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토론토 국제영화제에 독특한 제목의 영화가 소개되었다. <I Am the Pretty Thing That Lives in the House>라는 긴 제목인데, 넷플릭스 오리지널에 편입되며 <저주받은 집의 한 송이 꽃>으로 번역되었다. 유령이 출몰하는 오래된 저택이라는 판에 박힌 소재이긴 하나, 전례 없이 독특한 방식으로 연출된 영화로 화제가 되었다. 느리고 단조로운 카메라 움직임, 불안을 조성하는 어두운 조명과 불길한 음향, 독백 형식의 이야기 전개로, 피가 난무하는 슬래셔나 끊임없이 깜짝 놀라게 하는 호러 연출에 익숙한 관객이라면 끝까지 보기가 힘들지도 모른다.

<저주받은 집의 한 송이 꽃> 예고편

지은 지 2백 년이 넘은 뉴잉글랜드 지방의 고택에서, 보일 듯 말 듯 보이지 않는 영적인 존재를 느끼면서 그 존재와 동화되어 가는 간호사 ‘릴리(Lily)’의 독백으로 이야기가 구성된다. “죽음이 깃들어 있는 집은 산 자가 사거나 팔 수 없다. 단지 그곳에 남아있는 유령에게서 그 집을 빌리기만 할 뿐이다.”라거나 “죽은 자의 기억을 안고 있는 저택은, 썩은 유령이 머무르는 장소다.”라는 독백으로 영화는 시작한다.

 

안소니 퍼킨스의 아들 오즈 퍼킨스 감독

오즈 퍼킨스(Oz Perkins) 감독은 영화 <사이코>(1960)의 배우 안소니 퍼킨스(Anthony Perkins)의 아들이다. 그는 <사이코 II>에서 노먼 베이츠의 어린 시절 대역으로 출연한 바 있으며, 배우와 극작가를 거쳐 영화감독으로 데뷔했다. 그의 감독 데뷔작 <The Blackcoat’s Daughter>(2015)는 독특한 스릴러 연출 스타일로 평단의 관심을 끌었다. 영화학교에 다닐 적부터 자신이 존경하던 팀 버튼과 스탠리 큐브릭 스타일을 조합한 영화를 만들겠다는 꿈을 실현하고 있다. 실제로 고택에 살았던 경험을 바탕으로 <저주받은 집의 한 송이 꽃>의 각본을 쓰고 감독을 맡았다.

<Black Coat’s Daughter> 예고편 및 오즈 퍼킨스 인터뷰 영상

 

고택 그리고 세 명의 여인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지은 지 이백 년이 넘은 뉴잉글랜드 지방의 고택에서 촬영되었다. 영화에는 이곳에 살아가는 세 명의 여인이 등장하는데, 시점 순으로 빅토리아 시대를 산 ‘폴리(Poly)’, 인생의 마지막을 지내는 작가 ‘아이리스(Iris)’, 그리고 그를 돌보는 간호사 ‘릴리(Lily)’다. 이들 간의 대화는 거의 없으며 릴리가 이 집에 도착하며 그의 독백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자신이 27살이 되었으며 28살이 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독백에서 관객들은 그의 운명을 짐작할 수 있다. 릴리 역을 맡은 배우는, 드라마 <제인 에어>(2006)와 영화 <안나 카레리나>(2012)에서 호평을 받은 영국 배우 루스 윌슨이다.

<Entertainment Weekly>의 영화 소개 영상

 

슬로우 번 호러(Slow Burn Horror)

이 영화는 서서히 태워가는 전형적인 슬로우 번 호러 스타일로 불린다. 전반부의 모든 이야기는 마지막 단 한 번의 극적인 클라이맥스를 위해 서서히 접근하며 쌓아간다. 한쪽 귀퉁이가 접힌 카펫, 늘어진 전화선, 밤에 유독 잘 들리는 목조주택의 소음으로 긴장감을 조성한다. 무려 1년이란 시간이 지나서야 어둠 속의 유령이 모습을 드러내지만, 오랫동안 기다림 끝에 마주한 단 한 번의 페이오프(Pay-off)가 충분한 보상이 되는지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린다. 로튼 토마토는 60%의 평점으로 다소 실망감을 드러냈고, 토론토 국제영화제 상영 때는 관객 한 명이 코를 골았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간호사 릴리 역의 루스 윌슨

<할리우드 리포터>는 이 영화에 대해 “문학적 취향의 클래식 빈티지 호러”라 평했다. 기존의 공포영화 방정식을 전혀 차용하지 않고 “빈티지 호러”, “고딕 호러”, “슬로우 번 호러”라는 보기 드문 호러 용어를 끌고 왔다. 최근 새로운 스타일의 공포영화로 주목받은 <윗치>(2015)나 <유전>(2017)을 재미있게 본 관객이라면, 이 영화 또한 볼 만한 가치가 충분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