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관념’은 특정 개인의 개성이나 능력을 무시한 채 단순히 그 개인이 소속된 특정 집단의 성격으로 분류하고 판단하는 것을 일컫는다. 가장 대표적인 고정관념의 예시로는 ‘여성’ 혹은 ‘남성’이라는 이유로, 이래야 한다거나 혹은 저러면 안 된다거나 하는 식의 ‘성별’ 특성을 언급할 수 있다.

배우 틸다 스윈튼(Tilda Swinton)은 데뷔 초부터 이러한 성별에 대한 사람들의 편견을 부서트리며, 스스로의 양성적인 이미지를 전면에 부각시켰다. 그의 대표적인 출연작들을 살펴보며 성별, 사랑, 모성 등에 대한 우리의 통념을 다시금 생각해볼 기회를 갖자.

틸다 스윈튼 Via GQ

1960년 스코틀랜드의 유서 깊은 귀족 가문에서 출생한 틸다 스윈튼은 로열 셰익스피어 컴퍼니에서 연극을 하며 연기 인생을 시작했다. 1년여의 연극배우 활동 이후, 그는 1985년 영국 퀴어 문화의 대변자로 불렸던 영화 감독 데릭 저먼 <카라바지오>에 출연하며 영화배우로서의 커리어를 시작하게 된다. <카라바지오> 외에도 <대영제국의 몰락>(1987)을 비롯한 7편의 작품을 데릭 저먼과 함께 하며 예술적인 영향뿐 아니라 사적으로도 돈독한 관계를 쌓아갔다. 그러던 중 데릭 저먼이 1994년 타계하면서, 틸다 스윈튼은 커다란 정신적 충격을 받는다. 하지만 비슷한 시기인 1993년 <올란도>라는 작품을 통해 국제적인 명성을 동시에 얻게 된다.

 

<올란도>

Orlando |1993|감독 샐리 포터|출연 틸다 스윈튼, 빌리 제인, 로데어 블루토

버지니아 울프가 1928년 발표한 소설 <올란도>를 영국의 대표적인 페미니스트 감독 샐리 포터가 각색한 영화 <올란도>에 출연하며 틸다 스윈튼은 특유의 양성적인 이미지를 대중들에게 강렬하게 각인시키는 계기를 만든다. 극 중 ‘올란도’는 1600년, 엘리자베스 1세가 통치하던 당시 귀족 남성으로 태어나 여왕이 명한 대로 죽지도 늙지도 않고 400년을 살아가는 인물. 1700년 오스만 제국(현재의 터키)의 대사로 가면서, 올란도는 영국과 터키의 관계를 돈독하게 만들고자 노력한다. 하지만 반란군이 쳐들어오면서 전쟁의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 잠이 들고, 남성에서 여성으로 몸이 바뀌게 된다.

단순히 성별이 바뀌었을 뿐인데, 여성이 되어 영국으로 돌아온 올란도는 자신이 남성으로 사는 동안에는 미처 깨닫지 못했던 권위적인 남성 중심 사회의 온갖 차별과 모순들을 경험한다. 심지어 여성은 재산을 소유할 수 없다는 당시의 법 때문에, 그는 자신의 집과 재산을 몰수당할 위기에 처하고 주변의 다른 남성들로부터 결혼할 것을 강요받는다. 하지만 끝끝내 올란도는 자신을 구속하는 남성들과 결혼하는 대신 자유를 택하고, 현대에 와서 자신의 이야기를 작품으로 남긴다. 또한, 마침내 스스로가 남자도 여자도 아닌 완전한 ‘인간’이 되었음을 깨닫게 된다.

<올란도> 예고편

 

<아이 엠 러브>

I Am Love |2009|감독 루카 구아다니노|출연 플라비오 파렌티, 에도아도 가브리엘리니

<아이 엠 러브>는 틸다 스윈튼과 최근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으로 다시금 주목받은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이 함께한 세 번째 작품이다. 2002년부터 같이 이 영화를 구상하기 시작한 두 사람은 공동 제작자로 이름을 올리고, 감독은 오직 틸다 스윈튼만을 위해 시나리오를 써나간다.

밀라노의 재벌가인 레키 가문에 시집온 ‘엠마’는 집안의 대소사를 책임지는 아내이자 세 남매의 어머니다. 고풍스럽고 화려한 이탈리아의 대저택에서 오로지 자신에게 주어진 의무만을 수행하며 살아가던 엠마의 모습은 온실 속의 화초처럼 느껴질 정도로 수동적이고 기계적이다. 하지만 그는 아들의 친구이자 천재 요리사인 ‘안토니오’(에도아도 가브리엘리니)를 만나면서 알 수 없는 열정에 사로잡힌다. 그렇게 그는 누군가는 사랑이라, 또 누군가는 불륜이라고 생각할 모호한 도덕적 경계를 뛰어넘어, 마침내 자신의 감정에 가장 솔직한 선택을 내린다.

영화의 시작과 끝을 장식하는 존 애덤스(John Adams)의 음악은 강렬한 고통과 환희를 동시에 경험하며 생의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는 주인공의 심리 상태를 탁월하게 뒷받침해준다.

<아이 엠 러브> 예고편

 

<케빈에 대하여>

We Need to Talk About Kevin|2011|감독 린 램지|출연 틸다 스윈튼, 에즈라 밀러, 존 C. 라일리

자유로운 삶을 살아가던 여행가 ‘에바’는 원치 않는 아이를 갖게 되면서부터 한 장소에 정착해 일과 양육을 동시에 해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게다가 아들 ‘케빈’은 아기 때부터 엄마인 에바에게 설명하기 힘든 적개심을 품은 채 성장했고, 마침내는 거대한 범죄를 저지르며 자신과 엄마인 에바를 동시에 고립시키는 상황을 만든다.

여성 감독인 림 랜지가 연출한 이 영화는 아이를 사랑하지 못하는 엄마와 그런 엄마를 증오하면서도 한편으로 그에게 집착하는 아이를 통해, 그간 여성들에게 사회가 부단히 강요해온 ‘모성애’라는 신화에 균열을 일으킨다. 특히, 케빈이 아직 아기이던 당시 울부짖는 아이의 괴성을 견디다 못해 공사장 근처에 유모차를 멈춰 세운 채, 아이의 괴성을 공사장의 소음으로 덮어버리는 에바의 모습은 두 사람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케빈에 대하여> 예고편

 

<서스페리아> 포스터

이처럼 사회가 강요하는 여러 고정관념과 속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스스로 변화하는 인물상을 연기해온 틸다 스윈튼은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과 다시 작업하게 된 <서스페리아>에서는 남성 노인의 모습으로 분장한 채 연기를 펼치기도 했다.

 

Writer

서울에서 살아가는 생활인이자,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노래로 지어 부르고, 여기가 아닌 어딘가 다른 낯선 세상을 바라보며 사진을 찍는 작업자. 다른 사람들의 작업을 보고, 듣고,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한다. '유유'는 한자로 있을 '유'를 두 번 써서 '존재하기에 존재한다'는 뜻으로 멋대로 사용 중. 2018년 9월부터 그동안 병행 해오던 밴드 '유레루나' 활동을 중단하고, 솔로 작업에 더 집중하여 지속적인 결과물들을 쌓아나가고자 한다.
유유 인스타그램
유유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