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 Getz(좌) and Chet Baker(우) in Norway 1983

우수에 찬 트럼펫(또는 프루겔혼) 연주자 겸 재즈가수 쳇 베이커(Chet Baker, 1929~1988)는 음악가였던 부모 밑에서 자연스럽게 음악에 심취하여 재즈맨의 길에 들어섰으며 20대 였던 1950년대 이미 웨스트 코스트 재즈(West Coast Jazz)의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쳇 베이커 하면 맨 먼저 떠오르는 대표적인 노래 ‘My Funny Valentine’. 그의 전성기 였던 1959년 실황으로 ‘My Funny Valentine’을 들어보자.

Chet Baker 'My Funny Valentine'(1959)

그러나 30대부터 시작한 마약 중독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교도소와 갱생원을 들락날락 하였고 1966년에는 폭행사건으로 턱과 이빨에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의치를 해야했고 트럼펫에 특수 취구를 고안하고 나서야 다시 재즈계로 돌아올 수 있었다. 1970년대 후반 여자친구의 도움으로 유럽에 정착하면서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하게 된다. 1983년에는 그의 팬이었던 영국의 인기가수 엘비스 코스텔로(Elvis Costello)가 그를 고용하여 같이 음악활동을 하면서 젊은 팬층에 어필하게 된다. 이 당시 영상을 감상해 보자.

Elvis Costello and Chet Baker 'You Don't Know What Love Is'(1986 @ Ronnie Scott's) 

그는 1988년 5월 13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Hotel Prins Hendrik에 머물던 도중, 창문 아래 거리로 추락하여 사망하였다. 호텔 방에서 마약이 발견되었고 그의 몸 속에서도 성분이 검출되어 마약 과용에 따른 사고로 결론이 났다. 이에 대해 수많은 보도와 다큐가 제작될 정도로 파장이 큰 사건이었다. 그 사건을 다른 시각으로 구성한 단편영화를 감상해 보자.

단편영화 <The Deaths of Chet Baker>

지금도 암스테르담의 Hotel Prins Hendrik에 가면 그를 추억하는 양각 현판을 볼 수 있고 그가 사망하기 직전 머물던 210호실은 “The Chet Baker Room”으로 명명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