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어렸을 때 꿈을 꾼 적이 있다. 엄마와 아빠만 비행기를 타러 가고, 텅 빈 집에 나 홀로 남겨져 있는 꿈이었다. 급하게 눈을 떠보니 눈앞은 어둠뿐이었고(새벽이었다) 결국 집이 떠나가라 울음을 터뜨렸다. 내 울음소리를 듣고 놀란 엄마가 나를 안아 들 때까지의 그 짧은 시간이 마치 영겁과도 같이 길게 느껴졌다. 그때 어찌나 두려웠는지, 이미 20년도 넘은 그 감정이 생생히 기억이 날 정도다.
남겨진다는 것. 그것도 ‘혼자’ 남겨지는 것은 우리에게 어떤 감정을 전달할까. 내 곁에 있던 사랑하는 사람들이 사라지고, 익숙한, 혹은 낯선 곳에 남겨진다면 우리는 어떤 기분을 느끼게 될까. 커다란 두려움, 공포, 당혹감, 슬픔, 혼란스러움이 혼재된 세상에서는 어떤 감정을 붙들고 나아가야 할까.

남겨진 자의 슬픔을 두려움으로 재현하는 공포게임 세 편을 소개한다. 여기에는 딱히 고어적이거나 필요 이상으로 잔인한 장면이 등장하지는 않지만, ‘혼자’라는 순회하는 외로움이 두려움의 탈을 쓰고 우리를 덮칠 수 있으니, 이를 조심하는 것이 좋겠다.

 

<반교>

돌아올 반(返), 학교 교(校). 영어 이름은 Detention. 공포게임 <반교>의 뜻은 이렇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학교로 돌아오다’라는 뜻이고, 또 하나는 ‘Detention: 학생에 대한 벌로 방과 후에 남게 하기’라는 뜻이다. 사실 어떤 뜻이든 이 게임 <반교>에 참 잘 맞는다. 반교의 줄거리를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아래와 같다.
한 학교에서 소녀가 눈을 뜬다. 왜인지 모르게 강당에서 홀로 자고 있던 소녀는, 자신이 왜 이곳에 있는지,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그녀는 자신을 깨워준 한 소년과 이야기를 나누고, 빈 교실에 앉아 학교를 나갈 방법과 서로에 대한 이야기를 잠시 나눈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갑자기 소년이 사라진다. 소녀는 소년을 찾아다니다가 그가 강당에 거꾸로 매달린 채 죽어있는 것을 발견한다. 불길한 기운을 느낀 소녀는 어떻게든 학교를 탈출하기로 결심한다.

<반교> 트레일러

사실 게임 <반교>는 단순히 학교 밖을 탈출하려는 소녀의 모험이라고 내용을 일축하기엔 너무나 거대한 서사를 담고 있다. 이 게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게임의 시대적 배경을 알아야 한다. 배경은 1960년 대만, 국민당 독재 정부의 계엄령 치하에서 우리나라의 ‘레드 콤플렉스’와 비슷한 공산주의 축출 시대가 이야기의 중요한 한 축을 담고 있다.
학교 밖을 나갈 수가 없는 혼자 남겨진 한 소녀. 그리고 아무도 없이 텅 비어버린, 광활한 학교. 학교 안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크리처들이 돌아다니고, 소녀는 그곳을 순회하며 이곳을 나갈 수 있는 단서를 찾아다닌다. 을씨년스러운 날씨와 음산한 학교 배경이 혼자 남겨진 소녀의 슬픔과 공포를 시각화하여 보여준다.
이 소녀는 누구이고, 왜 이곳에 혼자 남겨졌을까? 그 커다란 슬픔의 전말을 게임을 통해 확인해보자.

