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부엉부엉>

Owl You Need is love│2016│감독 람지 베디아│출연 람지 베디아, 엘로디 부셰즈│83분

이 영화에는 역사상 전무후무한 커플이 등장한다. 부엉이 탈을 쓴 남자와 팬더 탈을 쓴 여자가 주인공이다. 그들은 어떤 사연으로 동물 탈을 쓰게 된 걸까? 남자가 탈을 쓰기 전으로 돌아가 보자. 그의 이름은 ‘로키’(람지 베디아). 30대 중반의 착하고 순수한 남자다. 키도 크고 덩치도 있고 외모까지 훈훈하다. 하지만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자존감이 낮다는 것. 그는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 고군분투하는 캐릭터. 지나친 배려심 때문에 사람들에게 도리어 무시당하는 존재다.

로키의 사무실 책상 위에는 구겨진 종이가 나뒹군다. 의자는 너무 높아 책상이 들릴 정도. 하지만 그는 불평불만 없이 동료들과 원만하게 지내려 노력한다
반면 회사 직원들은 그를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그들이 로키를 바라볼 때 표정은 대체로 이렇다.
 

몸에 꽉 끼는 수트. 구부정한 걸음걸이와 움츠린 어깨. 영화 초반은 존재감 없는 로키의 일상을 따라간다. 가령 그는 동료들이 본인을 빼놓고 회식하는 모습을 보거나 카페에서 주문 차례를 빼앗겨도 화를 내기는커녕 말 한마디 제대로 못 한다. 농구 동아리 시합에서도 열댓 살 먹은 소년에게 무시당하기 일쑤다. 원치 않게(?) 외로운 삶을 살아가던 로키. 어느 날, 이 남자에게 예상치 못한 사건이 일어난다.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아침. 그는 출근을 준비하다 소파 위에 제집처럼 앉아 있는 수리부엉이를 발견한다. 이 사실을 직장 동료들에게 알리지만 아무도 믿지 않는다. 부엉이를 사무실로 데려오겠다는 말까지 했건만 부엉이는 집 밖으로 나갈 생각이 없어 보인다. 설상가상으로 새로 온 인턴 직원에게 책상을 빼앗기고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자리로 강제 발령(?) 당한 로키. 이만하면 많이 참았다. 다음 날 로키는 부엉이를 대신해 부엉이 탈을 쓰고 출근한다. 그리고 그동안 참아온 울분을 터뜨리듯 제멋대로 행동하기 시작한다. (여기서 놀라운 사실은 다른 사람들이 로키가 부엉이 탈을 쓴 모습을 눈치채지 못한다는 것. 오히려 로키의 과격한 행동에 그제야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바로 그 날, 로키는 운명처럼 팬더 탈을 쓴 여자를 만난다.

부엉이 탈을 쓰고 군중 속에 고독을 느끼는 로키

이 영화의 원제는 'Hibou'이다. 프랑스어로 '부엉이'라는 뜻과 함께 '우울한 외톨이'의 의미를 지녔다. 영화는 제목과 마찬가지로 존재감 없는 로키가 부엉이를 계기로 조금씩 변화하는 과정을 그렸다. 부엉이 탈을 쓴 로키가 팬더를 발견하고 사랑에 빠진 이후 로키는 팬더 여인에게 자전거 타는 법이나 운동화를 신고 걷는 법을 가르쳐 주는 등 사소한 일상을 공유하며 행복을 느낀다. 그는 본인과 어울리는 사랑을 통해 자신감을 되찾는다.

팬더 양을 만나고 세상을 다 얻은 듯한 행복을 경험하는 로키
 

<사랑은 부엉부엉>은 다른 사람을 지나치게 배려하고 살기보다, 자신을 사랑하고 당당히 어깨를 펴고 살 때 남들이 나를 더 제대로 바라봐 준다는 메시지를 담은 영화다. 독창적인 소재에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스토리, 프랑스 영화 특유의 섬세한 감성과 다채로운 색감, 주옥같은 OST도 빼놓을 수 없다. 무엇보다 영화 속 등장 인물들이 주고받는 대사가 마음에 콕콕 박힌다. "탈은 누구나 다 써요. 혼자만 벗으려 하지 마요." "이제 당신도 어깨를 쭉 펴요." 어쩌면 우리도 살면서 한 번쯤 로키처럼 남 눈치를 보다 자책한 적이 있지 않나? 자존감이 낮은 사람에 대한 연민이 아닌, 그들을 향한 깊은 애정이 담긴 <사랑은 부엉부엉>은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넌지시 위로와 공감을 전한다.

 

[영화를 즐기는 팁] 부엉이와 팬더의 정체는? 

배우 엘로디 부셰즈와 람지 베디아 감독
 

<사랑은 부엉부엉>은 프랑스에서 코미디언, 배우, 각본가, 감독으로 활동하는 람지 베디아의 두 번째 장편영화다. 그는 이번 영화에서 기획과 각본, 연출은 물론 주인공 로키 역을 연기했다. 람지 베디아 감독은 우연히 팬더 탈을 쓴 남자가 나오는 치즈 광고를 보고 영감을 받아 영화를 제작했다고 밝혔다. 그는 평소 찰리 카우프만, 미셸 공드리, 쿠엔틴 듀피욱스, 스파이크 존스, 팀 버튼 감독의 팬이었다. 또한 자크 타티의 광팬이기도 했다. 언젠가 영화를 만들게 되면 이같은 감독들처럼 관객을 어디론가 데려갈 수 있는 초현실적인 영화들을 만들고 싶었다고. <사랑은 부엉부엉>에서 그가 연기한 로키 캐릭터엔 감독 본인의 성격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본인은 깨닫지 못했지만, 이 영화를 본 주변 사람들이 “주인공이 꼭 너 같아”라고 이야기를 해줘 출연을 결심했다고 한다.

팬더양은 누굴까? 그는 칼 라거펠트, 마크 제이콥스 같은 세계적 디자이너의 뮤즈이자 다프트 펑크(Daft Punk)의 멤버 토마스 방갈테르의 아내인 엘로디 부셰즈다. 세르주 갱스부르의 러브콜로 영화계에 진출한 엘로디 부셰즈는 1995년 세자르영화제 신인여우상을 시작으로 1998년 칸영화제 여우주연상, 유럽영화상 여우주연상, 1999년 세자르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연속 석권하며 연기력을 인정받은 26년 차 베테랑 배우. 그는 탈을 쓰고 연기한다는 것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단지 시나리오를 읽고 인간적인 매력이 느껴지는 로맨스 판타지물이라 바로 다음 날 출연을 결정했다고. 마지막 장면에서 팬더 복장 뒤에 숨겨진 그의 미모를 확인할 수 있다.

 

영화 <사랑은 부엉부엉>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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