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슨 라이트먼(Jason Reitman)의 가족은 모두 영화인이다. 아버지 아이반 라이트먼은 <고스트버스터즈>(1984), <유치원에 간 사나이>(1990), <데이브>(1993) 등을 만든 할리우드의 흥행 감독이고, 어머니 주느비에브 로베르도 감독이며, 동생인 캐서린 라이트먼은 배우로 활동 중이다. 부모님의 영향 때문에라도 제이슨 라이트먼에게 영화는 쉽게 접할 수 있는 놀이 중 하나였을 거다. 

제이슨 라이트먼 감독

제이슨 라이트먼은 주로 특정 부분에 서툰 어른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임신한 10대의 눈으로 바라봐도 미련해 보이는 선택을 하거나, 전 남자친구가 결혼 후에도 자신을 그리워할 거라고 믿고, 안정적인 출퇴근보단 비행기로 오가는 출장을 더 편하게 생각하고, 아기를 보모에게 맡기긴 못 미더워서 육아를 하느라 몸과 마음이 망가져 가는 어른이 등장한다.
이들을 특이하다고 말하기에는, 세상에 완벽한 어른이란 존재하지 않을 거다. 세상이 정한 어른의 기준은 이상에 가깝고, 현실에서 대부분의 어른은 서툰 부분이 많다. 서툰 걸 티 내지 않는 것을 사회화라고 믿고, 막상 솔직해졌을 때는 도태당할 위험에 처한 어른의 세계. 위로가 필요한, 서툰 어른의 세계를 보여주는 제이슨 라이트먼의 영화를 살펴보자.

 

<주노>

Juno|2007| 출연 엘렌 페이지, 마이클 세라, 제니퍼 가너, 제이슨 배이트먼

고등학생 ‘주노’(엘렌 페이지)는 친구 ‘블리커’(마이클 세라)와 첫 성경험을 하고 몇 달 뒤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된다. 여러 고민 끝에 아기를 낳기로 하고, 아기를 잘 키워줄 부부를 찾기 시작한다. 주노는 신문 광고를 통해 부유한 환경에서 여유롭게 사는 ‘바네사’(제니퍼 가너)와 ‘마크’(제이슨 베이트먼) 부부를 만나고, 아기에게 좋은 부모가 되어줄 거란 확신을 얻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주노를 고민하게 하는 일들이 점점 늘어난다.

<주노>는 제이슨 라이트먼 감독에게도 특별한 영화인데, <주노>의 각본을 담당한 ‘디아블로 코디’와 처음으로 호흡을 맞춘 작품이기 때문이다. 디아블로 코디는 처음으로 쓴 각본인 <주노>로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각본상을 받고, 이후에도 <영 어덜트>와 <툴리>에서 함께 호흡을 맞춘다.

<주노> 트레일러

주노는 성장 중이다. 임신 때문이 아니라, 모든 것을 자신이 선택하고 감당하는 중이기 때문이다. 어떤 상황에도 환경이나 타인을 탓하지 않고,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자신을 낮추는 농담으로 상대를 배려한다. 내내 밝아 보이는 주노를 보면서, 자신이 모든 것을 떠안으려고 하는 게 약점이 되지 않기를 바라게 된다. 이미 멋진 어른에 가까운 주노가, 부디 누구에게 기대는 것에 서툰 어른이 되지 않기를.

 

<인 디 에어>

Up In The Air|2009| 출연 조지 클루니, 베라 파미가, 안나 켄드릭, 제이슨 배이트먼

‘라이언 빙햄’(조지 클루니)은 미국 전역의 해고 대상자들에게 해고 통보를 하는 해고 전문가다. 출장이 일상인 라이언은 천만 마일리지 달성이 목표로, 달성을 앞두고 출장지의 호텔 라운지에서 ‘알렉스’(베라 파미가)를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런데 집보다 비행기와 출장이 더 편한 그의 앞에, 온라인 해고 시스템 도입을 주장하는 신입사원 ‘나탈리’(안나 켄드릭)가 등장한다. 라이언은 실제 해고 현장에 대해 가르쳐주기 위해 나탈리와 함께 출장을 간다.

라이언을 보고 있으면 몇몇 가치가 상충하는 순간이 있다. 해고 통보를 업으로 삼으며 많은 이들에게 좌절을 안기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커리어를 이용해서 동기부여 강연을 하러 다닌다. 늘 출장을 다니느라 누군가의 곁을 안정적으로 지켜주는 건 불가능하지만, 알렉스가 자신의 사람이 되어주기를 바란다.

<인 디 에어> 트레일러

라이언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이 여러 가지 가치 사이에서 줄타기하면서 매 순간 선택을 해야 한다. 라이언에게 해고 통보를 받은 이들은 좌절의 순간에 다시 일어서는 걸 선택하고, 그 선택의 이유는 사랑하는 이들 덕분이라고 말한다. 집보다 출장지의 호텔이 더 익숙한 라이언에게 깊은 관계는 서툴 수밖에 없다. 힘든 선택의 순간에 아무도 옆에 없을 확률이 높은 라이언에게, 마일리지처럼 쌓인 외로움이 고통을 완화시켜줄 수 있을까.

