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번 보면 죽는 그림’이라는 이미지가 인터넷에서 화제가 된 적 있다. 소문 자체는 유치한 괴담에 불과했지만, 막상 괴담의 주인공이었던 벡신스키(Zdzisław Beksiński)의 그림을 보면 그러한 농담이 왜 생겼는지 짐작되기도 한다. 어둡고 기괴한 상상을 실감 나게 표현한 그의 작품들은 훗날 많은 예술가들에게 영향을 미친 환시 미술(fantasy art) 장르로 발전했다.

<무제>(1985) ‘3번 보면 죽는 그림’으로 화제 되었던 벡신스키의 그림. 벡신스키가 좋아했던 오브제인 ‘의자’, ‘거울’, ‘사람 얼굴’ 등이 한데 모여 있다
(좌) <무제>(1968-1983), (우) <무제>(1976)

벡신스키는 자신의 그림이 “단지 삶의 단조로움을 표현한 것일 뿐”이라며 의미 부여나 상징적 해석을 거부해 제목을 남기지 않았다. 제목과 설명이 없는 까닭에 더욱 강렬한 시각적 충격을 주는 그의 작품들을 몇 가지 테마에 따라 만나보자.

 

초기 작품

1929년 폴란드 사녹(Sanhok)에서 태어나 건축학을 전공한 벡신스키는 대학 졸업 후 교수로 재직했으나, 1955년 돌연 건축 일을 그만두고 예술사진가로 활동을 시작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이 시기 작품들을 보면 얼굴이나 신체 등의 조각 난 이미지를 선호했던 벡신스키의 취향이 일찍부터 표출되었음을 알 수 있다.

<무제>(1957)
<무제>(1956)
<무제>(1958)
<무제>(1960년대)

 

전쟁의 상처

이후 반추상주의를 거쳐 초현실주의로 옮겨간 벡신스키의 작품에는 철모와 탱크, 불타는 건물과 잿더미가 된 도시 등 전쟁의 상흔으로 유추할 수 있는 이미지들이 많이 등장했다. 그가 유년 시절 겪은 제2차 세계대전이나 건축 일을 할 당시 폴란드 재건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경험이 많은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무제>(1970년대 초반)
<무제>(1973)
<무제>(1984)
<무제>(1984)
<무제>(1985)
<무제>(1986)

 

가학피학성애

벡신스키가 본격적으로 드로잉을 시작한 1960년대에는 가학피학성애(Sadomasochism)를 다룬 작품이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그림의 인물들은 성별 무관하게 신체가 왜곡되어 있고 고통인지 쾌락인지 알 수 없는 표정을 짓고 있다.

<무제>(1966)
<무제>(1967)
(좌) <무제>(1968), (우) <무제>(1969)

 

분리된 얼굴

1970년대 이후 벡신스키는 신체를 왜곡하거나 추상적으로 표현하는 것을 넘어 점차 얼굴을 따로 떼어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분리된 얼굴 이미지는 나무와 하늘 등의 자연 및 사물과 결합하여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무제>(1972)
<무제>(1984)
(좌) <무제>(1973), (우) <무제>

 

<무제>

 

숭고미

이런 그의 작품들을 많은 사람이 초현실주의로 받아들인 것과 다르게, 벡신스키는 자기 작품을 바로크나 고딕으로 정의했다. 실제로 그는 황량한 평야나 해골 무덤 위에 돋보이는 건축물이나 거대한 규모의 초자연적인 현상 등 바로크의 숭고미를 느낄 수 있는 그림을 자주 그렸다.

<무제>(1984-1989)
<무제>(1981)
<무제>(1972)
<무제>(1979)
<무제>(1980)

 

종교적 상징

벡신스키는 고전적인 요소로써 작품에 ‘십자가’, ‘바다 위의 방주’를 연상시키는 이미지도 적지 않게 차용했다. 해당 이미지는 모두 죽음과 구원을 동시에 의미하는 종교적 상징을 품고 있다.

(좌) <무제>(1968-1969), (우) <무제>(1976)
<무제>(1970)
(좌) <무제>(1976) , (우) <무제>(1985)

 

짐승

한편 벡신스키의 작품에는 사람이나 사람의 형태가 아닌 짐승도 종종 등장했다. 이는 때에 따라 ‘말’이나 ‘개’로 유추할 수 있는 것도 있고, 그 정체를 전혀 짐작할 수 없는 것도 있었다.

<무제>(1976)
<무제>(1986)
<무제>(1990)
<무제>(1993)

 

<무제>(2001)

 

악기 연주

이처럼 독특한 개성을 지닌 벡신스키의 상상력은 주로 음악에서 기인했다고 한다. 그는 작업할 때마다 클래식 음악을 틀어 놓았고, 클래식 외에 록 음악도 즐겼다. 그래서인지 그림에는 악기를 연주하는 인물도 등장한다. 반면에 문학이나 영화, 다른 예술가의 작품에서는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한다.

<무제>
<무제>
<무제>(1983)

 

후기 작품

벡신스키는 스스로 ‘환상적인 기간(Fantastic Period)’이라고 일컬었던 ‘1960년대~1980년대 중반’을 지나 1990년대에 이르러 컴퓨터 작업물을 선보였다. 후기 작품들은 그가 이전에 선보였던 그림들과 질감이 사뭇 다르지만 동시에 과거의 개성을 고스란히 이어받고 있기도 하다.

<무제>(1996-1997)
<무제>(1996-1997)
<무제>(1996-1997)

그림에서 느껴지는 어둡고 우울한 인상과 달리, 벡신스키는 무척 유쾌하고 대화를 즐기는 사람이었으며 유머 감각도 좋았다고 한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매우 겸손하고 부끄러움도 많이 타서 심지어 자기 전시회 오프닝에도 잘 참석하지 않았다.

말년의 벡신스키는 연이어 불행을 당했다. 1998년 아내 조피아(Zofia Beksiński)가 사망했고, 1년 후에는 아들 토마슈(Tomasz Beksiński)가 자살했다. 그 자신은 돈을 빌려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오랜 지인의 10대 아들에게 살해당했다. 2005년 77세 생일을 맞기 사흘 전이었다.

 

(모든 이미지 출처 공식 온라인 아카이브)

 

즈지스와프 벡신스키 공식 온라인 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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