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의 수식은 화려하다. 아시아 영화사 최고의 걸작, 대만 뉴웨이브의 기수 에드워드 양의 대표작, 러닝타임 3시간 57분의 대작. 한국에서는 2007년 부산영화제에 처음 공개됐고, 디지털 복원 작업을 거쳐 2017년 드디어 정식 개봉하기도 했다.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에 대한 세간의 찬사는, 긴 상영시간과 작품의 어두운 시대상을 감수해서라도 이 영화를 보고 싶게 만든다. 여기 작품을 즐기기 위한 6가지 키워드를 짚어봤다.

 

대만 뉴웨이브

스틸 Via imdb

에드워드 양 감독은 대만 뉴웨이브를 이끌었던 거장이다. 1960년대 누벨바그 운동이 장 뤽 고다르를 주축으로 영화계 변혁을 이끌었던 것처럼, 1980년대 동아시아에서는 허우 샤오시엔, 차이밍량, 에드워드 양 등이 차례로 대만 뉴웨이브를 주도했다. 이들은 서로 활발히 교류하며 외적으로는 사회 현실을 비판했고, 작품 내적으로는 소품 하나 허투루 배치하지 않는 화면의 디테일과 모든 장면이 긴밀하게 연결된 구성 등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과 비교되는 미학적 시도를 선보였다.

 

에드워드 양

스틸 Via imdb

원래 컴퓨터공학을 전공했던 에드워드 양은, 미국 유학생활 도중 독일 감독 베르너 헤어초크의 <아귀레, 신의 분노>(1972)를 보고 충격을 받아 영화계에 입문했다. 에드워드 양은 대만과 대만인의 현실을 영화에 담아내려 했고, 대만 근대사의 풍파를 몸소 겪은 그의 경험은 고스란히 영화의 재료가 됐다.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은 에드워드 양이 연출한 다섯 번째 작품이자, <타이베이 이야기>(1985), <공포분자>(1986)와 함께 ‘타이베이’라는 공간의 이야기를 담은 타이베이 3부작의 마침표를 찍는 작품이기도 하다.

 

살인사건

스틸 Via imdb

2007년 사망한 에드워드 양의 유작 <하나 그리고 둘>(2000)이 어린 인물을 다음 세대의 희망으로 삼는 영화라면,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은 그가 직시한 현실 속 청춘들의 어둠에 관한 영화다. 영화는 에드워드 양이 청소년 시절 접한 실제 사건을 소재로 삼았다. 1961년 14살 소년이 ‘고령가’(타이베이의 유명한 고서점 거리)에서 또래 학생을 칼로 찔러 죽인 살인사건으로, 중화민국 설립 이래 최초의 미성년자 살인 사건이었다. 그는 소년과 같은 나이에 접했던 이 사건을 마흔 살 넘어 영화로 만들어내며 당시 이해할 수 없었던 역사적 현실을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영화적 이야기로 재현했다.

 

소년

폭력과 살인이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의 핵심은 아니다. 주인공 ‘샤오쓰’(장첸)의 불안과 번민, 풋풋한 사랑 이야기가 영화를 이끈다. 1960년 대만은 일제 식민통치의 그늘과 국공 내전 이후 본토에서 건너온 사람들로 인해 혼란이 가중됐다. 급격한 도시화, 사상 대립, 세대 간 단절 등 다양한 사회적 문제가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다. 부모 세대의 불안은 자식에게 고스란히 이어졌다. 당시 청소년들은 자체적으로 폭력 조직을 만들어 서로에게 칼을 겨누었고 어른들은 이를 모르거나 모르는 척했다. 영화는 현실을 관조적 시선으로 펼쳐내고, 그로 인해 샤오쓰와 친구들이 겪는 혼란을 섬세하게 묘사했다.

 

A Brighter Summer Day

영화 전반부에서 샤오쓰의 어머니는 노점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일본군과 8년이나 싸워놓고 일본식 일본식 집에서 일본 노래나 듣고 있”는 현실을 푸념한다. 당대 팝송에 심취한 친구 ‘캣’(왕치찬)은 미성으로 엘비스 프레슬리의 노래를 부른다. 남겨진 것들과 흘러 들어온 것들. 토착인과 이주인들이 뒤섞여 함께 살아가지만 사람들은 그 속에서 반목과 고독에 허덕인다. 엘비스 프레슬리의 ‘Are Lonesome Tonight?’ 가사에서 차용한 영화의 영어 제목 ‘A Brighter Summer Day’처럼, 영화는 황폐한 삶 속에서 저마다의 눈부신 여름날을 품은 사람들을 그린다.

 

장첸

5남매 중 넷째라는 뜻에서 샤오쓰(小四)라고 불린 주인공의 본명은 ‘장첸(張震)’으로, 배우의 이름과 같다. 아버지와 형을 연기한 장국주와 장한은 장첸의 실제 아버지와 형이기도 하다. 영화에 처음 출연한 장첸은, 작품 속 샤오쓰와 달리 밝고 활달한 성격이어서 연기가 쉽지 않았다고 한다. 이후 장첸은 <해피 투게더>(1997), <와호장룡>(2000), 일대종사(2013) 등에 출연하며 스타 배우로 발돋움했다. 국내에서는 브라운 아이즈의 ‘벌써 일년’(2001) 뮤직비디오와 김기덕 감독의 <숨>(2007)에 출연한 바 있다.

 

Editor

정병욱 페이스북
정병욱 인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