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 하드밥의 중흥기를 이끌며 재즈 명반의 산실로 군림했던 블루노트는, 1965년 리버티 레코드(Liberty Records)로 인수되며 새로운 주인을 맞았다. 경영권을 넘겨준 창립자 알프레드 라이언은 자신이 일군 회사에서 2년간 더 일하다 결국 떠났고, 그를 대신해서 회사를 경영한 동업자 프란시스 울프는 1972년 병으로 사망했다. 알프레드 라이언과 함께 회사를 이끌던 듀크 피어슨(Duke Pearson) 역시 같은 해 회사를 떠나며, 블루노트의 전성기를 이끌던 올드보이는 모두 사라졌다. “사자와 늑대의 왕국”은 이제 전설로 남은 것이다.

블루노트의 1964년 히트곡 허비 행콕의 'Cantaloupe Island'가 서막을 장식했다.

1970년대 들어 록과 디스코가 대중음악의 대세로 자리잡으며, 재즈는 날이 갈수록 위축되었다. 블루노트 역시 다른 재즈 레이블처럼, 록과 소울을 버무린 크로스오버 음반을 기획하여 어려운 상황을 타개하려 했으나 역부족이었다. 음반 산업의 재편이라는 격랑에 휩쓸리며, 블루노트는 1979년 EMI 산하로 편입되었다. EMI는 수년째 활동을 멈추고 폐업 직전에 있던 블루노트를 다시 살리기로 결정하고, 콜럼비아 레코드에서 재즈 부문을 성공적으로 이끈 브루스 런드발(Bruce Lundvall)을 구원투수로 영입했다.

블루노트가 발굴한 신성 기타리스트 스탠리 조던(Stanley Jordan)의 ‘Jumpin’ Jack’

블루노트는 재탄생을 기념하여 단 하루 밤의 특별공연을 기획했다. 블루노트와 연결고리가 있던 정상급 재즈 뮤지션 30여명이 뉴욕의 역사적인 공연장 타운 홀(Town Hall)로 모여 들었다. 아트 블레키, 지미 스미스, 허비 행콕, 바비 허처슨, 론 카터, 맥코이 타이너, 프레디 허버드, 조 헨더슨 등 재즈를 대표하는 쟁쟁한 멤버들이었다. 1985년 2월 22일 3시간 넘게 계속된, 유례가 없던 올스타 재즈 공연은 블루노트의 기획력과 기술력을 바탕으로 비디오와 오디오로 고스란히 기록되었다.

블루노트의 소중한 유산 아트 블레키 콤보의 히트곡 ‘Moanin’’

이 날 공연은 <One Night with Blue Note>라는 제목의 비디오로 편집되어 발매되었고, 3시간 분량의 전체 공연은 <One Night with Blue Note Preserved>란 제목의 네 장 분량 음반으로 발매되었다. 비디오는 2003년에 DVD로 재발매되어 오늘 날까지 유통되고 있다. 특히 재즈 연주자들의 표정과 손을 클로즈업하거나, 연주자 서로 간의 눈짓과 손짓을 놓치지 않고 영상에 담은 것으로 유명하다. 존 좁슨(John Jobson) 감독은 세심한 리허설과 사전 준비를 통해 1985년의 재즈 음악을 가감없이 영상으로 담아 전한 것이다.

테너 색소폰(Stanley Turrentine), 오르간(Jimmy Smith), 기타(Kenny Burrell) 콤보의 ‘Scratch My Back’

어린 시절 용돈을 모아 블루노트 음반을 열정적으로 사 모으던 브루스 룬드발. 대학 졸업 후 블루노트로 무작정 찾아가 알프레드 라이온을 만났으나 신입사원을 채용할 여유가 없다며 거절당했던 그는, 25년간 블루노트의 대표로 재직하면서 어린 시절의 꿈을 이룬다. 노라 존스와 같은 신예 스타를 발굴하고 블루노트의 옛 음반 카탈로그를 CD로 재발매하면서 최고의 재즈 전문 레이블의 영광을 되찾았다. 오늘 날 블루노트는 EMI를 인수한 유니버설 뮤직 그룹 산하에 소속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