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런 걸 해도 돼? 패션브랜드가?” 디젤이 광고를 내놓을 때면 사람들은 말한다. 하지만 놀랄 건 없다. 그게 바로 디젤 그 자체니까. 그렇게까지 해도 되나 싶은 일들을 벌이고, 그런 말을 해도 될까 싶은 메시지를 던진다. 감히 누구도 하지 못하는 일을 하는 것, 가지 못한 길을 가는 것. 디젤은 늘 그래왔다. 그리고 그것이 지금의 ‘디젤다움’을 만들었다. 그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디젤의 지난 광고 캠페인들을 모아봤다. 옷장 속에 디젤 티셔츠 한 장 없는 사람이라 해도 광고 속 디젤이 전파하는 철학에 공감하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디젤의 광고를 보고 나면 아마 마음속 저 깊이 디젤 로고가 박힌 무언가라도 하나 갖고 싶다는 마음이 스멀스멀 생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새로운 시대의 철학으로서도, 광고로서도 디젤의 광고 캠페인들은 꽤나 제 역할을 잘 해낸 셈이다.

 

2017 F/W 캠페인 ‘Go with the Flaw’

개성을 가져라. 평범함을 거부하라. 세상 모든 패션 브랜드들이 하는 이야기다. 세상 어느 패션 브랜드가 그저 그런 눈에 안 띄는 무난한 스타일을 가지라고 하겠는가. 2017년 9월, 디젤은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간다. 누가 봐도 개성 같은 개성 말고 결점처럼 보이는 것마저도 개성이 될 수 있다며, 완벽해지려 하지 말고 완벽하지 않음을 사랑하란다. 그렇게 들고나온 슬로건이 바로 “Go with the Flaw”. 해석하자면 ‘결점과 함께하라’, 혹은 ‘흠이 있음을 즐겨라’, ‘완벽하지 않음을 끌어안아라’ 정도가 되지 않을까. 디젤은 이 슬로건을 이내 행동으로 보여준다.

우선 디젤은 디젤 계정의 인스타그램에 그간 올렸던 이미지를 다 지우고 리셋해버린다. 완벽한 사진, 완벽한 그림, 완벽한 삶을 추구하는 인스타그램에 지쳐버렸다면서. 불완전한 새로운 시작을 위해 모든 것을 삭제해버렸단다. 그러면서 2017 FW 시즌 광고영상을 발표한다. 언뜻 보기엔 여느 패션 필름과 다를 바 없어 보이지만, 뭔가 이상하다. 특히 모델들이 그렇다. 개성이 넘치다 못해 하나같이 낯설기만 하다.

2017 F/W 광고영상 ‘Go with the Flaw’

물론 완벽함을 넘어서 엽기적으로 보이는 패션 필름들이 있긴 있었다. 이를테면 스파이크 존즈 감독의 겐조 향수 광고. 그래도 언제나 그렇듯 모델은 늘 아름다웠다. 하지만 디젤의 광고영상에 등장한 모델들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패션모델의 기준에 맞지 않는다. 일자 눈썹을 가지고 있고, 낡은 문신이 온몸을 뒤덮고 있으며, 사시이며, 한쪽 눈이 멀기도 했다. 괴상하게 큰 귀에 커다란 흉터도 있는가 하면 입안을 꽉 채운 교정기도 있다. 이렇듯 세상이 단점이라 말하는 온갖 특성들을 다 가지고 있다. 패션 브랜드의 모델인데 말이다.

‘Go with the Flaw’에 등장하는 모델들

디젤의 예술감독 Nicola Formichetti는 “독특함은 완벽함보다 아름답다”라는 말을 남겼다. 광고대행사 Publicis Italia는 “완벽한 것은 오히려 잊히기 쉽다. 이 광고를 통해서 자신의 특성을 세상이 비록 결점이라고 말한다 해도 그것을 자랑스럽게 내보이고, 인생이라는 롤러코스터의 맨 앞자리에 앉아 즐길 수 있는 용기를 가졌으면 한다”라고 말한다. 여기에 디젤의 창립자이자 CEO인 Renzo Rosso도 한마디 거든다. “완벽하지 않은 것이야말로 특별하고 돋보이는 것”이라고 말이다.

