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딜 가나 유행하는 익숙한 모습에 질려버릴 즈음이면 자연스레 레트로가 대안으로 떠오른다. 낯설지 않은 이전 세대의 풍습으로 되돌아가, 당대의 히트 공식을 그대로 따른다면 적어도 단기간에 선방은 한다는 것은 사실 마케팅에서 널리 알려진 전략이다. 하지만 단순한 일용품을 다루지 않는, 음악 시장에서는 그 방법이 완전히 통한다고 볼 수 없다. 그저 복고를 시도만 해서 좋은 평가를 받은 팝 가수는 거의 드물다. 그 안에 자신만의 스토리텔링을 녹여내거나 완전한 재해석을 이뤄낸 가수만이 새롭게 ‘레트로의 귀환’이라는 타이틀을 가져갈 수 있다.

출처 - WWD 

이 두 가지를 모두 가져가면서도 현재까지 통용되던 관습을 짓밟아버린다면 그것을 모순이라 부를 수 있을까? 지금에서야 표현의 자유가 정점에 이르렀다고 하더라도, 기존 성 역할과 획일화된 생존 전략을 파괴하고 오로지 자신의 욕구에 솔직해진 여성 아티스트들은 아직도 고리타분한 관념에 따가운 눈초리를 받는 게 현실이다. 남성 아티스트들이 여전히 자신의 이상과 욕구를 자연스레 표현하는 와중이라 더욱 대비가 된다. 여기에 그런 따가운 시선을 더욱 반기면서 내면의 터부를 가감 없이 토로하고, 끊임없이 자신을 재창조하는 아티스트가 있다. 그는 에둘러 말하지 않는다. 직선적이고 거침없는 표현력은 더욱 설득력을 얻어 새로운 팝의 영역을 완성했다.

출처 - Rolling Stone 

 

가장 투명하게, 나를 복잡하게

프랑스 출신 아티스트 크리스틴 앤 더 퀸즈(Christine and the Queens)는 다채로운 사운드에 실험성을 추구하고, 무대에서 보여주는 화려한 퍼포먼스로 이미 탄탄한 지지층을 확보한 팝 뮤지션이다. 1집 <Chaleur Humaine>에서 보여주었던 탁월한 곡 제작 능력은 많은 매체에서 극찬을 받았으며 동시에 가사에 펼쳐낸 내러티브는 팝 음악 시장에 새로운 분위기를 환기하였다. 무엇보다도 그는 본명인 헬로이즈 레티시에(Héloïse Letissier)가 아닌 페르소나 ‘크리스틴’으로 활동하면서, ‘자신이 되고 싶어 하는 가장 진실한 모습’을 드러내는 표현 방식을 구축하는 데 부단히 노력했다고 한다.

대중과 크리스틴의 첫 만남은 ‘낯섦’이었다. 무대에서 매끈하게 다려낸 양복 차림으로 우아하면서도 강렬한 안무를 선보인 것의 이면에 호기심이 깃들기 시작했다. 그는 스스로가 판섹슈얼(pansexual)이라고 밝히며, 기존의 성적 지향과 무관하게 범성애를 지향한다고 소개했다. 분명한 캐릭터가 있었지만 1집은 어딘가 애매한 구석이 있었다.

출처 - NPR 

데뷔 앨범 발매 이후, 문화계에서 다양한 컬래버레이션을 시도하고 투어와 앨범 활동을 병행하면서 그는 강해졌다. 부단한 안무 연습으로 신체는 단련되었고 그렇게 충전된 에너지는 어디론가 해소되어야 했다. 덕분에 사생활에서의 관계에도 더욱 거리낌이 없어졌고 누군가와 사랑을 나누는 것도 자연스러워졌다고 한다. 자의식 또한 충만해지면서 스스로에 대한 호기심과 그 욕구를 표현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해졌다. 그렇게 탄생한 2집 <Chris>는 새삼 담대하고 자극적이다. 감정을 다양하게 펼쳐낸 스토리텔링은 깊이 파고들수록 복잡하고 난해하다. 하지만 그 사이에 내포된 설득력은 더욱 단단하고 어딘가 모르게 반항 기질이 보이기도 한다. 차기작 발매와 동시에 그는 자신의 페르소나를 크리스틴이 아닌, 크리스로 재탄생시켰다. 짧게 자른 헤어스타일에 오픈칼라 셔츠를 입고 과격한 안무를 선보이며, 이전보다 더욱 중성적이고 날카로운 또 다른 자아로 새롭게 태어났다.

