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 신에는 올해 10주년을 자축하는 뮤지션들이 유독 눈에 띈다. 이들은 인디 음악이 한창 높은 관심을 받았던 2008년에 데뷔한 이후 오랜 시간 꿋꿋이 자기 자리를 지켜온 팀들이다. 저마다의 방식으로 기념한 이들의 10주년을 비교해보았다.

 

화려한 끝 – 장기하와 얼굴들

10월 18일 장기하와 얼굴들(이하 ‘장얼’)의 리더이자 보컬 장기하는 자신의 SNS를 통해 "놀랄 만한 소식"을 전해왔다. 5집이 장얼의 마지막 앨범이 될 것이며, 연말까지 공연한 후 새해를 맞는 것과 동시에 밴드를 해체하고 각자의 길을 갈 거라는 내용이었다.

 

‘싸구려 커피’(2008) 라이브 영상

장얼의 데뷔곡 ‘싸구려 커피’는 자취생의 무기력하고 암울한 일상을 처절한 가사와 독특한 감성으로 그려낸 ‘시대의 얼굴’과도 같았다. 장기하의 진지한 표정 이면의 엉뚱한 B급 유머와 시대를 꿰뚫는 냉소적인 시선, 때로는 사이키델릭하고 때로는 뽕끼 가득한 복고풍의 음악은 장얼을 남다른 뮤지션으로 평가받게 했다.

 

‘그렇고 그런 사이’(2011) MV

이후 <무한도전> 등 방송에 출연하고 발표하는 신곡마다 꾸준히 사랑을 받아왔기에 장얼의 끝을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이들은 10주년과 함께 박수 칠 때 떠날 것을 알리며 마지막까지 결코 평범하지 않은 행보를 이어가게 되었다.

 

‘초심’(2018) MV
'그건 니 생각이고'(2018) MV

5집 앨범의 수록곡으로 미리 공개했던 ‘초심’은 제목 자체가 장얼다운 이상한 농담이다. 그러나 막상 가사를 들여다보면 그것이 반어법임을 알 수 있다. 이제 와서 초심으로 돌아가겠다는 것이 아니라, “초심 따위 개나 줘 버리라”는 것. 타이틀 '그건 니 생각이고' 역시 장얼 특유의 까칠한 태도와 솔직한 가사, 소박하고 재미있는 사운드가 잘 어우러진다.

 

장기하와 얼굴들 홈페이지

 

 

특별한 다짐 – 미미시스터즈

시작은 장얼과 같았지만 10주년은 전혀 다르게 맞는 뮤지션이 있다. 장얼의 멤버로 데뷔한 후 2011년 듀오로 독립해 활동 중인 미미시스터즈(이하 ‘미미’)가 그들. 미미는 데뷔 10주년을 기념해 11월 9일 디너 토크쇼를 가졌다. 새로 발표한 싱글 ‘우리, 자연사하자’의 주제에 맞춰 노래와 수다를 통해 서로의 고통과 아픔을 위로하자는 취지의 이벤트다.

장기하와 얼굴들 '달이 차오른다'(2008) 라이브 영상

데뷔 시절의 미미는 장기하 양옆에서 열심히 팔을 휘두르던 퍼포먼스로 먼저 기억된다. 노래 가사와 아무 상관없어 보이는 우스꽝스러운 안무를 무표정한 얼굴로 절도 있게 추다가, 노래만 끝나면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는 별난 콘셉트는 장얼의 이미지를 만드는 데도 한몫했다. 그러나 장기하는 1집 이후 돌연 미미와의 작별을 선언한다.

미미시스터즈 '다이너마이트 소녀' MV

그 후 미미는 홀로서기에 나섰다. 이들이 1집을 발매할 땐 하세가와 요헤이, 김창완, 로다운30, 서울전자음악단, 크라잉넛 등 쟁쟁한 동료, 선배 뮤지션들의 지원이 있었다. 블랙 유머와 복고 등 장얼의 이미지와 콘셉트를 계승하면서도 특유의 긍정적인 에너지와 솔직함을 더한 미미의 음악 스타일은, 이들이 지난 10년을 버틸 수 있었던 힘이 되었다.

‘우리, 자연사하자’(2018) MV

스스로 전설이 될 것이라고 자부하는 자신감(<미안하지만… 이건 전설이 될 거야>(2011))이나 하루하루 늙어가는 세월을 긍정(<주름 파티>(2017))하는 자세는 10년이 돼서도 변하지 않는다. ‘우리, 자연사하자’의 메시지는 “혼자 먼저 가지 말고 힘들면 힘든 대로 쉬어 가자”라는 뜻이다. “죽자”는 것이 아니라 이대로 “오래 살자”라는 다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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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마음 - 좋아서 하는 밴드

10년이라는 세월이 왠지 어색한 이름의 밴드가 있다. 바로 좋아서 하는 밴드(이하 ‘좋아밴’)다. “밴드 이름이 뭐냐”라는 관객의 물음에 “그냥 저흰 좋아서 하는 건데요”라고 답하는 바람에 우연히 얻은 이름이 무려 10년을 지나오게 되었다.

‘좋아서 만든 영화’(2009) MV

좋아밴의 시작은 대학가요제 금상 출신인 조준호가 친구 손현과 함께 거리공연을 하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이들은 지금에 와서야 거리공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기타와 젬베의 조합을 가장 먼저 시도한 팀 중 하나였다. 좋아밴은 그렇게 아무도 초대하지 않은 전국 길거리 공연을 다녔고, 좋아밴의 공연 모습과 안팎의 이야기는 다큐멘터리 <좋아서 만든 영화>(2009)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인생은 알 수가 없어’(2011) 라이브 영상

좋아서 하는 것만큼 강한 동기는 결국 없는 것일까? 좋아밴은 활발한 공연 활동과 함께, 2장의 정규앨범과 4장의 EP, 기존의 싱글에 하나의 스토리를 추가하고 다시 작업한 0집 등 음악 또한 부지런히 발표하며 단지 좋아서 하는 것 이상의 경력을 이어왔다. 좋아밴은 심지어 10주년마저 그들다웠다. 새 정규작업물을 발표하거나 ‘10주년’이라는 이벤트에 거창한 의미 부여를 하는 대신 <좋아밴은 10살>이라는 이름으로 조촐한 생일파티 같은 공연을 기획했다. 탈퇴한 멤버 황수정과 백가영(안녕하신가영)이 게스트로 함께 해 더욱 뜻깊은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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