그간 칸예 웨스트, 마돈나, 퍼렐 윌리엄스, 리암 갤러거 등과 콜라보를 해왔던 감독 François Rousselet은 디젤의 창립자와 광고대행사와 예술감독의 이러한 생각들을 그러모아 하나의 영상으로 만들어냈다. 필름을 스카치테이프로 편집하는 눈 한쪽이 먼 남자와 영화 <나는 전설이다>를 연상시키는 끊어진 다리가 주는 기이하면서도 빈티지한 느낌. 거기에 빠지지 않는 영상미. 그 위로 <인셉션>의 OST로 익숙한 샹송의 여왕 Edith Piaf의 ‘Non, Je Ne Regrette Rien(아무것도 후회하지 않아)’가 흐른다. 영상을 보는 2분이 순식간에 사라진다. 완벽하지 않음을 사랑하라는 메시지를 던지면서 이토록 완벽할 수 있다니.

프랑스와 루셀레 감독(François Rousselet)은 이 영상을 필름으로 찍고 싶었다. 하지만 후반 작업 스케줄이 발목을 잡았다. 할 수 없이 Alexa mini로 찍은 후 필름을 모조리 현상해서 물리적으로 스크래치를 냈다. 영상에 입혀진 스크래치들은 후반 작업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닌 모두 진짜로 만들어진 것들이다. 그렇게 물리적으로 만들어진 결함은 영상이 표현하는 메시지에 덧입혀져서 하나가 된다. 그래놓고 영상 끝에는 디젤의 브랜드 슬로건 ‘For successful living’이 빼먹지 않고 등장한다. 이 슬로건은 디젤이 줄곧 써오던 것인데, 이 영상 마지막에 붙으니 영상 전체의 메시지에 아이러니가 더해진다. 성공적인 인생을 살고 싶다면, 못생겨지고, 세상의 기준에서 벗어나라니. 과연 디젤답다.

2018 S/S 광고영상 ‘KEEP THE WORLD FLAWED’

디젤의 2018년 SS 시즌 광고영상도 “Go with the Flaw’ 캠페인의 연장선이다. “Go with the Flaw’ 영상과 같은 감독의 작품인데 이번엔 스토리와 유머가 조금 더 더해졌다. 각자의 신체 결함을 감추고 만난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 마지막 반전과 함께 ‘결점은 반드시 이긴다’라니. 역시 이런 유머코드조차 참으로 디젤스럽다.

 

2018 ‘Go with the Fake’

출처 – Truly Deeply 
사진 - Dianna McDougall for Adweek 

뉴욕 차이나타운 근처 캐널 스트리트에 노점상 하나가 오픈했다. 캐널 스트리트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특별할 것 없는 노점상. 선반 가득 옷을 무더기로 쌓아놓고 주변 다른 노점상처럼 짝퉁을 판다. 후드티는 60불, 티셔츠는 20불. 주로 취급하는 브랜드는 ‘DEISEL’. 진짜인 척이라도 좀 하지 DEISEL이라니. 대문짝만하게 스펠링 틀린 로고가 박혀 있다. 아무리 호객을 해도 사는 사람 하나 없어 보이던 이 노점상은 며칠 후 1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캐널 스트리트 바깥까지 줄을 서서 들어가는 가게가 되었다. 2018년 2월 8일, 디젤이 실은 이 모든 게 디젤의 새로운 컬렉션이라고 밝혔기 때문이다. “The Most Original Knock-Offs You’ll Ever Wear”이라니. 오리지널 짭퉁 리미티드 에디션이라고 해야 할까, 세상 단 하나뿐인 디젤의 노점상 컬렉션이라고 해야 할까.

‘Go with the Fake’ 캠페인 공표

노점상에 있던 1000개의 제품들은 ‘DEISEL’이라고 쓰인 로고 빼곤 전부 진짜 디젤 제품과 다를 바가 없었다. 디젤의 수석 디자이너들이 디자인하고 디젤의 공정을 그대로 따라서 만든 것들. 한편, 노점상은 예정했던 날짜보다 앞당겨 문을 닫아야 했다. 물건들이 다 팔려버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곧 노점상에서 60불에 팔렸던 디젤 옷은 eBay에서 500불에 되팔렸다. 비싸다고 생각하면 오산. 이 노점상 컬렉션의 옷들은 없어서 못 팔 지경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디젤은 2018년 뉴욕 패션위크에서 최고로 주목받는 브랜드가 되었다. 그 어떤 패션 브랜드도 하지 못했던 일을 디젤은 해냈다. 디젤 짝퉁으로.

