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BS 레코딩에서 만난 빌리 홀리데이와 레스터 영(1957). 두 사람은 절친이었지만 함께 찍은 사진은 의외로 찾기 힘들다

1930년대 후반 스윙이 번성했던 시절, 많은 사람들이 빌리 홀리데이(Billie Holiday)와 레스터 영(Lester Young)을 연인 관계로 의심했다. 당시 두 사람은 플레처 핸더슨 악단과 카운트 베이시 악단의 싱어와 색소포니스트로 만나 절친으로 지내며 함께 절정의 인기를 누렸다. 이들은 서로를 최고로 치켜 세우며 재즈계에 너무나 유명해진 별명을 상대에게 선사했다. 빌리 홀리데이의 ’레이디 데이(Lady Day)’와 레스터 영의 ’대통령(President)’ 또는’Prez’는 두 사람이 주고받은 별명이었다.

레스터 영의 육성을 들을 수 있는 다큐멘터리 <President of Beauty: The Life and Times of Lester Young> 중 일부. 여기서 ‘이해하다(know)’의 의미로 사용하는 힙스터 은어 ‘dig’는 그가 만든 표현이다

프랑스에 머물던 레스터 영은 오랜 객지 생활로 날로 건강이 악화하여, 급기야 1959년 가슴을 바늘로 찌르는 듯한 통증을 느끼고는 뉴욕으로 향했다. 그는 여덟 시간의 힘겨운 비행을 견디고 뉴욕의 버드랜드 인근 호텔에 도착했지만 바로 다음 날 객실에서 사망한 채 발견되었다. 재즈 평론가 레오나드 페더(Leonard Feather)와 함께 그의 장례식으로 향하던 빌리 홀리데이는 택시 안에서 “다음은 내 차례”라 하며 슬픔을 주체하지 못했다. 레스터 영과 오랫동안 별거하던 부인은 남편의 장례식에서 한사코 빌리 홀리데이가 노래를 부르지 못하게 막았다. 그로부터 4개월 후 ‘레이디 데이’ 역시’대통령’을 따라 생을 마감했다.

‘Pennies from heaven’ CBS 라이브 영상(1950) 세션 가운데에 앉은 사람이 레스터 영이다

뉴올리언스에서 태어나 캔자스시티의 카운트 베이시 악단에서 연주하던 레스터 영은, 플레쳐 핸더슨 악단에 생긴 콜맨 호킨스의 공석을 대체하기 위해 뉴욕에 왔다가 빌리 홀리데이를 만났다. 레스터 영이 머물던 호텔에서 쥐가 나왔다는 소리를 듣고, 홀리데이는 그를 자신의 아파트로 불러들여 어머니와 함께 셋이 지냈다. 레스터 영은 홀리데이 어머니의 요리에 감탄하며 객지 생활을 즐겼다. 두 사람은 이내 음악적인 동지가 되었고, 함께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며 유랑밴드 생활을 함께 했다. 당시 트럼페터 벅 클레이톤과 함께 세 명이 단짝이 되어 ‘The Unholy Three’라 부르며, 폭탄주의 일종인 ’Top and Bottom’을 마시면서 버스 안에서 카드를 쳤다. 몸은 힘들었지만 이들의 인생에서 가장 열정적인 시기였다.

빌리 홀리데이 & 레스터 영 ‘Easy Living’(1937)

홀리데이와 레스터 영을 두고 많은 사람이 로맨틱한 관계가 아니냐며 의심했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관계가 음악적인 동지이자 정신적인 사랑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두 사람은 각자 싱어와 색소포니스트로 절정의 인기를 얻었지만, 몸과 마음은 갈수록 피폐해졌다. 둘 다 상처받기 쉬운 여린 성격의 소유자로, 음악과 사생활의 어려움을 술과 마약으로 해결하려 했고 그럴수록 음악은 더욱 퇴보했다. 이들은 함께 녹음하다 다투어 3년간 서로 말도 나누지 않은 적도 있었다. 빌리 홀리데이가 인터뷰에서 “레스터 영은 최고의 색소폰 연주자였다” 라며 과거시제를 쓴 사소한 일이 발단이었다. 이후 두 사람은 1954년 뉴포트 재즈 페스티벌을 계기로 서로 포옹하며 예전의 관계를 회복했다.

빌리 홀리데이 & 레스터 영 ‘When You’re Smiling’(1938)

그 뒤로 홀리데이와 레스터 영은 뉴욕 버드랜드 인근의 바에서 함께 술을 마시는 장면이 자주 목격되었다. 당시 두 사람은 전성기가 지난 재즈 스타의 애환을 서로 토로하던 힘든 시기였다. 이들이 플라토닉한 관계의 친구 사이를 유지했는지, 아니면 로맨틱한 관계로 발전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단지 레스터 영이 사망한 지 두 달 만에 레이디 데이 역시 병원으로 실려갔고 그는 살아서 병원을 나오지 못했다. 이 때가 1959년, 재즈 역사상 가장 유명한 커플이었던 레스터 영이 49세, 빌리 홀리데이가 44세로 생을 마감한 해였다.

두 사람이 협연한 16곡을 엮은 소니의 컴필레이션 앨범 <A Musical Romance>(2009)

여러 힙스터 용어를 만들어낸 레스터 영은 성별에 관계없이 상대를 ‘레이디’라 부르기를 좋아했고, 빌리 홀리데이 역시 ’레이디 데이’라는 별명으로 불렀다. 빌리 홀리데이는 레스터 영의 색소폰 연주를 최고라고 하면서 가장 존경하던 루즈벨트 대통령을 생각해 그를’대통령’ 이란 별칭으로 불렀다. 이것을 보면, 두 사람이 로맨틱한 관계였든 플라토닉한 관계였든 이들의 만남이 소니에서 발매한 컴필레이션 앨범 제목처럼 20세기 최고의’음악적인 로맨스(a musical romance)’인 것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