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네사 벨(Vanessa Bell), 버지니아 울프(Virginia Woolf)

걸작이란 혼자서 외톨이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니까요. 그것은 오랜 세월에 걸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공동으로 생각한 결과입니다.

그래서 다수의 경험이 하나의 목소리 이면에 존재하는 것이지요.

- 버지니아 울프, <자기만의 방> 중에서


‘창작’을 위한 과정이란 결국 외로운 법이다. 우리는 ‘자기만의 방’에 틀어박혀, 문을 걸어 잠그고, 인고의 시간을 견뎌야만 뚜렷한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창작이란 혼자 방 안에 들어앉아 있기만 해서는 결코 탄생할 수 없다. 다른 여러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다양한 인간관계와 경험들을 쌓아야만 그것을 바탕으로 더 다양한 이야기들을 자신의 창작물에 녹여낼 수 있는 법이니까. 20세기 초의 대표적인 페미니즘 작가이자, 특유의 ‘의식의 흐름’이란 실험적인 기법을 통하여 현재까지도 영미 문학계에서 중요한 작가로 손꼽히는 버지니아 울프 역시도 그러했다.

1904년 저명한 학자이자 비평가였던 아버지 레슬리 스티븐의 사망 이후 버지니아 울프와 그의 언니이자 화가였던 바네사 벨은 영국 런던의 블룸즈버리 지역으로 이사하게 된다. 그후 케임브리지에 진학했던 형제 토비가 연결고리가 되어 케임브리지 대학 출신의 지식인, 예술가들과 인연을 맺는다. 1906년부터 1930년경까지 소설가 에드워드 포스터, 버지니아 울프, 화가 덩컨 그랜트, 바네사 벨, 미술평론가 로저 프라이, 경제학자 존 케인스 등 다양한 구성원으로 이루어진 이 모임은 훗날 ‘블룸즈버리 그룹’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으며, 그들은 매주 목요일마다 거실에 함께 모여 예술, 정치, 철학에 관하여 열띤 토론을 하였다. 느슨하면서도 창조적이었던 그룹 활동은 20세기 모더니즘 사조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들 중에는 빅토리아 시대 말기, 여성에 대한 수많은 사회적인 차별이 존재하던 와중에도 자신들의 삶과 예술을 위해 치열하게 살아갔던 버지니아 울프와 바네사 벨, 두 자매가 있었다. 이들의 삶을 자세히 들여다보자.

Vanessa Bell, <Self-Portrait>

1907년 바네사는 미술 비평가였던 클라이브 벨과 결혼한다. 그들의 결혼은 프랑스의 작가 시몬 드 보부아르와 사르트르의 계약 결혼 관계와 흡사하면서도 조금 달랐는데, 법적 결혼을 통해 서로를 유일한 배우자로 인정하되 서로의 다자간의 연애를 허용하는 개방 결혼(Open Marriage)의 형태를 유지하였다.

정신적으로 의지하던 언니 바네사의 결혼으로, 1912년 버지니아 역시 블룸즈버리 그룹의 일원이었던 평론가 레너드 울프와 결혼하였다. 그들의 관계는 부부 관계라기보다는 우정의 관계에 가까웠다. 결혼 전 버지니아는 두 사람 사이에는 일체의 남녀 관계가 없을 것이며, 레너드가 공무원이라는 직업을 포기하고 자신의 작품 활동을 도울 수 있도록 출판사를 차려줄 것을 요구했다. 이후 30여 년간 레너드는 버지니아의 작품 활동을 위해 헌신하였다.

이처럼 두 자매의 결혼 생활은 완연히 상반되었으나, 각자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고 시대를 앞서는 사고방식을 가졌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진다.

바네사 벨이 살았던 찰스턴 하우스(Charleston house)

1913년부터 바네사 벨은 오메가 공방(Omega Workshop)을 운영하며 19세기 후반 미술공예운동의 흐름을 계승하여, 예술을 실제 생활에 응용하는 새로운 시도를 거듭하였다. 주로 회화와 장식미술 등의 결합을 추구하였으며 이러한 시도는 직물, 가구, 도자기, 공예품 등의 형태로 탄생하였고, 이는 ‘오트 쿠튀르’ 같은 파리의 패션 실험을 훨씬 앞선 시도로 평가받는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여행하고 빈둥거리며 세계의 미래와 과거를 성찰하고 책을 읽고 공상에 잠기며 길거리를 배회하고 사고의 낚싯줄을 강 속에 깊이 담글 수 있기에 여러분 스스로 충분한 돈을 소유하게 되기 바랍니다.