‘모조품이 꼭 브랜드를 무너뜨리는 것만은 아니지 않을까. 모조품을 이용해서 브랜드를 끌어올릴 수도 있지 않을까” 디젤의 광고대행사 Publicis는 패션 브랜드들의 골칫거리인 모조품 문제를 역이용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이 아이디어를 디젤에 제안했는데, 천하의 디젤도 처음엔 조금 주저했다고 한다. 고가의 패션 브랜드가 나서서 자신들 제품의 모조품을 만들어서 팔다니. 하지만 이건 디젤이니까 가능한 마케팅. 이 마케팅은 용감한 광고대행사와 그보다 더 용감한 광고주의 결단으로 결국 세상 밖에 나왔다. 물론 노점상을 확보하기 위한 협상을 하느라 6개월이나 걸리긴 했지만.

디젤 창립자 Renzo Rosso는 이 노점상 컬렉션을 통해 “짝퉁이냐 진짜냐와 상관없이 조금의 흠이 있더라도 자기 스타일에 부합하면 용감하게 구매하는 고객에게 선물을 하고 싶었다”라고 말한다. 이것이 디젤의 이벤트인지 모르고 용감히도 DEISEL을 구매했던 사람은 지금쯤 아마 그 선물을 만끽하고 있을 것이다. 패션 브랜드가 이런 짓을 벌였다가 노점상들이 모조품의 모조품을 만들면 어떻게 하나 괜히 디젤을 걱정해줄 필요는 없다. 디젤은 이미 DEISEL의 상표권까지도 가지고 있는 상태니까!

‘Go with the Fake’ 캠페인 설명

 

2010 S/S 캠페인 ‘Be Stupid’

2010년은 바야흐로 스마트의 시대였다. 2007년 처음 출시된 아이폰을 필두로 스마트폰이 보편화되기 시작했고 스마트폰의 매력에 빠져든 사람들은 저마다 ‘스마트’를 외치고 다녔다. 스마트홈, 스마트 티비, 스마트 카까지. 단어 앞에 스마트를 붙이는 게 유행처럼 번졌다. 그리고 바로 그런 시대의 흐름 앞에 디젤이 새로운 캠페인을 런칭했다. “Be Stupid”(멍청해져라) 캠페인이었다.

“Be Stupid”라니. ‘어떻게 하면 더 스마트해질까?’가 시대의 화두인 와중에 이 무슨 트렌드를 역행하는 소리인가. 디젤은 ‘Stupid’라는 단어에 과감함, 무모함, 용기, 즐거움 등의 의미를 덧씌웠다. 그러다 보니 대조적으로 스마트가 지루하고 고루해 보인 건 당연한 결과. ‘Stupid’라는 단어는 디젤 덕분에 새로운 위상을 가질 수 있었다.

디젤은 주장했다. Stupid(멍청)해지는 걸 두려워한 나머지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거나 행복해지지 않는다면 그거야말로 Stupid한 일이라고. 그리고 디젤은 이러한 자신들의 철학을 공표하는 영상을 전 세계에 소개했다. 오직 화려한 타이포그래피만으로 이루어진 영상이었다. 패션 브랜드가 자신들의 패션을 보여주기에 앞서 철학을 보여주다니. 디젤은 광고가 아니라 사회운동을 하고 있는 셈이었다.

디젤 ‘Be Stupid’의 철학을 소개하는 영상

‘Be Stupid’ 철학을 소개하는 영상 속 문장 한 줄 한 줄은 젊은 세대의 새로운 만트라가 되었다. 지성을 좇던 많은 기성세대들이 결국엔 그저 그런 지루한 삶을 살게 되는 걸 두 눈으로 목격한 젊은 세대들에게는 더 이상 ‘아는 것이 힘’이 아니었다. 스마트해지기 위해 해야 하는 일들은 오히려 그들을 옭아맸다. 그러니 멍청해지라는 디젤의 주문이야말로 그들 마음속 가려운 곳을 긁어준 셈이다.

멍청해지라는 디젤의 철학은 화려한 타이포와 키치적이고 생동감 넘치는 사진이 결합된 인쇄와 옥외물의 형태로 곳곳에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었다. 어느 정도의 영향력이었는가 하면 프랑스 칸 광고제에서는 옥외광고 부문 그랑프리를 받고 영국에서는 지나치게 선정적이고 반사회적이라는 이유로 광고 게재를 금지당할 정도였다.

디젤 2010 S/S 카탈로그

디젤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자신이 충분히 Stupid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모아서 디젤의 2010 S/S 영상 카탈로그에 출연시키는가 하면 ‘Analog is Stupid’(아날로그는 멍청하다)를 모토로 독일에서 ‘Facepark’ 이벤트도 벌였다. 2010년 6월 20일 베를린에서 열린 Facepark 이벤트는 페이스북의 아날로그 버전이자 아웃도어 버전이었다. 사람들은 페이스북 프로필과 담벼락을 연상시키는 마분지를 들고 공원으로 모여들었다. 페이스북에서 늘 하는 행위를 오프라인에서 직접 몸으로 경험해 본 것이다. 아날로그가 디젤 말대로 멍청(Stupid)한지는 몰라도 재미있다는 것만은 확실히 전달한 셈이다.

