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 부끄러움을 아는 것이 바로 성장이야!”

어떤 이는 성장에 대해 이렇게 정의한다. 여기에 ‘무력함’이라는 한가지 단어를 더 추가하고 싶다. 성장은 결코 쉽지 않다. 그것은 과거의 나를 탈피함과 동시에, 미래의 나를 일갈해야 하는 고통스러운 작업임이 틀림없다. 부끄럽고 무력한 나를 넘어, ‘더 나은 나’로 확장하는 것. 그래서일까, 우리 인생 속 성장의 기록에는 곳곳에 눈물 자국들이 찍혀 있다.

성장의 과정이 너무 고통스럽기 때문에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타인의 성장 서사를 통해 힌트를 얻고 싶어 한다. 그것이 드라마, 영화, 소설 등 어떤 장르를 막론하고 ‘이야기’가 있는 모든 것에서 ‘성장 서사’를 찾을 수 있는 이유일 것이다. 그리고 여기, 고통스러운 성장의 순간들을 환상적으로 재현한 문학 작품들이 있다. 환상으로 나타난 그 고통스러운 성장이 우리에게 어떤 위안을 주는지 느껴보자.

 

<스켈리그>

데이비드 알몬드 저 | 김연수 역 | 비룡소 | 2002.01.14

<스켈리그>에는 어린 소년, ‘마이클’이 등장한다. 마이클은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들이 ‘망가지고 있다’라고 생각한다. 이제 갓 태어난 어린 여동생이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고, 소년은 이 작은 아기가 품은 죽음의 그림자에 두려움과 공허, 허망을 느낀다. 마이클의 부모님은 아기를 돌보느라 여념이 없고, 그들이 새로 이사한 집은 여기저기 망가져 있다. 이 모든 상황 속에서 마이클은 혼란을 느낀다. ‘망가지고 있는 것들’ 사이에서 어린 소년은 허둥대고 불안해한다.

어느 날, 마이클은 더러운 차고 구석에 몸을 웅크리고 ‘죽어가고 있는’ 한 남자를 발견한다. 소년은 더러운 행색의 영락없는 거지꼴을 한 남자를 위해 음식을 가져다준다. 죽음에 대한 뼈저린 무력함을 느낀 마이클은, ‘죽어가고 있는’ 남자를 도저히 못 본 척 지나칠 수 없었던 것. 그는 최선을 다해 그가 살아날 수 있도록 돕는다. 그러던 와중, 마이클은 학교에 다니지 않고 홈스쿨링을 하는 ‘미나’라는 여자아이를 만난다.

드라마 <스켈리그> 트레일러

<스켈리그>는 죽어가는 여동생을 통해 삶과 죽음의 경계를 알게 된 한 소년의 성장 기록을 보여준다. 타인의 죽음 앞에 무력한 소년은 그 상황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고, 그의 이런 행동은 결국 어떠한 성장과 보상으로 작은 기적을 일으킨다. 망가진 세상을 마이클은 어떤 방식으로 고쳐나갈 것인가.
아름다운 성장소설이라는 극찬을 받은 <스켈리그>는 그 작품성을 인정받아 영국에서 드라마로 제작되기도 했다.

 

<리버보이>

팀 보울러(소설가) 저 | 정해영 역 | 놀 | 2007.10.20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다시는 만날 수 없다는, 그 영원한 이별을 받아들이는 순간. <리버보이>의 ‘제스’는 자신 인생의 버팀목이자, 영원한 사랑이라고 믿었던 할아버지가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죽음의 문턱에서 겨우 기력을 되찾은 할아버지는, 제스에게 특별한 여행을 제안한다. 할아버지는 자신이 그리던 ‘리버보이’라는 그림을 완성하려 강가에서 그림을 그리고, 제스는 그 옆에서 수영하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그러다 강에서 한 소년을 만나게 되는 제스는, 알 수 없는 그 소년을 ‘리버보이’라고 부른다. 어느 날, 리버보이는 제스에게 함께 수영하면서 ‘바다’로 나가자고 제안한다.

‘강은 바다로 가는 도중 돌부리가 채여도, 멈추는 법이 없다.’

