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마다 호박 등에서 노란 불빛이 새어 나오고 사람들 틈으로 마녀와 유령들이 섞여드는 날, 할로윈데이. 어딘가 으스스하지만, 일 년에 단 한 번뿐인 것들이 그렇듯 손꼽아 기다리게 되는 이 묘하게 매력적인 날에 유독 잘 어울리는 그림책들이 있다. 해가 저물고 쓸쓸한 바람이 불어오는 할로윈 저녁에 읽으면 왠지 더 특별한 맛이 날 것 같은 그림책 두 권을 소개한다.

 

<뼈다귀 개>

출처 – 그림책박물관, <뼈다귀 개>(2014)는 미국 작가 에릭 로먼의 작품이다
출처 - 그림책박물관

오래도록 반려동물을 키워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두려워하는 순간이 있다. 바로 반려동물을 먼 곳으로 떠나보내야 할 때다. 꼬마 ‘거스’에게도 그런 순간이 찾아온다. 달빛이 유난히 탐스러운 어느 날 밤, 나란히 앉아 보름달을 올려다보던 개 ‘엘라’는 “보름달 아래에서 한 약속은 절대 깨지지 않는다”며 거스에게 약속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곁에 함께 있겠다고.
가족이자 친구였고 때로는 유일하게 마음을 알아주는 존재였던 엘라가 사라졌는데도 세상은 여전히 예전처럼 돌아간다. 바람이 서늘해지고 나뭇잎이 울긋불긋하게 물드는가 싶더니 또다시 할로윈데이가 돌아온다. 거스는 엘라 없이 혼자 사탕을 받으러 다니고 싶지 않지만, 결국 해골 분장을 뒤집어쓴 채 터덜터덜 밖으로 나선다. 오늘따라 옆자리가 더 허전한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

출처 - 그림책박물관
출처 - Macmillan Publisher

사탕으로 묵직해진 가방을 들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공동묘지를 지나던 거스는 그만 마주쳐서는 안 될 것과 마주치고 만다. 바로 묘지에서 기어 나온 해골들! 해골들이 자신을 동료로 착각하자 당황한 거스는 분장을 벗어버리고, 말랑말랑한 살갗에 입맛을 다시는 해골들에게 둘러싸인다. 해골들이 뼈를 딱딱거리며 다가오는 바로 그 순간, 어디선가 낯익은 울음소리가 나더니 작은 뼈다귀 개가 허공에서 연기처럼 나타난다.

뼈만 남은 데다 몸집까지 작은 개를 본 해골들은 갈비뼈가 부서져라 비웃지만, 거스는 그 개가 바로 엘라라는 사실을 알아차린다. 엘라는 해골들에게 덤벼드는 대신 고개를 길게 빼고 울부짖기 시작하고, 웃음소리가 채 흩어지기도 전에 저 멀리서 무언가 거대한 것들이 달려오는 소리가 들려온다. 뒤이어 모습을 드러낸 건 마을의 모든 개들. 당황한 해골들이 그제야 도망치지만 개들이 간식거리를 놓칠 리 없다. 잠시 후, 개들은 입에 뼈다귀를 하나씩 물고 의기양양하게 돌아온다. 밤하늘에는 처음 약속했던 그날처럼 휘영청 달이 떠올라있다. 왔던 곳으로 다시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거스도, 엘라도.

출처 - 인터파크

이별을 코앞에 둔 순간에는 할 수 있는 말이 그리 많지 않다. 거스는 속으로 말을 고르고 골라 겨우 한 마디 내뱉는다. 우리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엘라는 거스의 마음을 다 안다는 듯 어깨를 비비며 대답한다. 보름달 아래에서 한 약속은 깨지지 않아. 뼈다귀가 그려진 옷을 입은 거스와 뼈다귀만 남은 엘라를 밤하늘의 달빛이 눈부시게 비춘다.
흔히 시간이 약이라고들 하지만, 죽음과 연관된 이별은 유난히 더 아프다. 다시 만나는 건 고사하고 멀리서 지켜볼 수 있는 여지조차 남기지 않으니까. <뼈다귀 개>는 아무도 피할 수 없는 이 아릿한 이별을 죽은 자가 살아 돌아온다는 할로윈데이와 엮어 모두가 바라던 마법 같은 일을 눈앞에 펼쳐놓는다. 거스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저마다의 엘라가 있다. 그리고 언젠가는 또 누군가의 엘라가 되겠지. 죽음을 넘어, 많은 말 없이도 서로 교감하는 두 친구의 이야기는 그래서 더 뭉클하게 다가온다.