출처 - Capital Records 

 

복고는 언제나 옳다

크리스틴 앤 더 퀸즈의 2집은 철저하게 1980~1990년대 팝 음악 정신을 재해석하고 이를 해체하여 자신의 내러티브를 펼치는 데에 십분 활용하였다. 당대 음악을 대표하는 마이클 잭슨, 마돈나 그리고 데이비드 보위와 프린스, 자넷 잭슨은 모두 실험성과 뛰어난 음악성을 갖춘 동시에 저항 정신을 펼쳤던 뮤지션들로 곧 그의 우상이다. 1980~1990년대는 관습을 거스르고, 새로운 캐릭터를 창조하며 퀴어 문화를 깊게 탐구하기 시작했던 시기이기도 하다. 또한 신디사이저의 매끄럽고 캐치한 사운드 활용이 절정에 이른 동시에 뮤직비디오를 통한 짜임새 있는 안무와 눈에 띄는 뮤직비디오가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크리스틴 앤더 퀸즈의 2집 <Chris>에서 만나볼 수 있다.

Christine and the Queens ‘Girlfriend (feat. Dâm-Funk)’

리드 싱글 ‘Girlfriend’는 80년대 디스코 훵크의 자유분방하고 흥겨운 미덕을 모두 가져왔다. 미끈한 베이스라인에 ‘funk의 장인’이라 불리는 댐-훵크(Dâm-Funk)의 숄더 키보드 퍼포먼스로 완성미를 갖추었다. 1집에서 느껴진 모호함과는 달리, 관계에서 우위를 점하고 사랑과 욕구를 당당히 펼쳐내는 내러티브는 곧 ‘Comme Si’, ‘Make Some Sense’와 같은 트랙에서도 느껴진다. 비슷한 업템포의 발랄함으로 무장한 ‘Doesn’t Matter’는 흔한 앤섬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자살과 우울증 그리고 이에 대해 신에게 던지는 의문을 담은 어두운 곡이다. 그는 이렇게 달콤하고 듣기 좋은 팝 사운드에 심오하고 모호한 메시지를 담아내는 방식을 유독 2집에서 많이 시도했다.

Christine and the Queens ‘5 Dollars’

‘5 Dollars’ 역시 탄탄한 훵크 사운드와 아름답고 몽롱한 멜로디를 바탕으로 성매매에 대한 은유적인 이야기를 다루며, 활기 넘치고 담대한 편곡 센스를 보여준 ‘Damn(What Must a Woman Do)’은 관계에서 느낀 자기혐오와 성적 흥분을 막힘없이 표현한다. 앨범에서 가장 직선적인 트랙이라고 볼 수 있다. ‘5 Dollars’ 뮤직비디오에서 본디지 기어를 입는 모습은, 마돈나가 초기에 보여주었던 파격적인 퍼포먼스가 오버랩되는 순간이다. 반면에 팝 발라드 ‘What’s-her-face’는 남성적인 스타일 때문에 따돌림을 당했던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를 눌러 담아, 슬픔을 온전하게 보존한 노래다.

출처 - GQ 

 

욕망, 무섭고도 매혹적인 존재

또 다른 2집 수록곡 ‘Goya Soda’는 화가 프란시스코 고야의 작품 ‘아들을 먹어치우는 사투르누스’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청량한 팝 사운드에 사랑에 대한 욕구와 그의 판타지를 담아낸, 앨범에서 가장 난해한 트랙이다. 반면에 앨범의 포문을 여는 ‘Comme Si’는 듣는 이에게 욕구를 갈구한다. 관능적인 욕망을 주체적으로 표현하면서 앨범의 주제를 관통한다.

Christine and the Queens 'Comme Si'(Official M/V)

1집은 다소 어린 나이에서 퀴어 여성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시작한 시선을 담았다. 그 당시 사회에서 느꼈던 좌절과 이제 막 눈을 뜬 모습이 그려졌다면, 크리스틴 앤 더 퀸즈에서 달라진 크리스의 2집 <Chris>에는 1집에서 고민에 그쳤던 많은 욕망을 자신의 손에 넣은 데다 그 사이에서 무게감을 분별할 줄도 아는 그의 모습이 담겼다. 성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강한 여성으로서 주체적인 시선을 갖게 된 그는, 이전까지 억눌려 있던 자신의 욕망을 채워 이를 팝 음악으로 단단히 결속시켰다.

그는 본인이 판섹슈얼임을 알리며 어느새 젠더퀴어의 아이콘이 되었지만, 반대로 퀴어 정체성이 팝 음악에서 무분별하게 사용되는 것을 경계한다. 자신이 가진 영향력에 무게감이 실렸음을 인지했기에 의미심장한 내러티브와 탄탄한 완성도를 모두 갖춘 앨범이 나오지 않았을까. 크리스는 스스로 대부분의 악기를 다루면서 홈메이드 기반의 음악을 선보인다. 날 것 그대로를 추구하면서 자신의 이상을 지향하는 그의 음악 덕분에 더 많은 사람들이 용기를 얻고 있다.

 

메인 이미지 ©Jamie Morgan

 

 

Writer

실용적인 덕질을 지향하는, 날개도 그림자도 없는 꿈을 꾸는 사람