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범 <Woody Shaw III> 자켓에 함께 한 우디 쇼의 아버지와 아들

우디 쇼(Woody Shaw)의 사고 소식을 들은 재즈 프로듀서는 “그 불쌍한 친구는 시력을 잃었고, 마약 중독이었고, 이젠 팔까지 잃었어요. 내가 본 사람 중 가장 불운했어요.”라며 안타까워했다. 동료와 평론가들이 ‘마지막 트럼펫 이노베이터’라 부르며 인정하던 그는 전성기 시절인 30대 중반부터 퇴행성 질병으로 서서히 시력을 잃었으며, 44세이던 1989년 5월 뉴욕 지하철역 계단에서 넘어져 선로로 굴러떨어지면서 기차에 치여 팔을 잃었다. 병원에서 치료받던 그는 3개월 만에 합병증으로 사망했다.

우디 쇼의 짧은 인터뷰와 연주 영상(1979)

그는 노스캐롤라이나의 디지 길레스피 고향 인근에서 출생하여, 고등학교 밴드에서 자신의 여망과는 달리 트럼펫을 배웠다(그가 트럼펫을 배우기 시작한 것은 클리포드 브라운이 사망한 달이다). 천부적인 음감과 기억력으로 음악 천재로 알려지기 시작한 그는 줄리아드 스쿨의 클래식 트럼펫 진학을 뿌리치고 재즈 신에 몸담았다. 1960년대 최고 인기를 누리던 하드밥 밴드였던 아트 블레키의 재즈 메신저와 호레이스 실버 쿼텟에 몸담으며 나날이 실력이 늘었고, 블루노트에서 자신의 이름으로 음반을 내며 최고의 트럼펫 연주자로 부상했다. 동료 뮤지션에 대한 칭찬에 인색했던 마일스 데이비스조차 “이제 위대한 트럼펫 연주자가 한 명 있다. 그는 모든 연주자들과는 다르게 연주한다”며 우디 쇼에 대한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우디 쇼의 솔로 연주 영상

그는 전 세계를 돌아다닌 재즈 뮤지션으로 유명하다. 19세에 프랑스에서의 공연 이래 유럽 구석구석을 순회 연주했으며, 중동, 아프리카, 아시아 도시들을 방문하여 공연과 트럼펫 클리닉 행사를 벌였다. 인터뷰에서 그의 순회공연에 관한 질문을 받자 “당연하다. 연주자는 그의 음악을 세계와 나누어야 한다”고 말했다.

스위스 공연 실황 음반 <In My Own Sweet Way>(1987)

하지만 전성기를 맞으며 불행의 씨앗이 싹트기 시작했다. 불치의 퇴행성 질병을 앓으며 서서히 시력을 잃기 시작한 것이다. 게다가 오랜 객지 생활로 마약에 탐닉하게 되며 그의 건강은 빠르게 악화되었다. 1988년 유럽에서 미국으로 돌아왔을 때는 공항에서 휠체어에 의존해야 할 정도였다. 그는 이듬해 2월 시력을 거의 잃은 상태에서 외출에 나섰다가 브루클린 전철역에서 굴러떨어져 기차에 팔이 절단되는 사고를 당한다. 병원에 입원하여 치료를 받던 중 신장 부위의 합병증으로 3개월 만에 44년의 생을 마감한다.

<Imagination>(1988)에 수록한 ‘Stormy Weather’

그는 아들 하나를 두었다. 그의 이름은 우디 루이 암스트롱 3세, 이름에서 아버지의 재즈 사랑을 엿보게 한다. 아들은 예술경영을 전공한 후 아버지 사후 14년 만인 2003년에 홈페이지를 개설하여 아버지의 팬을 다시 모집하고 무수한 교육 활동을 통한 음악에의 기여도를 다시 조명했다. 이를 시작으로 음반사에서는 <Woody Shaw: The Complete Columbia Albums Collection>(2012), <Woody Shaw: The Complete Muse Sessions>(2013)을 출반하여 그의 유산을 집대성하였다. 아들은 현재 아버지의 전기영화 <Woody Shaw: Beyond All Limits>의 제작에 나섰다.

<Woody Shaw: The Complete Columbia Albums Collection>(2012)

 

우디 쇼 공식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