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한 해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말이기도 하다. 크리스마스, 연말을 맞아 어떤 사람들은 신나는 파티를 계획하고 있을 수도 있고, 반대로 어떤 사람들은 화려한 분위기 속에서 더 큰 외로움을 느낄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크리스마스는 어차피 다가온다. 이왕이면 기쁜 마음으로, 자신만의 방식으로 기념일을 즐기는 게 낫다. 크리스마스를 가장 쉽게 즐기는 방법 역시나 캐럴을 듣는 것. 경쾌하고 따뜻한 분위기의 사운드, 형형색색의 뮤직비디오를 보고 있으면 절로 기분이 좋아진다. 우리가 평소에 즐겨 듣던 캐럴은 주로 팝과 알앤비 장르다. 그리고 재즈 트랙도 적지 않다. 한 해 동안 힙합을 즐기던 팬이라면, 여기저기서 흘러나오는 캐럴이 힙합이 아니라는 사실에 아쉬울 것 같기도 하다. 그렇다면 정말 팝과 알앤비 이외에 다른 장르들, 그중에서도 특히 힙합 캐럴은 없는 걸까? 붙으려야 붙을 수 없는 조합 같지만 놀랍게도 크리스마스를 다룬 힙합이 몇 곡 있다. 특이한 점이 있다면, 한결같이 밝은 분위기를 띠고 있는 게 아닌 저마다의 독특한 색깔을 지니고 있다는 것. 지금부터 몇 편의 힙합 캐럴을 살펴보고, 자신만의 크리스마스를 기념해보자.

 

Gucci Mane ‘St. Brick Intro’

허슬러가 많다는 힙합 신에서도 압도적인 작업량으로 자신의 가치를 입증해낸 래퍼 구찌 메인(Gucci Mane). 그가 2016년 공개한 ‘St. Brick Intro’는 힙합이라는 문법에 캐럴의 요소를 잘 녹여낸 곡이다. 클래식한 징글벨 멜로디를 늘어트림과 동시에 낮게 변형시켜 트랩 사운드에 걸맞은 분위기를 연출해냈다. 크게 화려하지 않은, 깔끔한 사운드도 인상적이지만 더 재미있는 요소는 뮤직비디오와 가사에 있다. 평범한 힙합 뮤직비디오에 클리셰처럼 등장하는 슈퍼카, 돈다발은 여기서도 유효하다. 크리스마스 트리에는 돈다발이 걸려있고, 루돌프가 끌었어야 할 썰매의 자리는 슈퍼카가 대신한다. 가사 역시도 트랩의 문법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뮤직비디오의 중반부, 이에 낀 그릴즈를 빛내며 웃음 짓는 구찌 메인의 모습은 인상적인 감상 포인트. 유머러스하지만 사운드도 비주얼도 완성도 높은 힙합 캐럴이다.

 

Kanye West ‘Christmas in Harlem’

이 시대의 천재 혹은 괴짜인 칸예 웨스트(Kanye West)가 캐럴을 만든다면 어떤 모습일까? 지난 2010년, 감사하게도 그는 자신이 창립한 레이블 굿 뮤직(GOOD Music) 소속 아티스트들과 함께 크리스마스를 주제로 한 곡을 공개했다. ‘Christmas in Harlem’이라는 곡 제목만 봤을 때는 거친 힙합 사운드가 연상되기도 하지만, 칸예 웨스트가 그려낸 할렘의 크리스마스에는 따뜻함과 포근함이 가득하다. 이제는 생소한 이름이 아닌 테야나 테일러(Teyana Taylor)의 감미로운 훅 아래 싸하이 다 프린스(Cyhi the Prynce)와 칸예 웨스트의 랩이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겨우살이 아래서 산타클로스에게 키스하고, 영하 40도의 날씨는 차갑지만 살아있기 아름다운 밤이라는 가사는 곡의 감미로운 분위기를 더한다. 곡이 공개된 지 어느덧 7년째가 됐지만, 여전히 세련된 사운드는 “역시 칸예 웨스트”라는 말이 절로 나오게 한다. 모든 캐럴을 통틀어 이보다 감미로운 캐럴이 또 있을까.

 

Snoop Dogg ‘Santa Claus Goes Straight To The Ghetto’

칸예 웨스트가 굿 뮤직의 아티스트들과 함께 단체곡을 만들었다면, 스눕 독(Snoop Dogg)은 데스 로(Death Row) 아티스트들과 곡을 함께했다. 데스로는 과거 거친 남성성과 갱스터 힙합을 표방하던 레이블이었기에 크리스마스 곡마저도 거친 모양새로 빚어냈다. 알앤비 싱어의 훅을 중심으로 랩을 얹는 구조는 앞선 ‘Christmas in Harlem’과 유사하지만, 그 외 모든 분위기는 정반대의 결을 보인다. 묵직한 베이스를 곡 전반에 걸쳐 반복시키고 슬레이 벨(징글 벨)을 느리게 흘려보내 다소 어두운 사운드를 만들어냈다. 한편, 이 곡은 갱스터 힙합 보컬의 최고봉이라고 불린 네이트 독(Nate Dogg)의 묵직하고 끈적한 훅을 다시 들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다. 지금은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음성은 살아남아 다시 한번 알싸한 감동을 주는 듯하다. 갱스터의 전유물로 대표되는 임팔라 로우라이더 차량과, 검은 산타가 된 스눕 독의 모습은 뮤직비디오의 볼거리다.