 

 

<유령의 집에 놀러오세요!>

출처 – 인터파크, <유령의 집에 놀러오세요!> 가즈노 고하라의 작품이다
출처 - us.macmillan.com

사람이 지나다니지 않는 한적한 마을, 누군가 타박타박 걸어오는 소리가 정적을 깬다. 저 멀리서 커다란 짐 가방을 끌고 온 꼬마와 고양이는 앙상한 손가락 같은 나무들 사이의 집 앞에 멈춰 선다. 앞으로 살게 될 이 집은 얼핏 보기엔 널찍하고 고풍스러워 보이지만 사실 한 가지 문제가 있다. 바로 유령들이 집안 곳곳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

출처 - us.macmillan.com
출처 - us.macmillan.com
출처 – Pinterest

그렇게 모은 유령들을 마녀는 몽땅 세탁기에 넣고 돌린다. 그리고 깡마른 손처럼 솟아난 나무들 사이에 빨랫줄을 걸고 탁탁 털어 반듯반듯하게 넌다. 일을 마친 마녀가 나무 밑에 앉아 따뜻한 차를 마시며 책을 읽고, 그 옆에서 고양이가 나뭇가지에 매달려 노는 동안 빨랫줄에 널린 유령들은 이따금 바람에 펄럭이며 바삭하게 말라간다.

물기가 마른 유령들은 이제 커다란 창문가에서 너울거리며 햇빛을 막아줄 커튼이 되고, 간식시간을 한층 포근하게 만들어줄 식탁보가 된다. 마녀와 고양이의 무릎을 부드럽게 간질일 담요가 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남은 유령들 중 덩치가 작은 유령은 몸을 동그랗게 말고 잠든 고양이의 이불이 되고, 조금 커다란 유령은 팔다리에 부드럽게 휘감기며 더 포근한 꿈을 꾸게 해 줄 마녀의 이불이 된다. 그렇게 마녀와 고양이와 유령들이 사는 집에 평화가 내린다.

출처 - 교보문고

<유령의 집에 놀러오세요!>는 여러모로 흥미롭다. 주황색, 흰색, 검은색 세 가지 색상만을 사용한 것, 리노컷이라 불리는 판화 형식을 차용한 것, 한지를 오려 붙인 것처럼 투명한 듯 불투명한 유령들과 사랑스러운 결말까지. 장난스럽고 귀여워 오히려 사랑스럽기까지 한 이들의 이야기를 보고 있자면 유령에 대해 가졌던 막연한 두려움은 안개처럼 사라지고 왠지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가즈노 고하라의 데뷔작이기도 한 이 작품은 덕분에 2008년 뉴욕 타임스에서 10대 그림책 중 하나로 선정되기도 했다.

외국에서 유래했지만 이제는 우리에게도 친숙하게 느껴지는 10월의 마지막 날, 할로윈. 한 번쯤은 노란 스탠드 불빛 아래에서 이렇게 오묘한 그림책들을 읽으며 보내보는 건 어떨까. 똑같은 케이크도 평소보다 생일날 더 특별하게 느껴지듯, 딱 어울리는 날 읽는 그림책에서 더 묘하고 매력적인 맛이 난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그게 할로윈이라면 더더욱.

 

 

Writer

언어를 뛰어넘어, 이야기에는 세상을 변화시키고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힘이 있다고 믿는다.마음속에 새로운 씨앗을 심어주고, 새로운 세계로의 통로가 되어주니까. 그래서 그림책에서부터 민담, 괴담, 문학, 영화까지 다양한 형태의 이야기들을 수집하고 있다. 이렇게 모은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소개하는 중. 앞으로 직접 이야기를 만들기도 하며 더 풍성하고 가치 있는 세계를 만들어나가기를 꿈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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