994), <이민자>(2013) 등 데뷔작부터 평단의 호평을 받아 온 제임스 그레이와 처음으로 호흡을 맞췄고, 좋은 작품이라면 분량과 상관없이 출연하겠다는 그의 의지를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잃어버린 도시Z> 트레일러

로버트 패틴슨이 연기한 코스틴은, 퍼시 포셋이 두 번째 탐사에 합류해줄 것을 권하자 “그 정글은 지옥이지만, 저는 좋아합니다”라고 답한다. 실제로 로버트 패틴슨은 콜롬비아 산타 마르타 정글에서 6주간 촬영을 하며 더위와 습기, 뱀과 벌레, 갑작스러운 홍수 등과 싸웠다. 다양한 역할에 도전 중인 로버트 패틴슨은 배역 때문이 아니더라도, 꿈을 향해 계속해서 전진하는 탐험가처럼 보인다.

 

<굿타임>

Good Time|2017|감독 조슈아 사프디, 베니 사프디|출연 로버트 패틴슨, 베니 사프디, 제니퍼 제이슨 리, 버디 듀레스

‘코니’(로버트 패틴슨)는 지적장애를 가진 동생 ‘닉’(베니 사프디)와 함께 은행을 턴다. 하지만 그들의 계획은 예상과 다르게 전개되고, 닉은 홀로 잡혀서 구치소에 수감 된다. 코니는 동생을 구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계속해서 일이 꼬인다.

로버트 패틴슨을 세계적인 스타로 만든 건 <트와일라잇> 시리즈이지만, 그가 최고의 연기를 보여준 작품은 <굿타임>이다. 은행을 턴 강도가 도망가고, 도망가다가 잡힌 동생을 구한다는 내용은 흔하다. 그럼에도 <굿타임>이 좋은 작품인 이유는 내내 긴장감을 유지하는 영화의 강약조절 때문이다. 보다 보면 어느새 영화의 리듬을 따라가게 되고, 그 중심에는 로버트 패틴슨이 있다.

<굿타임> 트레일러

로버트 패틴슨이 연기한 코니는 영화 제목과 달리 최악의 시간을 보낸다. 그가 하는 선택마다 기다렸다는 듯이 장애물이 등장한다. 하나의 불운이 끝나면, 또 하나의 불운이 그를 맞이하고, 남은 시간은 얼마 없다. 코니는 잘못된 선택을 하고 그로 인해 고통받지만, 로버트 패틴슨은 코니 역을 맡고 많은 호평을 받았다. 로버트 패틴슨 배우 인생의 ‘굿타임’, 이제 막 시작됐다.

 

 

메인 이미지 <코스모폴리스> 스틸컷

 

Writer

에세이 <나만 이러고 사는 건 아니겠지>, <달리다 보면> 저자. 좋아하는 건 영화, 여행, 음악, 문학, 음식. 특기는 편식. 꾸준한 편식의 결과물을 취향이라고 부르는 중. 취향을 바탕으로 창작활동을 하고 있다.
김승 인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