- 버지니아 울프, <자기만의 방> 중에서


같은 해인 1913년 레너드 울프와의 결혼 이후 이전보다 정신적으로 안정을 찾은 버지니아 울프는 자신의 첫 소설 <출항(The Voyage Out)>을 탈고하였고, 1915년 정식으로 출간하게 된다. 그는 1910년 당시 스물아홉의 나이까지 작가가 되지 못한 자신에 대한 자괴감을 토로하기도 했다. 하지만 데뷔작 이후 꾸준한 작품 활동으로 세간의 인정을 받았고, 여전히 블룸즈버리 그룹의 일원으로서, 또한 남편 레너드와 공동 창립한 호가스 출판사의 운영 등을 통하여 활발한 창작 활동을 이어간다. 이후 1925년작 <댈러웨이 부인(Mrs. Dalloway)> 및 1929년 의뢰받은 ‘여성과 픽션’이라는 제목의 강연 내용을 <자기만의 방(A Room of One's Own)>이라는 제목의 책으로 출간하며 그는 대표적인 페미니즘 작가로 인정받는 한편 여러 다양한 강연을 이어간다.

한편 언니인 바네사 벨은 장식미술 외에 회화 작업도 꾸준히 이어갔는데, 그의 작품들은 주로 세잔과 마티스 등의 현대적인 감각 및 입체주의 사조의 영향을 받아 강렬한 색채와 여러 가지 형태를 기하학적으로 표현하는 스타일을 추구하였으며, 추상주의에서 영향을 받은 흔적도 나타난다.

Vanessa Bell, <The Conversation at Asheham House (1912)>

바네사 벨은 자신의 주변 인물들의 모습을 많이 그렸는데, 이 그림은 블룸즈버리 그룹의 회원들이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다.

Vanessa Bell, <The Tub (1917)>

세잔, 마티스, 드가 등의 영향으로 그려진 것으로 보이는 목욕하는 여성의 모습은 다른 남성 화가들이 그린 것처럼 그림 속 여성의 나체가 성적 대상으로서 두드러지기보다는, 머리를 땋으며 아래를 내려다보는 시선을 통하여 지금 그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더 궁금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뚜렷한 차별성을 가진다.

Vanessa Bell, <Virginia Woolf (1911-1912)>
Vanessa Bell, <Virginia Woolf in a Deckchair (1912)>

또한, 그는 자신의 동생인 버지니아 울프의 초상화를 여럿 그리기도 하였는데, 자매인 그들의 관계가 반영되어 바네사의 그림 속 버지니아 울프는 뜨개질을 하거나 책을 읽는 등 무척 조용하고 일상적인 모습으로 담겨있다.

영화 <디 아워스(The Hours)>(2003)에서 그려진 버지니아 울프의 모습

1939년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전쟁 상황에서 발생하는 불편과 고통, 가까운 사람들의 연이은 죽음 및 유대인인 남편 레너드 울프에게 가해지는 나치의 직접적인 위협 등에 의하여 버지니아 울프는 정신적인 불안증세가 점차 악화되었다. 그러던 그는 1941년 3월 28일 자신의 주머니에 돌멩이를 가득 집어넣고 강물로 들어가서 스스로의 삶을 자신의 결단을 통하여 마감하였다. 서재에는 남편과 언니인 바네사 벨에게 남긴 두 통의 유서가 남아있었다.

 

Writer

서울에서 살아가는 생활인이자,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노래로 지어 부르고, 여기가 아닌 어딘가 다른 낯선 세상을 바라보며 사진을 찍는 작업자. 다른 사람들의 작업을 보고, 듣고,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한다. '유유'는 한자로 있을 '유'를 두 번 써서 '존재하기에 존재한다'는 뜻으로 멋대로 사용 중. 2018년 9월부터 그동안 병행 해오던 밴드 '유레루나' 활동을 중단하고, 솔로 작업에 더 집중하여 지속적인 결과물들을 쌓아나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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