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의 크리스마스 인사는 어떤가. 간단한 메시지와 이모티콘으로 성탄 인사를 대신하는 것이 흔한 풍경이 된 듯하다. 그럴수록 1년에 한 번, 이맘때쯤 손글씨로 적어 보내는 크리스마스 카드는 특별한 연말인사가 되지 않을까. 알고 보면 역사적으로 크리스마스 카드에 얽힌 흥미로운 이야기도 많다. 가장 처음 만들어진 크리스마스 카드부터 아티스트들이 동료에게 보낸 카드까지, 이제는 진귀한 작품으로 남은 크리스마스 카드에 관한 이야기를 전한다.

 

존 캘코트 호슬리의 첫 번째 크리스마스 카드

1843년, 존 캘코트 호슬리가 그린 크리스마스 카드

역사적으로 크리스마스 카드에 관한 가장 첫 번째 기록은 독일의 의사인 마이클 메이어(Michael Maier)가 1611년 영국의 제임스 1세와 그의 아들에게 크리스마스 카드를 보냈다는 것. 이 카드는 1979년 스코틀랜드에서 발견됐다고 한다. 그다음 기록은 1843년인데 영국의 헨리 콜 경(Sir Henry Cole)이 존 캘코트 호슬리(John Callcott Horsley)에게 의뢰해 그린 카드다. 헨리 콜 경은 런던 만국박람회를 기획한 인물이며 런던의 빅토리아 앤 앨버트 뮤지엄의 설립을 주도한 인물이기도 하다. 존 캘코트 호슬리는 그의 주요 작품이 현재 내셔널 갤러리에 소장돼 있는 화가. 의뢰로 탄생한 첫 번째 카드는 노부부와 그의 자녀 부부, 그리고 손주들까지 3대가 함께 모인 자리에서 축배를 든 그림을 중심으로, 양옆에는 춥고 가난한 사람에게 옷을 덮어주고 음식을 나눠주며 ‘자선’을 상징하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그리고 매우 익숙한 문구를 확인할 수 있다. ‘A MERRY CHRISTMAS AND A HAPPY NEW YEAR TO YOU’. 이 카드는 상업적 목적으로 만들어진 첫 번째 카드로, 런던에서 1000장이 인쇄됐으며 1실링에 판매됐다.

크리스마스 카드가 금방 대중적으로 자리 잡은 건 아니다. 영국에서 첫 번째 카드가 제작되고 약 30여 년 뒤인 1873년, 영국의 한 석판인쇄 회사에서 크리스마스 카드를 시장에 출시한 뒤 이듬해 미국에서도 판매하기 시작하면서 점차 세계적 문화로 자리 잡았다. 1843년에 나온 오리지널 카드 중 아직까지 남아있는 몇 장의 카드는 2000년대 이후 소더비 연말 경매에 등장했고 그 결과는 놀라웠다. 크리스마스 카드 한 장이 1만 파운드 이상의 가격에 거래되며 귀한 대접을 받은 것이다.

 

알렉산더 칼더의 위트 있는 카드

Archives of American Art, Smithsonian Institution

작가들이 만든 크리스마스 카드는 시즌의 분위기보다 개성 있는 작품 스타일이 친숙한 방식으로 드러난 것이 많다. ‘움직이는 조각’으로 유명한 미국 작가 알렉산더 칼더(Alexander Calder)는 모빌의 창시자다. 무게중심을 유지하고 절묘한 균형을 구현해낸 신기한 작품이 많다. 1930년 그가 리노컷 판화로 제작한 홀리데이 카드에도 이런 균형감을 엿볼 수 있다. 당시는 그가 1928년 뉴욕에서 철사 조각가로 데뷔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았던 시기이자, 여러 가지 재료로 만든 장난감 동물과 곡예사로 서커스를 연출하던 시기이기도 하다. 해변과 해가 그려진 밝은 분위기의 카드에 등장한 두 사람도 역시 묘기를 부리는 듯한 위트 있는 모습. 그리 컬러풀하진 않지만 즐거운 느낌이 가득한 홀리데이 카드다.

 

로버트 마더웰의 추상적 카드

Archives of American Art, Smithsonian Institution

로버트 마더웰(Robert Motherwell)은 미국 추상표현주의의 창시자로 꼽히는 아티스트. 제2차 세계대전의 발발 후 미국으로 건너온 유럽의 초현실주의 화가들과 교류하며 영향을 받았고 동양의 문화에도 깊은 영향을 받아 수묵화를 연상시키는 작품이 많다. 회화와 판화 작업을 했던 그는 붓질을 통해 무의식적인 표현을 하는 자동기술법을 사용했다. 이 홀리데이 카드는 1946년, 로버트 마더웰이 동시대를 살았던 미국의 아티스트, 조셉 코넬(Joseph Cornell)에게 그려 보낸 것. 그는 카드 앞면에 숫자 ‘1946’를 썼고 하단에는 흘려 쓰듯 사인도 했다. 검은 선과 색면을 통해 동양적이면서 무게감이 느껴지는 작업을 했던 그의 작품세계를 이 카드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필립 거스턴의 귀여운 수채화 카드

Archives of American Art, Smithsonian Institution.

1950년대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는 이 카드는 캐나다 출신으로 미국에서 활동한 화가 필립 거스턴(Philip Guston)의 작품. 그는 1920년대 예술고등학교 재학 시절 잭슨 폴록과 교류했고, 이후 유럽과 멕시코의 예술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이 카드를 그린 1950년대는 동료들과 함께 서정적인 추상표현주의 화풍을 선보이던 시절. 이후 다시 구상화로 돌아와 1960년대 중반 이후 작품은 풍자적이면서 해학이 담긴 만화 같은 작품이 많다. 이 크리스마스 카드는 화가이자 시인인 그의 부인, 무사 맥퀸(Musa McKim)과 함께 화가 엘리스 애셔(Elise Asher)에게 보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카드의 앞면에 수채물감으로 모닥불 위에 주전자가 걸려있는 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안쪽에는 ‘Much love, haven't seen you in so long. Musa & Philip’이라는 부부의 간단한 메시지를 담았다. 낭만적 경향이 두드러진 시기에 그린 카드로, 밝지 않은 색조임에도 모닥불과 주전자라는 요소에서 따스함이 느껴진다.

 

 

Writer

잡지사 <노블레스>에서 피처 에디터로 일했다. 사람과 문화예술, 그리고 여행지에 대한 글을 쓴다. 지은 책으로는 에세이 <마음이 어렵습니다>, <회사 그만두고 어떻게 보내셨어요?>, 여행서 <Tripful 런던>, <셀렉트 in 런던>이 있다.
안미영 네이버포스트 
안미영 인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