<반교> 홈페이지 

 

<프랜 보우>

‘프랜’이라는 소녀가 부모님을 아주 끔찍하게 잃었다. 행복했던 가족은 종말을 맞이했고, 소녀는 누군가에게 잔인하게 찢겨버린 부모님의 시신을 맨 처음 목격한다. 그 광경을 감당할 수 없었던 소녀는 자신이 사랑하는 검은 고양이 ‘미스터 미드나잇’을 데리고 도망친다. 하지만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기절해버린 프랜. 그리고 그에게 다가오는 검은 그림자. 미스터 미드나잇은 프랜을 보호해보려 하지만, 그림자의 위협을 느끼고 숲속으로 도망친다.
프랜이 다시 눈을 뜬 곳은 정신병동. 그곳에서 그는 치료를 받아야 하지만, 병원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이 이상할 정도로 싫고 의심스럽다. 그러던 어느 날, 프랜은 미스터 미드나잇이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를 듣게 되고, 병원 밖으로 나와달라는 고양이의 말을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철석같이 믿는다.

<프랜 보우> 트레일러

<프랜 보우>는 가족을 잃은 소녀 프랜이, 사건의 전말과 충격적인 진실을 알게 되는 과정을 잔혹 동화와 같은 형식으로 그려낸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차용하여 만든 게임답게, 이 안에는 정말 ‘이상한’ 이야기와 크리처들이 등장한다. 어떻게 보면 잔혹 동화에 고어물을 살짝 입힌 듯한 느낌도 든다. 하지만 <프랜 보우> 또한 앞서 말했던 게임 <반교>처럼 단순한 판타지 게임이 아니다. 이 게임 역시 우리를 눈물짓게 만드는 역사적 배경이 뒷받침하고 있다.
프랜이 들은 목소리는 정말 검은 고양이의 것이 맞는 걸까? 약을 먹을 때마다 보이는 고어적 현상은 환상일까 진실일까? 궁금하신 분들은 <프랜 보우>의 엔딩까지 쭉 달려보시길 바란다.

<프랜 보우> 홈페이지 

 

<레프트웨이>

‘남풍’이라는 여자아이는 아무도 없는 텅 빈 거리에 홀로 서 있다. 자신이 왜 여기에 있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 지에 대한 기억은 모두 잃어버린 소녀. 그는 지도를 보면서 마을을 나갈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

<레프트웨이> 트레일러

남풍이 돌아다니는 마을은 얼핏 보면 특별히 무서울 것이 없는 평범한 주택가처럼 생겼다. 하지만 가는 곳마다 ‘이질적인’ 광경을 마주하게 된다. 거리 한복판에 놓인 마네킹이라든지, 파묻혀 있는 작은 인형이라든지, 막힌 집 대문 같은 것들이 사람 한 명 보이지 않는 풍경에 기이함을 더하고, 그가 가는 길을 더욱 두렵게 만든다.
태국 공포 게임으로 유명한 <레프트웨이>는 텅 빈 거리에 홀로 남겨져 기억을 더듬어가는 소녀의 심리를 잘 따라간다. 소녀가 길을 나아갈 때마다 위협적인 무언가가 다가온다. 남풍은 누구이고, 그는 어떻게 여기를 나갈 수 있을까?

<레프트웨이> 스팀 페이지 

 

무서운 공간에 혼자 남겨진 것과, 혼자 남겨져 있기에 나를 둘러싼 공간이 두려워지는 것은 매우 다른 결의 공포를 낳는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지금 소개한 세 편의 게임은 이 두 가지를 모두 혼재하여 가져가고 있다. 그것이 이 세 가지 게임을 더욱 특별하게 해주는 동시에, 게임을 플레이하는 유저들에게 극도의 긴장감을 부여한다.
오늘 무언가 오싹하고 처연하고 아름답고 슬픈 게임을 해보고 싶다면 위의 게임들을 추천한다. 울다가도 소름이 끼치는, 기이한 경험을 하게 될 테니.

 

Writer

아쉽게도 디멘터나 삼각두, 팬텀이 없는 세상에 태어났지만 그 공백을 채울 이야기를 만들고 소개하며 살고 있습니다. 시나리오를 쓰고, 영화를 만들고, 으스스한 음악을 들으며, 여러 가지 마니악한 기획들을 작당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