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되면>의 시작

얼마 전 개봉한 영화 <어른이 되면>의 감독 장혜영에겐 장혜정이라는 동생이 있다. 발달장애인인 혜정은 그 이유만으로 13살 때부터 18년 동안 가족과 떨어져 시설에 살았다. 혜정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결정된 일이었다. 동생이 삶을 스스로 선택하지 못했다는 걸 깨달은 순간 혜영의 삶도 전과 같을 순 없었다. 혜영은 이것이 매우 부당한 일이고, 동생이 인간적으로 살지 못한다면 자신에게도 인간적인 삶은 없다는 사실을 절감한다.

엄격한 규칙과 통제로 운영되는 시설에선 장애인들의 개성이나 취향, 의견은 없는 것처럼 여겨진다. 무엇보다도 시설은 장애인을 한 명의 개인, 어른으로 대하지 않는다. 그래서 시설에 오래 머문 혜정은 “어른이 되면”이라는 말을 버릇처럼 달고 산다. 그가 하고 싶은 것을 표현할 때마다 주변 사람들은 “어른이 되면 할 수 있어(그러니 지금은 안 돼)”라는 말로 그의 목소리를 외면했기 때문이다.

혜영은 동생이 세상에 자립하는 어른이 될 수 있다고 믿고, 그래서 동생을 시설 밖으로 데리고 나와 함께 살기로 한다. 혜영이 아는 ‘자립’이란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홀로 모든 일을 해내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돌아보면 우리 모두 평생에 걸쳐 가족, 친구, 선생님, 이름 모를 무수한 이들에게 크고 작은 도움을 받고 의존하며 살고 있으니까.

영화 <어른이 되면>은 영화 이전에 프로젝트였다. 혜정과 혜영이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으로서 사회에 자리 잡는 모습을 브이로그 등 영상으로 기록하고 공유하는 프로젝트. 그 안엔 두 사람이 살아가는 패턴을 만들어가는 모습, 좋아하는 것을 탐색하고 경험하는 순간, 필요한 복지서비스를 찾고 받는 과정, 그러면서 만나는 많은 사람과의 인연 등 여러 이야기가 담겼고, 혜영과 친구들은 이를 정성스레 다듬어 영화로 만들었다.

 

유튜버 ‘생각많은 둘째언니’

영화 <어른이 되면>의 매력 중 예상하지 못한 것은 ‘재미’다. 감독 장혜영은 약 4만 명의 구독자를 보유한 유튜버 ‘생각많은 둘째언니’이기도 하다. 그는 유튜브에서 문학, 페미니즘, 퀴어, 정치 등 여러 주제를 다뤘고, 어떤 주제든 차분하지만 재미있게 풀어내 왔다. 이러한 센스와 깊이가 영화 <어른이 되면>에도 발휘되어 보는 맛을 끌어올린다.

생각많은 둘째언니 <동성애를 반대하는 너에게> 편

또한 장혜영은 12월 4일 진행한 기자간담회에서 “혜정이 사회로 나와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으려 했다. 장애인이 겪는 고충은 이제껏 미디어가 수도 없이 비춘 모습이고, 나는 우리가 생활을 꾸리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모든 삶이란 비슷한가 싶다가도 사람은 다 다르고 그래서 재미있으니까, 혜정과 혜영의 인생을 보여주는 이 영화가 재미있는 건 당연하겠다.

 

<어른이 되면>이 남기는 것

그들의 삶은 이어지므로, 영화는 정돈된 결말을 보여주지 않는다. 혜정과 혜영의 변화나 성장도 극적이지는 않다. 특정한 기대를 품고 영화를 본다면 오히려 그것이 무너지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영화는 어떤 기대마저도 편견이었음을 자연스레 깨닫게 만든다. 그리고 오래 남을 질문을 던진다. 이 질문은 어쩌면 앞으로 살아가는 데 퍽 중요한 것일지도 모른다.

영화 <어른이 되면> 예고편

 

 

Editor

김유영 인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