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g Self-Portrait>(1967-1968)

척 클로스의 아버지는 어려서 돌아가시고, 그는 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또한 척 클로스는 만성질환을 달고 살았으며 배우는 것에도 장애가 있어 학교생활에도 잘 적응하지 못했다. 어린 척은 잭슨 폴락의 전시를 보고 비주얼 아트에 대한 관심과 열정을 가지게 되었다. 그에게 예술은 위안과 출구가 되었다. 그는 “예술은 내가 잘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으며 내 인생을 구원했다. 내가 8학년 때 들었던 얘기는 대학 가는 건 꿈도 꾸지 말라는 거였다. 나는 덧셈, 뺄셈도 잘 못했으며 복잡한 수식은 외울 수도 없었다. 기하, 물리, 화학 등의 과목에서는 수업에 들어오지 말라는 충고도 받았다. 나는 손으로 하는 걸 그나마 잘했기 때문에 학교에서는 직업 학교에 입학해서 몸을 움직이는 직업을 가지라고 조언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Linda>(1975-1976)

척 클로스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 2년제 대학에서 예술 관련 학위를 딴 후 워싱턴대학으로 편입했고, 다시 예일대학교에서 공부하였다. 그는 후에 “절대 다른 사람들이 네게 맞지 않는 잣대를 들이밀며 너의 인생을 좌지우지하게 내버려두지 말라는 교훈을 배웠다.”라고 말하곤 하였다. 그는 초기에 여러 비주얼 아트를 시도했지만, 유명해진 건 그가 찍은 사진을 바탕으로 그린 초상화였다. 초상화들은 실제보다 컸고 친밀했으며 아름다웠고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내가 초상화를 그린 거의 모든 사람들은 거대한 자신의 초상화 앞에서 불편해했다. 그들은 자신이 생긴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했다.”

<Barack Obama>(2012)

생애 동안 척 클로스는 꾸준히 초상화로 보여줄 수 있는 사람 얼굴의 복잡한 특징들과 감정에 대해 탐구하였다. 이러한 탐구의 이유 중 하나는 그가 다른 사람의 얼굴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안면인식장애 증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커다란 얼굴을 자세히 그림으로써 모델이 되어 준 친구들과 가족들의 얼굴을 제대로 기억할 수 있었다. 그의 초상화가 보는 사람들에게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이유는 초상화 모델들이 그가 아는 사람들이고 모델들에 대한 화가의 주관적 생각이 그림에 반영됐기 때문이다. 척 클로스는 그렸던 얼굴들을 메조틴트, 나무판자, 수채화, 타일 등 다른 재료를 이용하여 다시 그리기도 하였다. 얼굴을 분해해서 격자 형태로 픽셀화 시키거나 디지털 프린팅 기법으로 그리기도 했다.

<Self-Portrait Screenprint 2012>(2012)
<Brad Pitt>(2009)
<Mark>(1978)
<Kate Moss>(2003)

1988년에 척 클로스는 사고로 전신 마비가 와서 목 아랫부분을 전부 움직일 수 없게 된다. 이후에 재활에 힘써 팔과 다리 일부분을 움직이게 되었다. 하지만 손은 제대로 쓸 수 없어 붓을 손목에 고정시켜 그림을 그린다. 척 클로스는 2000년에 클린턴 대통령으로부터 예술 훈장을 받았으며 그 후 오바마 대통령으로부터 예술과 인권에 관한 대통령 자문위원회 소속으로 뽑히게 된다.
최근 그는 과거 두 여성에게 저지른 성폭력이 드러나며 비난을 받았다. 이에 대해 부인하던 그는 후에 <뉴욕타임즈>를 통해 공개적으로 사과한다. 이 사건으로 클로스는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는다. 이에 미국 워싱턴 국립미술관은 올해 2월 예정되었던 척 클로스의 전시 일정을 무기한 연기했다.

<Lucas I>(1986-1987)
모델 한 사람에 대한 여러 형태의 초상화. 출처 – ateneo.edu
원숭이와 함께 있는 어린 시절의 척. 출처 - liveinneverett 

 

모든 작품 ©Chuck Close

 

척 클로스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