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탈 코르셋 운동만 있을까? 그동안 여성들과 달리 남성들 사이에서 ‘남성다움’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은 보기 어려웠다. 기존 성별 고정관념을 넘나드는 젠더리스 패션도 존재했지만, 트렌드를 넘어 아예 남성다움 자체에 문제를 제기하는 흐름은 드물었다.

패션 디자이너 마크 제이콥스의 치마 차림 패션 Via thexstylez

탈 코르셋 다음의 흐름이 될, ‘탈 맨박스’에 대한 다양한 시도와 상상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1. 맨박스란?

토니 포터 맨박스 ‘TED’ 강연 Via 유튜브 캡쳐

맨박스란 가부장제에서 남성에게 부과되는 ‘남성다움’에 대한 억압이다. ‘남자가 쉽게 울어서는 안 된다’, ‘계집애처럼 굴지 말아야 한다’ 등이 있다. 하지만 반대로 뒤집어 보면 이는 ‘여자는 쉽게 운다’, ‘계집은 열등한 존재’라는 뜻으로, 남성다움에 대한 강조는 결국 여성다움에 대한 비하다. 남성이 맨박스에서 벗어나는 일은 가부장제의 특권을 조금 내려놓는 대신, 남성 자신과 여성 모두를 근본적으로 이롭게 하겠다는 움직임이다.

주의할 것은 ‘탈 맨박스’와 일부 남성들이 주장하는 ‘탈 갑옷’ 운동은 다르다는 점이다. ‘갑옷’의 사례들로는 사무실 정수기 생수통 갈기, 무거운 짐 들기가 있는데, 무엇보다 이러한 ‘수고’들에 대해 여성들이 인정해주기를 바라는 심리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2. 치마 입은 남성들

치마를 입은 남학생들 Via swns

남성다움은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분홍색이 남성의 색에서 여성의 색으로 바뀐 역사가 채 100년도 되지 않았다는 것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인위성의 폐해 중 하나는 ‘불편함’이다. 그래서 ‘탈 맨박스’도 이러한 불편함을 자연스럽게 만드는 데서 시작할 수 있다.

2017년 영국 잉글랜드에서 30여 명의 중학교 남학생들이 치마를 입고 등교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이 학생들은 날씨가 너무 더운데도 반바지 착용을 불허한 학교에 대해 시위를 벌이는 의미로 치마를 입었고, 학교는 결국 복장 방침을 바꿨다.

미국 록 뮤지션 커트 코베인의 치마 차림
2015년 '남자라면 치마를 입어라' 시위를 벌인 아르헨티나 남성들
2015년 '나도 치마를 입었으니 성폭행해 봐라'는 시위를 벌인 터키 남성들

영국 중학교 남학생들의 치마 차림이 남성 자신의 편리함을 위한 것이었다면, 남녀평등이라는 가치를 위해 치마 차림을 한 남성들의 움직임들도 있다.

2015년 아르헨티나에서는 여성에 대한 성폭력을 규탄하기 위해 ‘남자라면 치마를 입어라’는 슬로건을 내건 남성들의 시위가 있었다. 사회사업가이자 인권운동가로 시위에 참가한 사울 가이탄은 "남자는 바지, 여자는 치마를 입어야 한다는 문화가 여성을 차별하는 대표적인 경우"라며 "여성 대상 살인은 남성우월주의가 근본적인 이유"라고 말했다. 또 로만 마실리라는 감독은 “가부장적 사회는 불행하다. 여자가 불행한 사회에서는 남자도 행복할 수 없다”고 말했다.

같은 해 터키에서는 한 여성의 죽음을 두고 ‘미니스커트를 입은 탓’이라는 여론이 일자 남성들이 치마를 입고 SNS에 인증한 운동도 있었다. ‘나도 치마를 입었으니 성폭행해 봐라’는 문구로, 옷차림이 성폭력의 원인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이들 나라뿐 아니라 네덜란드, 인도 등지에서 이와 비슷한 이유로 남성들이 나서 치마를 입은 움직임들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3. 유리 천장, 그리고 유리 비상계단

SBS 드라마 <불량주부>에서 남성 전업주부 역할을 맡은 배우 손창민

치마 시위가 일회성이었다면, 아예 근본적으로 성별 역할에서 벗어나려는 상상들도 있다.

여성학자이자 <아내가뭄>의 저자 애너벨 크랩이 주장한 “남성에 대한 ‘비상 유리계단'도 깨트려야 한다”가 대표적이다. 남성들이 전업주부로 일해도 떳떳한 사회여야 가사노동에 대한 진정한 ‘평등한 분담'이 이뤄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Via msccom 블로그

이외에도 ‘남자도 얼마든지 눈물 흘릴 수 있다’며 자신의 감정을 가감 없이 드러내고, 여성보다도 관계와 상대의 기분에 대해 민감할 수 있는 감수성을 기르는 등 남성 자신이 더 자유롭기 위해 개척할 영역은 무궁무진하다. 앞으로 탈 코르셋뿐 아니라 남성들의 움직임이 함께 일어나기를 바란다.

‘Boys, Keep Calm and get out of the Man box.’

 

필자소개
DO WOORI(도우리)
지리멸렬하게 써 왔고, 쓰고 싶습니다. 특히 지리멸렬한 이미지들에 대해 쓰고 싶습니다. 사진이나 미술 비평처럼 각 잡고 찍어낸 것이 아닌, 그 각이 잘라낸 이미지들에 대해. 어릴 적 앨범에 붙이기 전 오려냈던 현상 필름 자투리, 인스타그램 사진 편집 프레임이 잘라내는 변두리들과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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