리버보이가 전하는 이 이야기는, 곧 제스의 성장과도 연결된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도 우리의 시간과 삶은 흐르고, 그를 통해 작은 물결은 커다란 바다가 될 것이다. <리버보이>는 제스가 죽음과 흘러가는 삶을 받아들이며 고통 속에서 성장하는 모습을 ‘강’에 빗대어 표현하며 환상적으로 재현한다.
사랑하는 이의 죽음 앞에서 ‘울고 싶은 만큼’ 울었던 제스는, 마침내 이별을 받아들이고 깨닫는다. 죽음 앞에서도 삶은 흐르고 그것이 끝이 아니라는 것을. 사랑과 따스함은 영원히 남아있으며, 앞으로 살아갈 인생의 몫으로 남았다는 것을.

저자 팀 보울러가 한국 10대들에게 보내는 메시지

 

<잃어버린 것들의 책>

존 코널리 저 | 이진 역 | 폴라북스 | 2008.10.15

<잃어버린 것들의 책>의 주인공 ‘데이빗’은 어머니를 잃고 새어머니, 의붓동생과 함께 살아간다. 이 두 사람을 증오하는 데이빗은 어느 날부터 책들이 수군거리는 소리를 듣게 되고, 2차 세계대전의 폭격기가 떨어진 날, ’꼬부라진 남자’를 만나 이상한 세계에 떨어지게 된다. 그곳에는 어머니가 옛날에 들려주던 동화의 주인공과 비슷하지만, 어딘가 뒤틀린 사람들이 등장한다. 상류층 백설공주의 지배를 받으며 한숨으로 살아가는 노동자 난쟁이들, ‘진짜’ 괴물의 모습을 한 미녀와 야수, 스스로 늑대에게 다가가 늑대와 인간의 혼혈을 낳은 빨간 망토까지.

해외 책 유튜버 ‘Lesley Rickman’의 리뷰 영상

<잃어버린 것들의 책> 속의 내용들은 결코 ‘우연한 승리’로 데이빗을 이끌어주지 않는다. 그 세계에서 이 작은 소년은 영웅이 아니며, 눈 앞에 펼쳐진 유혈이 낭자한 끔찍한 일들을 헤쳐나가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야만 한다. 이 책은 생각보다 잔인하고 고어적인 묘사를 통해 데이빗이 가지고 있는 ‘두려움’을 극대화시킨다. 묘하게 현실을 비틀어 놓은 듯한 동화 속 내용들은 현실 세계에서 소년이 느꼈던 분노, 슬픔, 공포를 섞어놓는다.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모험을 계속하는 데이빗. 이 책에서 기록하는 데이빗의 ‘성장’은 분노와 슬픔에 굴복하지 않고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지키는 모습이다. 그가 어떤 것을 지켜내는지는, 이 책을 통해 직접 목도해도 좋겠다.

‘성장하다’의 사전적 뜻을 찾아보면 두 가지 뜻을 발견할 수 있다. ‘사람이나 동식물 따위가 자라서 점점 커지다’, ‘사물의 규모나 세력 따위가 점점 커지다’. 썩 마음에 드는 해석은 아니다. 한 사람의 성장이라는 것은, 단순히 부피의 대소와는 완전히 다른 결의 의미를 지닐 수 있으니. 감히 해석해보건대, 성장이라는 것은 커진다는 개념보다는 ‘흐름’에 더 가깝지 않을까.
고여 있기보다는 어찌 되었든 흐르는 모습. 흐르고 나아가다 보면 어느새 지나온 길은 ‘옛길’이 되고, 우리는 그 길들을 발판삼아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지금 계속해서 흐르고 있을 사람들에게 어쩌면 이 책들이 무언의 위로를 건넬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누구나 성장의 고통을 피해갈 수 없다는 것에 꽤 안심하게 될 때가 있으니.

 

Writer

아쉽게도 디멘터나 삼각두, 팬텀이 없는 세상에 태어났지만 그 공백을 채울 이야기를 만들고 소개하며 살고 있습니다. 시나리오를 쓰고, 영화를 만들고, 으스스한 음악을 들으며, 여러 가지 마니악한 기획들을 작당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