 

<영 어덜트>

Young Adult|2011| 출연 샤를리즈 테론, 패튼 오스왈트, 패트릭 윌슨, 엘리자베스 리저

청소년 시리즈 소설 <영 어덜트>의 대필 작가인 ‘메이비스’(샤를리즈 테론). 메이비스는 전 남자친구인 ‘버디’(패트릭 윌슨)의 아이 사진을 받고, 그게 자신을 원하는 신호라고 생각하며 무작정 고향으로 내려간다. 고향에 내려와서 우연히 학교 동창인 ‘맷’(패튼 오스왈트)을 만나서 버디를 되찾겠다고 호언장담하지만, 버디의 아내 ‘베스’(엘리자베스 리저)를 비롯한 여러 상황으로 인해 관계를 예전처럼 돌리기가 쉽지 않다.

메이비스는 고향이 지긋지긋하다고 생각해서 떠났지만, 자신의 가장 화려했던 시절이 고향에서 머물던 과거라는 걸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가장 빛났던 시절을 함께 보낸 버디를 되찾으면, 자신에게도 황금기가 다시 돌아올 거라고 생각한다. 메이비스에게 고향에 돌아가는 건 실패를 의미하기에 부동산을 보러 잠시 온 거라고 가족에게까지 거짓말을 하고, 고향 사람들을 무시하면서도 그들이 자신을 우러러 봐주기를 바란다.

<영 어덜트> 트레일러

메이비스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드러내는 것에 서툴고, 상처받지 않기 위해 오히려 안하무인으로 군다. 자신을 한없이 잘난 사람으로 여기고, 고향에 머무는 이들을 실패한 사람으로 폄하한다. 맷의 여동생이 고향 사람들에 대해 욕을 해주며 메이비스를 위로해준 뒤에, 함께 도시로 가자고 하자 메이비스는 말한다. ‘넌 여기가 어울려’. 상처받지 않기 위해 상처 주는 삶에서 구원받을 방법은, 메이비스가 쓰는 소설이 아니면 나타나지 않을 거다.

 

<툴리>

Young Adult|2018| 출연 샤를리즈 테론, 맥켄지 데이비스, 론 리빙스턴, 마크 듀플라스

‘마를로’(샤를리즈 테론)는 아직 많은 걸 챙겨줘야 하는 첫째 딸, 정서적 문제로 좀 더 신경 써야 하는 둘째 아들, 이제 막 태어난 셋째 딸까지 육아 때문에 지쳐가는 중이다. 퇴근이 늦고 집에 와서도 게임만 하다가 잠드는 남편 ‘드류’(론 리빙스턴)는 육아에 전혀 참여하지 않는다. 그때 마를로의 오빠 ‘크레이그’(마크 듀플라스)의 소개로 야간 보모에 대해 듣게 되고, 처음엔 남의 손에 맡길 수 없다는 생각에 거절하다 결국 보모 ‘툴리’(매켄지 데이비스)를 부른다.

<영 어덜트>에 이어서 제이슨 라이트먼과 호흡을 맞춘 샤를리즈 테론은, 사회가 요구하는 ‘엄마’에 대한 많은 당위성 때문에 지쳐가는 마를론을 연기한다. 마를론은 자신에게 주어진 엄마의 역할을 소화하느라 점점 피폐해져 가고, 관객들은 마를론을 보면서 엄마 혼자 육아를 전담하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체험하게 된다.

“아이만이 아니에요. 당신도 돌보러 왔어요”라는 툴리의 대사는 많은 울림을 준다. 마를론은 엄마가 되고 난 뒤로 자신을 돌보는 것에 서툰 사람이 됐다. ‘엄마는 위대하다’는 명제는 결코 독박육아의 명분이 될 수 없다. 오히려 엄마 이전에 한 사람으로서 자신이 얼마나 힘든지 말할 수 있는 분위기가 되고, 주변 사람과 사회가 육아의 힘든 점에 대해 정확히 알고 함께할 필요가 있다.

<툴리> 트레일러

나 자신을 돌보지 않으면 우린 그 누구도 돌볼 수 없다는, 당연하지만 잊게 되는 사실에 대해 기억해야 한다. 마를론이 힘든 일상 안에서 자식들에게 행복을 쥐어짜서 주는 게 아니라, 자신도 여유 속에서 행복을 자연스럽게 나눌 수 있는 순간이 반드시 와야만 한다.

 

 

Writer

에세이 <나만 이러고 사는 건 아니겠지>, <달리다 보면> 저자. 좋아하는 건 영화, 여행, 음악, 문학, 음식. 특기는 편식. 꾸준한 편식의 결과물을 취향이라고 부르는 중. 취향을 바탕으로 창작활동을 하고 있다.
김승 인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