 

Run the Jewels ‘A Christmas Fucking Miracle’

킬러 마이크(Killer Mike)와 이엘 피(El-P) 두 베테랑 래퍼가 결성한 그룹인 런 더 주얼스(Run the Jewels). 이 베테랑 듀오는 화려한 래핑으로도 주목받지만, 이들을 이해하는 더 핵심적인 요소는 그들이 전하는 메시지다. 런 더 주얼스는 작업물에 언제나 촌철살인의 메시지를 담는다. 때로는 정치적으로까지 보이기도 하는데, 실제로 그룹의 멤버 킬러 마이크는 선거 캠페인에 참여하기도 할 정도로 정치분야에 관심이 높다. 런 더 주얼스는 이 곡을 통해서도 문제의식을 충분히 전달한다. 크리스마스에 굶어야만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늘어만 가는 빈부격차를 날카로운 어조로 드러낸다. 그와 걸맞게 사운드도 캐럴 멜로디를 그대로 가져오기보다는, 전자 기타 사운드를 전면에 부각해 건조한 연말의 모습을 드러낸다. 크리스마스가 누구에게나 행복한 날은 아니듯, 런 더 주얼스의 캐럴 역시 크리스마스의 어두운 면에서 접근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Run D.M.C. ‘Christmas in Hollis’

런 디엠씨(Run D.M.C.)의 ‘Christmas in Hollis’는 이번에 소개하는 곡 중 발매된 지 가장 오래된 곡이다. 1988년에 공개된 이 곡은 ‘캐럴’하면 생각나는 여러 요소를 음악에 담았다. 캐럴 ‘Jingle Bells’와 ‘Frosty the Snowman’, ‘Joy to the World’를 그대로 녹여낸 것뿐만 아니라, 경쾌한 슬레이 벨을 통해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더했다. 뮤직비디오에서는 런 디엠씨 멤버들이 아디다스 트레이닝복에 중절모를 쓰고 나오는데, 당시 이러한 패션은 힙합 신에 엄청난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어머니가 음식을 만들고, 산타가 선물을 두고 간다는 비교적 가벼운 가사에, 런 디엠씨의 유쾌한 모습이 어우러져 한 편의 고전 크리스마스 영화 같은 느낌을 준다. 올드스쿨 힙합의 고유한 멋을 느끼기에 부족함 없는 곡이다.

 

Ludacris ‘Ludacrismas’

최근 힙합을 접한 팬들에게는 래퍼의 이미지보다, 영화 <분노의 질주> 시리즈의 ‘테즈 파커’ 역으로 더 익숙할지도 모르는 루다 크리스(Ludacris). 그는 2007년 <산타는 괴로워>라는 영화의 OST로 이 곡을 작업했다. 도리스 데이(Doris Day)의 1949년 작, ‘Here Comes Santa Clause’를 훅으로 변형시킨 사운드가 인상적인 곡으로, 일반적인 캐럴과 다르게 속도감 있는 래핑이 돋보인다. 재미있는 점이 있다면, 이 곡은 영화 OST로 제작되었지만 안타깝게도 영화의 OST 앨범에는 수록되지 못했다. 캐럴이 일반적으로 풍기는 유쾌한 모습보다는 루다 크리스의 강렬한 색깔이 너무 짙게 묻어 나왔기 때문일까? 이유는 모르지만 루다 크리스 개인적으로는 아쉬울 법한 곡이다.

 

XXXTentacion ‘A Ghetto Christmas Carol’

캐럴에 꼭 징글벨 멜로디가 들어가야 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항상 밝은 메시지가 담겨야 하는 것도 아니다. 텐타시온(Xxxtentacion)의 캐럴이 그렇다. 도시의 불빛은 빛나지만 자신은 취해 있고, 그 속에서 부서지지 말라는 자기 암시적인 이야기는 후에 텐타시온의 비극적 죽음까지 더해져 듣는 이의 마음을 무겁게 한다. 초록과 빨강은 크리스마스를 대표하는 색이기도 하지만 텐타시온에게는 그저 명품 브랜드를 연상시킬 뿐이라는 점에서도 게토(Ghetto, 미국 빈민가)의 크리스마스는 얼마나 각박하고 물질주의적인지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듯하다. 올해 세상을 떠난 그의 크리스마스 캐럴은 결코 연말 파티에 어울리지는 않지만, 한겨울 생각해봄 직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메인 이미지 Run-DMC, from left: Darryl McDaniels (DMC), Jason Mizell (Jam Master Jay) and Joseph Simons (Run). Michael Ochs Archives/Getty Images via ‘NY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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