 ‘Facepark’ 이벤트 설명

 

2011 S/S 캠페인 ‘Diesel Island’

Diesel Island 소개 영상

고작 ‘Be Stupid’ 캠페인에서 멈췄다면 그건 디젤이 아니다. 디젤은 2011년 한술 더 뜨는 캠페인을 벌인다. ‘Be Stupid’의 철학을 내세운 새로운 국가를 하나 설립한 것이다. 이름은 ‘디젤 아일랜드(Diesel Island)’. 여권, 역사, 국가, 법, 외교정책도 갖추고 있는 엄연한 나라이지만 사회주의나 자본주의와 같이 ‘주의’로 끝나는 어떤 이데올로기도 없다. 디젤 아일랜드는 그저 용감한 이들의 집이자 바보들의 땅. ‘Be Stupid’의 정신에 공감하는 이라면 누구나 이곳의 시민이 될 수 있으며 나아가 페이스북을 통해 이 나라의 법과 공휴일과 국가를 만드는 데 참여할 수 있다. 심지어 디젤 아일랜드가 요구하는 일련의 활동을 하면 하루 동안 대통령이 될 기회까지 주어진다. 대통령이 되면 뭐라고 트윗을 하건 대통령의 트윗이라며 디젤 아일랜드 공식 트위터 페이지와 페이스북 페이지에 업로드되는 영광도 누린다.

Diesel Island 여권
Diesel Island의 국가
Diesel Island의 역사

디젤 아일랜드 웹사이트는 디젤 아일랜드를 둘러볼 수 있는 거리뷰부터 사이트 배경음악을 고를 수 있는 해적 라디오 방송국까지 갖췄다. 유튜브에는 디젤 아일랜드의 역사와 국가를 소개하는 여섯 개의 영상도 업로드되었다. 디젤 아일랜드가 어떻게 운영되는 나라인지 더 자세히 파고들수록 우리는 헤어나올 수 없게 된다. 다음은 디젤 아일랜드 웹사이트에 소개된 내용이다. 읽다 보면 이보다 더 디젤스러울 수 없다.

국토안보부 디젤 아일랜드는 모든 사람을 환영한다. 그들은 벽을 세웠지만 높이는 0.5m밖에 되지 않아 모두가 들어갈 수 있다.
정부 성추문에 연루될 가능성이 큰 사람을 지도자로 선출한다.
사회적 이슈 그들은 모든 종교적인 휴일을 축하하기 때문에 아무도 소외감을 느끼지 않는다.
산업 디젤 아일랜드는 성적 에너지의 가장 큰 수출국이다.
지속가능성 물을 절약하기 위해 디젤 아일랜드의 개척자들은 무리를 지어 샤워를 한다.

온라인상에서만 디젤 아일랜드를 경험할 수 있는 건 당연히 아니다. 디젤이 어떤 브랜드인데! 이 캠페인이 시작되자마자 전 세계의 디젤 매장들은 모두 디젤 아일랜드의 공식 대사관이 되었다. 여느 대사관이 그렇듯 디젤 매장에선 디젤 아일랜드의 여권도 취득할 수 있다. 이렇다 보니 어느 순간 사람들은 자신이 실제 디젤 아일랜드라는 섬나라의 일원이 된 느낌을 받는다. 온라인에서도, 오프라인에서도 말이다.

이 모든 캠페인 활동의 구석구석에는 2011년 S/S 시즌 디젤의 제품들이 숨어있다. 영상 속 개척자들이 아무렇게나 입고 있는 재킷이, 웹사이트 속 디젤 아일랜드 소개 이미지에 등장하는 청바지가 바로 디젤의 신상품들. 영리하다 못해 무서울 지경이다. 과연 디젤답다.

 

다음엔 또 무슨 짓을 벌일까? 상상이 가지 않는다. 디젤이 하는 일이라면 분명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일 테니까. 그러니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기대하는 것뿐. 때가 되어 디젤이 준비한 그 무언가가 세상 밖으로 나왔을 때 우리는 그저 즐기면 된다. 멍청해지라는 철학이, 완벽하지 않아도 좋다는 위로가 그랬듯이 말이다.

 

 

Writer

광고회사 카피라이터. 카피 쓴다는 핑계로 각종 드라마, 영화, 책에 마음을, 시간을 더 쓰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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